[평양 인사이트] 김정은이 아니라, 체제가 움직인다
김정은의 개인 판단 아닌 체제 전체의 변화.."넓게 봐야할 때"
[편집자주] 2018년부터 북한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동북아시아 정세는 급변했다. '평양 인사이트(insight)'는 따라가기조차 쉽지 않은 빠른 변화의 흐름을 진단하고 '생각할 거리'를 제안한다.
(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시각이 지엽적이어선 안 된다. 지금은 김정은 개인이 아닌, 북한이라는 체제의 움직임을 봐야 한다."
각종 탄도미사일을 앞세운 북한의 강경 행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의중에 대해 묻자 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즉답 대신 이러한 조언을 내놨다. 요약하자면, 지금 북한을 조금 더 포괄적인 분석의 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력' 강화 행보가 심상치 않다. 올 들어 북한은 핵 개발과 관련해 크게 네 번의 '스텝'을 밟았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10여차례 탄도미사일 발사를 진행한 뒤에 열린 지난 4월 군 열병식 연설에서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는 없다"라는 발언을 내놨다. 이는 북한이 핵개발 과정에서 명분 강화를 위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언급으로, 북한의 새 '핵 독트린'의 서막이었다.
지난 6월에는 북한군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가 열렸다.
당 중앙군사위는 당시 회의에서 △전선부대의 작전계획 수정 △작전 임무에 중요 군사행동 계획 추가 △전쟁억제력을 확대 강화하기 위한 문제 심의·승인 △이를 위한 군사조직편제개편안을 비준했다. 북한 매체들의 회의의 아주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음에도 북한이 핵 관련 새 전술전략을 수립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이러한 우려 섞인 관측은 9월 북한이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하면서 가시화됐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 개발 역사에 '이정표'를 찍을 결정을 통해 '외부의 핵위협, 혹은 이에 상응하는 위협이나 공격 정황이 있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내용을 다분히 자의적 판단이 조건화된 핵무기 사용 조건을 법제화했다. '핵무기의 포기'가 곧 국내법을 위반하게 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마치 '퇴로'를 차단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북한은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이 5년 만에 동해에 전개되자 즉각적으로 이 법을 적용했다. 사상 처음으로 '핵전쟁'을 상정한 군사훈련을 공개적으로 진행한 것인데, 김정은 총비서가 15일간 7차례, 12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2번의 공군과 전선 포병부대를 동원한 합동타격훈련을 모두 지휘했다. '핵무력'의 최고 책임자로서 '실전'에 임하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이번 훈련은 과거 북한이 선보인 미사일 도발과는 차원이 다르다. 올해 꾸준히 개발하고 차곡차곡 쌓은 명분이 뒷받침된 새로운 '핵 전략전술'을 군의 통수권자가 직접 지휘하는 가운데 펼친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실험을 가장 큰 '도발'로 여기는 듯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이번 보름의 훈련이 북한이 그간 선보인 가장 큰 핵 도발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핵실험이 '기술 개발'에 방점을 찍은 것이라면, 보름간의 훈련은 '공격'을 위한 사전연습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번 훈련을 통해 남한에 대한 핵공격 시나리오를 매우 구체적으로 연습했고, 이를 대외적으로 공개했다.
너무나도 목표가 분명했던 이번 북한의 핵공격 훈련은, 북한이 '새로운 핵'을 중심으로 한 체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는 관측도 가능케 했다.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인 미국의 조야에서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9일(현지시간) 보도에서 "미국의 비핵화 고집은 실패"라며 이제 북한을 상대로 한 협상은 비핵화가 아닌 '군축'으로 조정돼야 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했다.
국제사회의 시선은 북한의 '체제'가 움직이는데 집중하고 있는데,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 종류가 무엇인지, 김정은의 발언 내용이 무엇인지 등 지엽적인 북한의 모습에만 치중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볼 때다. 그런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무엇을 하는지'보다 '왜 하는지'에 더 집중해야 할 때라는 뜻에서다.
얼핏 김정은이라는 최고지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 같은 북한의 깊은 곳에는 사실 '체제의 판단'이 있다. 그리고 이 체제는 때론 큰 위기를 동력으로 삼는다. 올해를 '국가적 대동란'이라고 표현했던 북한이라는 체제가 또 한번의 변화를 위해 큰 보폭으로 움직이고 있다.
seojiba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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