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현실 무시한 불법파견 판결

김성훈 기자 2022. 10. 11. 11:4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산업 전반에서 쓰이는 전산관리시스템(MES)을 불법파견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게 말이 됩니까. 요즘 MES 안 쓰는 기업이 거의 없을 텐데, 이런 식이면 몇몇 특정 업종은 사업을 계속할 수가 없어요." 한 경영계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노란봉투법 말고도 지금 문제가 많다"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노동조합의 불법쟁의행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탓에 다른 이슈는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지만, 사실상 사내 하도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들도 기업들에 커다란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성훈 산업부 차장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산업 전반에서 쓰이는 전산관리시스템(MES)을 불법파견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게 말이 됩니까. 요즘 MES 안 쓰는 기업이 거의 없을 텐데, 이런 식이면 몇몇 특정 업종은 사업을 계속할 수가 없어요.” 한 경영계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노란봉투법 말고도 지금 문제가 많다”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노동조합의 불법쟁의행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탓에 다른 이슈는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지만, 사실상 사내 하도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들도 기업들에 커다란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최근 포스코 사내 하청 근로자 1066명이 포스코를 상대로 광주지법 순천지원에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포스코 사내 하청 근로자들이 낸 불법파견 소송은 이번이 무려 8차 소송이다. 특히, 이번엔 원고 수가 1∼7차 소송을 합친 규모(808명)보다도 많다. 지난 7월 28일 대법원 판결(1·2차 소송)의 영향으로 보인다. 당시 대법원은 “MES를 통해 전달된 작업 정보는 사실상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로 인해 포스코는 협력사 근로자 55명(4명은 정년이 지나서 제외)을 직고용해야 했다. 포스코는 3·4차 소송(2심까지 원고 승소)과 5∼7차 소송(1심)도 남아 있다. 불법파견 소송은 주력 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현대제철의 경우 사내 하청 근로자 161명이 2심까지 이기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며, 1심이 진행 중인 후속 소송도 8건이나 된다. 자동차, 전자 등 다른 업종으로도 소송이 확산하는 추세다. 이와 관련, 금속노조는 지난달 27일 ‘불법파견·손배가압류 소탕단’을 조직해 전국 순회 투쟁에 들어간다고 밝히면서, 소속 사업장에서 원청을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을 낸 비정규직 근로자가 17개 사업장, 7289명이라고 공개하기도 했다.

쟁점은 MES를 통한 생산관리를 원청업체의 하청 근로자에 대한 구체적 지휘·명령으로 볼 수 있느냐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MES는 생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보 제공 수단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욱래 변호사도 “원청과 하청 사이에 MES를 공유한다고 해서 근로자 파견으로 보는 판례에는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경영계에 따르면, MES를 불법적 업무지시로 판단한 우리 법원과 달리 독일과 일본에서는 도급 계약상 적법한 지시로 인정한다. 무엇보다 이런 판결이 나오게 된 근본적 원인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파견을 금지하는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사내 하도급에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아예 파견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합법 파견 업무를 32개로 한정하고 있지만, 미국·영국·프랑스는 모든 업종에서 파견근로가 허용된다. 독일은 건설, 일본은 건설·의료·안전·항만운송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허용하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과 판결로 기업을 불법 집단으로 만들고 소송이 남발되게 놔두는 것보다 지금이라도 법 개정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 모색을 시작하는 게 백배 낫다.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