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더 격화된 지방 소멸..밀레니얼 세대가 귀향하려면?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입력 2022. 10. 11. 13:00 수정 2022. 10. 1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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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의 경제TalkTalk] 전창록 경상북도 경제진흥원장 ①/②
밀레니얼 세대들이 경북 문경의 전통 한옥을 이용해 운영중인 카페 '화수헌'./화수헌

지방 소멸 문제는 인구 감소와 더불어 대한민국 경제가 안고 있는 두가지 절박한 당면 과제이다. 이 지방 소멸 문제의 해결에 기여하겠다며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갔던 전창록 경상북도 경제진흥원장이 오는 10월 18일 퇴직한다고 연락이 왔다.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의 글로벌 영업맨으로 전세계를 누볐고, 벤처 투자자로서 스타트업 발굴과 육성에 힘을 쏟았던 그가 경북경제진흥원장에 취임해 경험과 정열을 쏟아부은지 벌써 4년이 됐다. 그는 어떤 결론을 얻었을까? 자신의 경험을 담은 ‘밀레니얼의 귀향’이라는 책도 냈다고 했다.

지난 10월 4일 서울에서 일기예보를 보니 경상북도 구미시에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해 우산을 준비해 갔다. 그러나 KTX를 타고 오후 2시 30분에 도착하니 오전에 내리던 비는 멎고, 새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빛이 필자를 맞았다. 오후 3시 15분 경북 구미시 이계북로 7 경상북도 경제진흥원 3층 원장실에서 전 원장과 마주 앉았다. 독자들은 그의 4년간 업적 보다는 한국경제를 위해 그가 몸으로 부닥쳐 얻은 결론과 처방에 관심이 많으리라. 인터뷰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기로 했다.

—경북경제진흥원장에 취임한지 벌써 4년이나 됐다. 현장에서 보는 지방 소멸 상황은?

“위기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방 소멸 위험 지수는 만 20~39세의 여성 인구를 만 65세 이상 노년 인구로 나눠 계산한다. 이 수치가 0.5 이하이면 소멸 위험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청년들의 외부 유출이 점점 빨라지면서 소멸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2020년에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경북 지역에서 매년 7000명 정도의 청년이 외부로 나갔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매년 2만명씩 빠져 나가고 있다. 현재 경북은 전체 23개 시·군·구 중에서 19개가 지방 소멸의 위험에 빠져 있다. 4년전에 내가 취임했을 때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사태가 어떻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외부 출입이 안되니 지방의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청년들이 대도시에는 그나마 취업 기회가 남아 있다고 생각해 떠난 것으로 보인다.”

지방 떠나는 청년들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의 나이는?

“주로 39세 이하의 사람들이다. 밀레니얼 세대를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니, 떠난 사람들은 크게 보아 밀레니얼 세대라고 볼 수 있다.”

—지방 소멸을 막으려면 대책은?

“먼저 남아 있는 청년들의 유출을 막고, 떠난 젊은이들을 다시 지방으로 귀향시켜야 한다. 지방을 살리려면 그 방법 밖에 없다.”

경북 영천에 정착해 초콜릿 가게 '산과 보롬'을 열어 운영중인 밀레니얼 세대 창업자들./경북경제진흥원

—어떻게 해야 귀향을 시킬 수 있나?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는 이유를 물어 본 한 조사에 따르면 43%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27%는 문화가 없어서 떠난다고 했다. 문화가 없다는 것은 지방 생활이 다양성이 부족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이다. 이 둘을 합하면 70%에 달한다. 그러니 지방에 일자리와 문화를 만들어 줘야 밀레니얼 세대가 돌아온다.”

일자리 만들어야

—어떤 일자리인가? 임금을 많이 주면 문제가 해결될까?

“그건 아니다. 2011년 미국 잡지 ‘타임’을 보면 밀레니얼 세대는 ‘Me Me Me 세대’의 특징을 갖고 있다. 첫번째 Me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두번째 Me는 이 세상 속에서 내가 성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번째 Me는 성장하는 나로 인해 세상이 좀 더 나은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일자리는 첫째, 소중한 내가 존중받는 일자리여야 하고, 둘째, 청년들이 성장하는 일자리여야 하며, 셋째, 일을 통해 세상이 바뀌는 일자리, 즉 내가 존중받고 기여할 수 있는 일자리여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자신이 성장하고 사회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진은 미국의 대표적인 밀레니얼 세대 가수인 테일러 스위프트가 2007년 공연하는 모습./위키피디아

—이런 일자리를 어떻게 제공할 수 있나?

“지방의 중소기업을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중소기업을 바꾸다니?

“성장과 미래가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중소기업과,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의 개성과 다양성을 지방에 더해주는 창의적 소상공인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전 원장이 말을 이어갔다.

“2018년 기준으로 볼 때 소상공인이 대한민국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3%, 중소기업은 40%이다. 둘을 합쳐 83%에 달한다. 지방 경제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주력이므로 이들이 바뀌면 지방도 바뀔 것으로 생각한다.”

중소기업을 이렇게 바꿔라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

“중소기업을 기하급수 기업으로 바꾸어야 한다. 단순히 돈만 버는 기업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담대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 또 나 혼자나 우리 조직 뿐 아니라 외부의 대학이나 스타트업과 협력해 혁신 역량을 받아들이고 기술을 협업해야 한다. 조직 문화도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며 실패에 관대하게 바꿔야 한다.”

—기하급수 기업의 의미는?

“산업화 시대의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변화의 방향과 속도가 예측가능한 산술급수적인 변화에 적응하던 기업들이었다. 기하급수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초연결 시대가 되고 그 결과 융합과 공유로 인해 기하급수적 변화가 일상이 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기하급수적 변화의 시대에 맟춰 빠른 변화에 적응하는 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 사실 이 기하급수 기업이라는 말은 변화 속도를 기준으로 한 얘기이고,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유니콘 기업,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존디어의 변신

—사례를 들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가장 성공적인 기하급수 기업으로의 변신 모델에 존디어라는 미국 농기계 회사가 있다. 1837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대동과 같은 농기계 전문회사이다.”

—어떻게 변신했나?

“이 회사는 트랙터를 만들어 팔다가 트랙터 등 농기계에 센서를 부착해 수확량, 토질, 경작이력, 비료 사용량 등의 정보를 수집했다. 또 인공위성과 드론을 활용해 날씨 등 추가 정보를 입력해 거대한 농업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농부들에게는 농사에 필요한 해법을, 이 생태계에 참여한 다른 기업들에게는 데이터를 팔고 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런 변화의 중요한 과정에 필요한 역량을 내부에서 개발하기 보다는 DN2K, 블루리버 테크놀러지 등 외부의 스타트업이나 기술 기반 기업들을 인수함으로써 빠르게 시장을 선도해 갔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농기계 회사인 존디어는 트랙터 등에 센서를 부착해 데이터를 모으는 방식으로 서비스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진은 존디어가 생산하는 트랙터./존디어

—사례를 하나 더 들면?

“대담한 목표와 조직 문화의 사례로 한국의 젠틀 몬스터라는 아이웨어(안경) 제조 판매 기업을 들 수 있다. 2011년에 창업한 이 회사는 아이웨어를 많이 팔자가 아니라 ‘세상을 놀라게 하자’라는 비전과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갖고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 성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기하급수 기업이 되려면

—지방의 중소기업들이 존디어 같은 대기업처럼 바뀌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기업이 성장할 가능성이 없다면 젊은이들이 창업에 도전하지 않는다. 지방의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을 어떻게 큰 기업으로 키울 수 있나?

“기하급수 기업으로의 변신이 답이다. 세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세상을 바꾸겠다는 담대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둘째,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외부와 협업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조직의 문화도 개방적이고 수평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셋째, 비즈니스 모델을 고객 데이터에 기반한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로 바꾸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예전에는 자동차를 그냥 팔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월정액을 내는 마케팅 모델이 등장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고객의 기호에 따라 맞춤형 차량을 제공하는 형태가 나올 것이다.”

현대차는 고객 데이터에 기반해 고객 개개인의 수요에 맞는 마케팅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14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국제모터쇼 행사에서 현대자동차가 전기차 '아이오닉 6'를 공개하고 있는 모습./조선일보 DB

—기하급수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

“지금은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 예측이 불가능한 기하급수의 시대이다. 예전에 포천 500대 기업이 시가총액 1조원짜리 유니콘 기업이 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22년이었다. 그런데 2018년 기준으로 이 기간이 5.5년으로 단축됐다. 2022년에는 이 기간이 더 단축됐을 것이다. 즉 시장이 끊임없이 바뀌고 경쟁이 심해지기 때문에 빨리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빨리 성장하는 기하급수기업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다.”

대기업 유치의 한계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산업연구원의 2021년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약 30% 정도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이유를 보면 경영자의 성장의지가 없거나, 필요한 기술 등 역량이 부족하거나, 사람이 없고 판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기하급수 기업으로 변신하려면 담대한 목표, 외부와의 협업, 조직문화, 데이터에 기반한 플랫폼 기업으로의 변신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담대한 목표가 바로 성장의지이고, 역량의 부족은 외부와의 협업을 통해, 사람은 수평적 개방적 조직문화를 통해, 판로는 일회적 판매가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관계를 통해 구축하자는 이야기이다.”

지방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기업을 유치하는 방안은 공장 자동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지방 고용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구미국가산업단지./구미시청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방에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대기업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대기업 유치가 일자리 창출에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많은 대기업들이 지방에 들어왔다. 그래도 지방 소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대기업들은 공장 자동화와 스마트 팩토리를 활용하기 때문에 고용유발 효과가 예전 같지 않다.

한 지역에 대기업이 한 곳 들어오면 협력업체까지 합쳐 1000명 정도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대기업이 들어온다고 하면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지방 소멸을 되돌리거나 멈출 정도의 효과는 없다고 본다. 그러니 지방의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을 변신시키는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문화가 있어야 청년들이 온다

전 원장은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는 첫번째 이유와 관련해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지 않거나 지방으로 되돌아오려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변신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청년들이 떠나는 두번째 이유인 문화 부재 현상에 대해 질문을 시작했다.

—청년들이 지방에 귀향하려면 문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어떤 문화인가?

“문화는 사회의 행동 양식이요 나의 삶의 방식이다. 문화가 없고 재미가 없다는 것은 나의 삶이 매우 단순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지방 주민들에게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로컬 크리에이터(local creator)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뭔가?

“지역 가치에 기반해서 나만의 ‘다움’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제주도에 연극과 식사가 결합된 ‘해녀의 부엌’이라는 식당이 있다. 식당 주인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배우로 활동하다가 제주도에 내려와 식당을 창업했다. 본인 주변의 친척 상당수가 해녀 출신이었다. 그래서 본인이 배우로서의 다움과 지역의 해녀라는 가치를 결합해 해녀가 출연하는 연극을 만들고, 해녀가 따오는 톳과 뿔소라를 갖고 저녁을 만들었다.”

해녀를 소재로 한 제주도의 식당 '해녀의 부엌'은 배우 출신인 창업자가 고향인 제주의 소재를 결합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해녀의 부엌

—장사가 잘 됐나?

“1호점이 잘 되어 2호점까지 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로컬 크리에이터이다. 지역의 특성에 본인의 개성을 결합해 ‘다움’을 만들고 여기에 기반해 사업을 하니 세상에 둘도 없는 경험이 된다. 사람들이 열광하고 찾아온다.

지방에 이런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많이 있으면 도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청년들의 귀향도 가능해 질 것이다. 이런 로컬 크리에이터들을 많이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로컬 크리에이터 혁명

—성공한 로컬 크리에이터의 사례를 세가지만 들어달라.

“경북 문경시 산양면 현리에는 인천 채씨 집성촌이 있다. 문경시가 그곳의 260년 된 한옥을 부산에서 온 청년들에게 내줬다. 그랬더니 이 청년들이 카페와 게스트 하우스로 바꾸었다. 이름을 화수헌으로 바꿔 달고 영업중인데, 연간 8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이처럼 지자체에서 청년들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역의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 생태계 구축의 첫 출발이다.”

—두번째 사례는?

“경북 경산에는 대추나무가 많이 난다. 한 청년은 그 대추나무를 이용해 코리우드라는 열대어 수족관을 만들어 성공했다. 대추나무가 열대어 수족관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나? 사방에 널려 있는 지역 산물들의 가치를 지자체가 발굴해 널리 알려줘야 한다. 그러면 젊은이들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사람들이 열광한다.”

경북 경산시에 있는 열대어 수족관 코리우드는 경산 지역에서 많이 나는 대추나무를 수족관 안에 넣는 재료로 활용해 열대어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김기훈

—세번째 사례는?

“전남 목포에 가면 ‘괜찮아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실패해도 넘어져도 괜찮다는 의미에서 괜찮아마을이다. 한 청년이 오래된 여관을 빌려서 4박 5일짜리 힐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젊은이가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치료하는 차원을 넘어 다른 청년들의 힐링 공간을 제공하는 형태로 창업이 이뤄진 것이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자기의 상처를 서로 이야기하고 같이 식사하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다음 계획을 모색하는 시간도 있다. 청년들이 힐링하면서 자기만의 길을 다시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다.”

‘다움’이 있어야 한다

—이들을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불렀다. 이 때 로컬은 어떤 개념인가?

“서울에 있으면 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렇고 그런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지방에 오면 나와 지방의 특성이 결합해 ‘나 다움’이 생긴다. 이러한 나 다움을 찾을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 로컬이다. 내가 나로서 오롯이 서고, 나의 속도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로컬이다.”

전라남도 목포에 있는 '괜찮아마을'은 밀레니얼 세대 창업자가 자신의 힐링 경험을 넘어, 다른 사람에게 치유 공간을 제공하는 사업 아이디어로 성공했다./괜찮아마을

—'다움'이 뭔가?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오래 전에는 ‘나음’이 좋다고 했다. 예를 들어 품질이 안 좋은 상품보다는 더 좋은 상품이 낫다는 뜻이다. 이후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품질이 다 좋아지니 이번에는 ‘다름’이 더 좋다고 했다. 고품질 상품이 대량생산되는 시대에는 남들과 다른 것이 경쟁력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음과 다름은 모두 비교를 통해서 나온다. 즉 남과 계속 경쟁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개념이다. 이에 반해 다움은 나 혼자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이다.”

‘다움’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다움을 갖출 수 있나?

“첫째, 사업이 투명해야 한다. 안과 밖이 꼭 같아야 한다.

둘째,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측면에서 그 개성이 드러나야 한다. 본인이 그 가치를 집요하게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

셋째,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전 원장이 이 대목에서 미국의 친환경 의류업체인 파타고니아의 이본 쉬나드 회장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 의류업체인 파타고니아의 이본 쉬나드 회장은 친환경 정책에 대한 일관성 있는 발언과 행동을 평생 동안 유지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72년에 암벽 등반 장비를 몸에 걸치고 있는 모습./톰 프로스트(위키피디아)

“파타고니아는 미국의 대규모 할인 쇼핑 기간인 블랙 프라이데이 때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로 유명해졌다. 옷을 만들려면 면화를 재배해야 하고, 면화를 재배하려면 농약을 써야 하니 결국 환경을 해치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쉬나드 회장이 최근 4조2000억원의 재산을 환경 보호에 기부하기로 했다. 이처럼 로컬 크리에이터는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시간이 지나더라도 일관되어야 한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되려면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어떤 목표를 갖고 기업을 일궈야 하나?

“기하급수 기업이 고객 가치에 기반한 창업이라고 한다면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지역 가치에 기반한 창업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지역 가치와 나만의 개성과 전문성을 갖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 다움’으로 한명의 고객을 감동시키고 그 고객이 세상을 감동시키는 사업을 해야 한다.

즉 그들은 취향을 팔아야 하고, 취향에 기반한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미국의 홀푸드나 나이키가 바로 오스틴과 포틀랜드에서 취향에 기반해 전세계를 매료시킨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가 됐다. 이들처럼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제주의 제주맥주나 강릉의 테라로사를 성공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미국의 유기농 채소 판매업체 홀푸드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본부를 두고 있지만,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미국의 대표적인 채소 판매업체가 됐다. 사진은 뉴욕 맨해튼 매장./위키피디아(2008년 8월 25일)

—로컬 크리에이터를 어떻게 양성해야 하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생태계를 만들려면 진입과 성장을 가능한한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진입하려면 지자체가 지역의 가치를 많이 발굴하고 공유하고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방에 진입하는 크리에이터들은 거기에 자기만의 개성과 관점을 더하면 된다. 목수나 유기명장 같은 사람들의 기술도 하나의 로컬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장인대학’ 같은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의 성장을 돕는 전문 액셀러레이터와 임팩트 펀드를 통한 지원 등도 필요하다.”

강원도 양양의 성공

—생태계 구성에 성공한 도시의 사례를 꼽는다면?

“제주 강릉 군산 양양을 꼽을 수 있다. 이 지역은 정주 인구도 많이 늘었지만, 그 보다는 관계 인구와 교류 인구가 더 많이 늘었다. 지방 도시가 생태계 구성에 성공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정주인구의 수는 더 이상 중요한 개념은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 노마드들이므로 관계 인구와 교류 인구가 더 중요하다.

주말만 되면 서울의 젊은이들이 서핑 등을 하러 강원도 양양에 놀러가서 주말을 보내고 온다. 제주와 군산도 마찬가지이다. 정주 인구 뿐 아니라 관계인구, 교류 인구가 늘어났다면 그 도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문화를 갖춘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강원도 양양군은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을 계기로 서핑을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교류 인구를 크게 늘렸다. 사진은 서핑을 즐기는 관광객들./양양군청

—교류 인구가 지방 경제에 창출하는 기여도를 어떻게 측정하나?

“1대 8대 25대 81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인구 1인이 감소하면 그 지역 내에서 순환되는 재화의 감소가 약 1250만원이라고 한다. 이 부가가치를 만들려면 외국인 8명이 와서 지역에서 1박을 하면 됐다. 내국인이라면 25명이 숙박을 하면 되고, 내국인이 숙박을 하지 않고 당일치기 관광을 하러 오면 81명이 와야 한다는 것이다. 거주민이 적더라도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많아서, 외부에서 찾아오는 교류인구가 늘어나면 도시는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할 수 있다.”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

지방 소멸을 줄일 방책을 이야기하던 전 원장이 뜻밖에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꺼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포스터.
영화 '기생충' 포스터.

“2021년에 가장 화제가 됐던 한류 열풍은 ‘오징어 게임’일 것이다. 이에 앞서 영화 ‘기생충’이 세계 영화계에 바람을 일으켰다. 오징어 게임은 참가자 숫자와 일치하는 456억원의 상금을 두고 생사를 가르는 서바이벌 게임을 다룬 드라마이다.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 모두 큰 줄기는 부의 양극화를 비판하는 것이지만, 그 저변에 깔린 우리 사회의 물질주의에 대한 과도한 숭배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 많이 불편했다.”

—지방 소멸과 ‘오징어 게임’이 무슨 관련이 있나?

“지방 소멸의 원인은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치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이 도시로 도시로 떠나는 이유는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기 때문이다.

미국의 여론조사업체인 퓨리서치가 지난 2021년 12월에 전세계 17개국 1만8850명을 대상으로 전화와 온라인 조사를 했다. 삶에서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이 1등으로 나타났다. 14개 국가에서는 가족이 1등이었다. 가족, 자유, 만족감 등 다른 항목이 많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가족, 직업, 물질적 행복 순으로 꼽았는데, 한국은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을 1위로 꼽았다. 이런 물질중심주의 가치 때문에 지방 소멸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물질적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개선점이 있나?

“밀레니얼 세대는 물질 소유보다는 경험을 더 중시하는 세대이다. 문제는 이 젊은이들의 도전과 개척을 사회에서 더 인정해주면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더 빠르게 바뀔 것이라고 본다. 대중 매체들은 청년들이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이들의 바뀐 가치관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청년들이 더 대담하게 지방에서 자기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개척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

전창록 경북경제진흥원장과의 대화는 지방 경제를 살린 성공한 로컬 크리에이터에 대한 이야기에서 외국 도시들의 성공 사례로 이어졌다.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경북경제진흥원./김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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