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美 북부 유명 휴양 섬에 남미 난민들이 찾아온 까닭은..

입력 2022. 10. 1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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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미국 남부주의 오래된 버릇(1)
남미 마약조직 폭력에서 탈출한 주민들
美로 무작정 몰려들어 사회 고질병으로
공화·민주당, 심각성은 공감·해법은 달라
공화 정치인, 이민자 혐오 부추겨 '표몰이'
대표적 인물 플로리다 주지사 디샌티스
미국 진보 정치의 본산 매사추세츠州에
9월 이민자 50명 전용기편으로 보내
차기 대선 앞두고 反이민 표 결집 노림수
지난달 미국 북부 매사추세츠주 유명한 휴양지인 마서스비니어드섬에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남미 이민자 50명이 전용 비행기편으로 도착하는 일이 벌어졌다.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에서 온 사람들로 알려진 이들은 아직 미국에 머무를 수 있는 허가를 받지 못하고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불법 이민자’로 부를 수는 없다. 미국 이민 당국에 망명을 신청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마약 조직과 관련된 납치와 살인, 폭력에 시달리는 남미 국가들에서는 주민들이 더는 살기 어려워 이렇게 미국으로 무작정 찾아오는 일이 21세기에 들어 급격하게 증가해왔다. 이번에 도착한 50명처럼 특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가 대규모 마약 조직에 시달리는 나라들이다.
미 북부의 고급 휴양지 마서스비니어드 섬에 오게 된 남미의 난민들.
미국 이민국이 이들을 무작정 받아주는 건 아니다. 엄격한 자격 심사를 거쳐야 하고, 많은 사람이 망명자 신분을 부여받지 못해 본국으로 돌려보내진다. 긴 심사 기간에는 이들을 어딘가에는 수용해야 하고, 그렇게 수용한 사람들에게는 숙소뿐 아니라 음식 등 기초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국가들이 맺은 인도주의적 협정에 근거한 것이라 지켜야 한다. 하지만 근래 들어 그렇게 도착하는 남미인들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텍사스를 비롯한 남부 여러 주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우리가 다 수용할 수 없으니 연방정부가 나서서 이들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것에는 미국 양당이 모두 공감한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도 이민자를 모두 받아들일 순 없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하지만 그런 공식적 입장 표명과 달리, 두 당의 이해와 접근법은 서로 다르다. 지지세력이 남부 주에 몰려 있는 공화당의 경우 이들의 분노를 십분 활용한다. 2016년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장벽을 지어라(Build the wall)”라는 말을 구호로 삼고 남부 주에서 유세할 때마다 사용했다. 미국과 멕시코가 만나는 국경 지역은 너무나 길고 방대해서 한국 휴전선처럼 만드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아무리 단순한 형태의 장벽을 세운다고 해도 미국 정부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장벽이 지금의 이민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트럼프는 임기 중에 일부 구간에 보여주기용으로 장벽을 세웠지만 불법 이민자들이 어렵지 않게 넘어오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이처럼 미국의 불법 이민자 문제는 완벽한 해결책이 없고 적정 수준에서 관리만 가능할 뿐이다. 무엇보다 최근 남미 국가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가장 큰 이유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약 조직 등쌀에 못 이겨서라면 미국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남미 국가 마약 조직은 미국을 상대로 밀수 사업을 해서 돈을 벌기 때문이다. 마약 문제가 해결할 수 없는 고질병이라면 그 결과인 마약 난민 문제도 그저 관리해야 할 고질병인 셈이다.

공화당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자세를 취하는 민주당은 트럼프의 국경 장벽 세우기가 유권자들의 이민자 혐오를 부추겨 표를 모으려는 전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트럼프 임기 중에 이민자들을 가혹하게 다뤘던 일을 꾸준히 비판했다. 그 바람에 베네수엘라와 같은 나라에서는 민주당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난민을 대거 수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 사람들이 일제히 미국 국경으로 몰려갔다. 이에 놀란 바이든 행정부는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를 남미로 보내서 미국 정책이 변한 게 아니니 미국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하지만 미국 남부에서는 여전히 연방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과감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불만이 강하다. 특히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모든 이민 문제를 바이든과 민주당 탓으로 몰아붙이는 건 아주 손쉽게 점수를 얻는 방법이기 때문에 공화당 정치인들이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이를 즐겨 사용하는 사람들은 2024년 대선을 노리는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꾸준히 이민자 혐오를 부추기는 발언을 이어간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2024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를 노리는 정치인으로, 반이민 정서가 강한 트럼프 지지자의 표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정치인 중 하나가 바로 플로리다 주지사인 론 디샌티스. 이 사람은 연방 하원의원을 하다가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로 주지사에 당선된 정치인으로, 화려한 학벌과 군 복무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진보적인 언론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수 유권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공화당 내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트럼프의 뒤를 바짝 쫓으며 2위를 기록하고 있어 트럼프를 긴장시키는 중이다.

글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베네수엘라, 콜롬비아의 이민자들이 느닷없이 전용기를 타고 미 북부의 휴양지에 도착한 사건의 배경에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있었다. 사실 플로리다는 마약 난민이 대거 밀려드는 주가 아니다. 지도를 보면 그 이유가 금방 보인다. 플로리다는 미국 남동부의 바다로 툭 튀어나온 반도이기 때문에 남미의 이민자들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과거 플로리다에도 이민자들이 밀려든 적이 있다. 플로리다에서 바다를 건너 이동하면 닿을 수 있는 섬나라인 쿠바가 피델 카스트로의 주도로 공산화되던 1950년대의 일이다. 한반도에서 삼팔선 이북 지역이 공산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내려와 수도권에 자리를 잡고 우리나라 반공세력의 효시가 되었던 것처럼, 공산화 반대에 쿠바를 탈출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보트에 몸을 싣고 플로리다에 도착해 ‘반카스트로’의 기치를 든 반공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밀려드는 남미 난민은 쿠바에서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플로리다로 가지 않고 많은 경우 텍사스에서 국경을 넘는다. 따라서 플로리다 주지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문제다. 그런데도 디샌티스가 나선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2024년 선거를 위한 반이민 유권자 표 모으기 작업이다. 디샌티스는 무슨 일을 한 걸까?

우선 자신과 마찬가지로 남미의 이민자, 난민 문제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텍사스의 그레그 애벗 주지사와 의기투합해서 그 주로 들어온 난민들을 버스로 멀리 떨어진 플로리다까지 보내게 했다. 영문을 모르는 난민들이 버스를 타고 플로리다에 도착하자 플로리다주에서는 이들에게 “미국 북부에 고급 휴양지가 있는데, 그곳에 가면 집과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거기까지 가는 비행기편도 제공하겠다고 꾀어서 비행기에 태웠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포함한 50명의 난민들이 매사추세츠주 마서스비니어드 섬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섬이었을까? 여기에는 배경이 있다. 우선 매사추세츠주는 미국에서 진보 정치의 본산과도 같은 곳이다. 20세기 민주당의 대표적 진보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와 그 가문이 매사추세츠주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지금도 상원의원 중 가장 진보적인, 심지어 급진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도 이 주가 정치 기반일 만큼 꾸준히 진보 정치인을 국회로 보내고 있다. 게다가 마서스비니어드 섬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기 중에, 그리고 임기 후에도 여름휴가로 즐겨 찾는 섬으로 유명하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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