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에서 치유한 유년의 상처..신간 '여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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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생텍스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단다. 생텍스가 부탁을 들어주는 이유는음. 그건 정 때문인 것 같아. 여우야."
캐서린은 여우에게 '어린 왕자'를 읽어주고 말을 건넨 다음 15초간 가만히 쳐다보는 패턴을 정했다.
"나는 여우를 만났을 때 우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이것만은 안다. 최고의 친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주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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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어린 왕자는 생텍스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단다. 생텍스가 부탁을 들어주는 이유는…음. 그건 정 때문인 것 같아. 여우야."
캐서린은 여우에게 '어린 왕자'를 읽어주고 말을 건넨 다음 15초간 가만히 쳐다보는 패턴을 정했다. 15초의 침묵은 그가 말할 차례라는 뜻이었다.
여우는 간간이 눈을 깜박거리며 캐서린을 응시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여우야. 장미는 어린 왕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그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어."
둘 사이의 거리는 2m가량. 가냘픈 물망초 한 포기뿐이었다. 여우는 캐서린이 읽어주는 '어린 왕자'를 들으며 매일 18분 정도를 그녀와 함께 있었다.
미국의 생물학자 캐서린 레이븐이 쓴 '여우와 나'(북하우스)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우정을 그린 에세이다. 책은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랐던 여인이 우연히 야생 여우를 만나 다시 세계와의 연결고리를 회복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저자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받았다. "나는 너를 원한 적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대학에 들어가자 집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캐서린의 이름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아 마음대로 돈을 썼다.
저자는 아버지를 피하고자 흘러 다니는 구름처럼 여기저기 옮겨 살았다. 일도 잘 풀리지 않았다. 동물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번잡한 학교 일과 복잡한 인간관계에 적응하지 못했다.
"부모가 나를 원하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 그는 "수은" 같은 존재가 되길 꿈꿨다. "실온에서는 증발하여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고,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진 금속"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로키산맥 한 자락에 황폐한 땅을 발견한다. 가을부터 봄까지 세찬 바람과 거의 매일 내리는 서리를 견뎌야 하는 곳, 가장 가까운 도시에 가려면 100㎞를 달려야 하는 그곳에서, "불안과 권태를 다스리던" 그는 여우를 만나고 그에게 '어린 왕자'를 읽어주며 유년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나간다.
저자는 여우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렸다. 둘은 서로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자는 여우의 예민함과 경계심을 살폈고, 여우는 저자의 무의미한 움직임과 관심을 알아챘다. 치킨게임을 하고, 달걀 숨기기 놀이를 하면서 둘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나는 여우를 만났을 때 우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이것만은 안다. 최고의 친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주는 존재다."
그러나 세상일이 늘 그러하듯, 이별의 순간은 찾아온다. 그래도 추억이라 불리는 기억의 조각은 저자의 외로웠던 삶에 작은 희망을 남긴다.
책은 PEN 에드워드 윌슨상, 노틸러스 북어워드 금메달 등 다수의 출판상을 받았다.
노승영 옮김. 448쪽. 1만9천800원.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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