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중고보다 낫네"..파주 '리퍼 아웃렛' 가보니
다양한 전자·가전·가구 리퍼 특가 판매
2030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은 아쉬워
불황과 고물가에 신음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리퍼 상품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새 제품과 성능·품질은 별반 차이가 없으면서도 가격은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예전이라면 판매되지 못할 결함 상품이 주인을 찾게 된다는 점에서 요즘 트렌드인 친환경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리퍼는 '새로 꾸미다'라는 의미의 '리퍼비시(Refurbished)'에서 온 말이다. 판매 직후 초기 불량으로 인해 반품됐거나 고객 변심으로 인해 반품된 제품, 포장이나 외관이 훼손된 제품들을 재정비해 다시 판매하는 상품이다. 사용된 적이 없거나, 사용됐더라도 제조사에서 다시 정비를 거치기 때문에 일반적인 중고 제품과는 차이가 있다.
애플의 AS정책은 리퍼 제품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애플은 기기에 이상이 있을 경우 해당 제품을 수리해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애플이 보유한 리퍼 제품으로 교환해 준다. 애플의 경우 리퍼 제품을 홈페이지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기도 한다.
리퍼 상품이 일상화되면서 리퍼 상품만 전문적으로 모아 판매하는 곳들도 있다. 이른바 '리퍼 아웃렛'이다. 제조사·유통사가 자체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물량이 많거나 판매하지 못한 제품들을 따로 모아 쉽게 비교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공간이다. 지난 4일 파주의 리퍼 전문매장 '올랜드 아울렛'을 찾아가 봤다.
올랜드 아울렛은 전국 9개 매장을 보유한 리퍼비시 상품 전문 매장이다. 삼성전자·LG전자 등의 대형 가전은 물론 노트북·안마의자 등 고가 제품부터 가습기·전자레인지 등 소형 가전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가전과 함께 리퍼 시장이 활성화돼 있는 가구도 다양하게 갖췄다.
올랜드 아울렛 파주점은 크게 3개 동으로 나뉘어 있었다. 세탁기·건조기·냉장고 등 대형가전과 노트북·안마의자 등이 있는 가전동, 각종 가구를 모아 둔 가구동, 다양한 생활가전과 생활용품이 모여 있는 생활용품동이다. 이른 시간에 방문했음에도 가구와 가전을 둘러보는 소비자들이 꽤 많았다.
이날 만난 서동원 올랜드 아울렛 대표는 "온라인 최저가를 검색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중장년층이 리퍼 제품의 주요 고객"이라며 "리퍼 제품 외에도 단종 제품, 이월 상품, 미판매 재고 등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전동 1층에 들어서자마자 '리퍼'의 위력이 느껴졌다. 적게는 40%부터 많게는 90%까지 할인율이 매겨진 가전들이 줄지어 있었다. 소비자가격이 180만원인 대형 공기청정기를 10만원대에 판매하는가 하면 아무리봐도 새것 같은 빨간 냉장고가 인터넷 최저가의 절반 이하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꽤 많은 제품이 이미 팔렸다는 의미로 구매자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특히 눈에 띄게 싸다 싶은 제품은 여지없이 '판매완료' 도장이 찍혀 있었다. 오전 일찍 방문해 그날의 '핫 아이템'을 찾은 부지런한 소비자들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격언은 리퍼 아울렛에서도 통하는 말이다.
리퍼 가구는 오프라인 매장이 온라인과 가장 차별화할 수 있는 제품군 중 하나다. 가구의 주재료인 가죽과 나무는 똑같은 제품이라 해도 그 촉감과 모양이 모두 달라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곳의 가구 제품들은 흠집이 있거나 오래된 리퍼 제품이지만 겉으로 보기엔 새 제품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정가가 25만5000원인 한샘의 소파 테이블은 5만원대에 판매 중이었다. 진열상품이었기 때문이다. 가전제품의 경우 진열상품은 '기피 대상'이다. 하루종일 켜 놓기 때문에 성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 하지만 가구는 진열상품이라 해도 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모서리 부분이 약간 닳았거나 때가 조금 타는 정도다.
매장에는 2018 평창 올림픽에서 사용했던 2층 철제 침대와 소파 등 올림픽 숙소용품도 있었다. 올림픽 당시 선수들이 묵었던 숙소에 있던 1인용 소파는 정가보다 67% 할인된 6만원 선에 판매 중이었다. 2층 철제 침대도 절반 이하인 15만원대에 판매 중이다.
리퍼 아울렛의 최대 장점은 다양한 제품들을 한 곳에서 모두 보고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형 가전 매장들의 경우 공간 제약 때문에 가장 고가의 최신형 제품 위주로 전시하지만 이곳에서는 여러 기업의 가성비 높은 제품들을 바로 비교해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혼수가전을 맞추려는 신혼부부나 이사를 준비 중인 가족, 집 가구를 전부 교체하려는 중장년 부부가 많이 찾는다는 설명이다.
리퍼라는 이름을 달고 판매되는 제품인 만큼 소비자들도 기능에 대한 의심이 있을 수 있다. 실제 이날 매장에서 만난 50대 주부 A씨는 "가격이 일반 가전 매장보다 저렴한 것은 좋지만 아무래도 자주 고장이 나거나 기능이 부족한 건 아닐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 대표는 "제품 성능에 대한 우려를 없애기 위해 20여명의 AS기사와 작업 인원이 공장에서 제품 하자를 살핀다"고 밝혔다. 리퍼 상품인 만큼 외관에 흠집이 있거나 구성이 누락될 수는 있지만 성능 면에서는 새 제품과 다를 바가 없다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경우 AS도 받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리퍼 시장이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본다. 소비 트렌드가 '가치 소비'로 전환되고 있어서다. 리퍼 제품은 예전이라면 버려졌을 제품들이 재발굴된 사례다.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성능은 새 제품과 다를 바가 없다. 가치 소비의 대표적인 예시다. 리퍼 제품을 다루는 리퍼 전문 매장도 2017년 100여 개에서 지난해 400여개로 크게 늘었다.
롯데하이마트와 쿠팡 등 대형 브랜드들도 온라인 리퍼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쿠팡은 포장이 훼손돼 반품된 제품 등을 새 제품 가격보다 할인해 판매하는 반품·중고·리퍼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오늘의집도 침대·소파 등의 리퍼 상품을 판매한다. 롯데하이마트와 전자랜드 등도 매장에 진열했던 진열제품을 판매하는 코너가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며 가성비와 실용성을 중시하는 트렌드는 더 강화될 것"이라며 "새 제품과 별반 차이가 없으면서 가격은 저렴한 리퍼 제품을 찾는 소비자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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