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럼 얼굴 못생긴 사람 못 들어가는 데도 있겠네?"[투명장벽의 도시②]

김지혜 기자 2022. 10. 11.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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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추운 날, 제주도 바닷가였어요. 저 멀리 카페가 보이길래 아이들과 함께 뛰어갔는데, 문 앞에 ‘노키즈존’이라고 딱 써있는 거예요. 왜 안 들어가냐고 투정하는 아이에게 설명했더니 아이가 “그럼 얼굴 못생긴 사람들이 못 들어가는 곳도 있겠네?”라고 하더군요.”(남궁수진씨)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은 노키즈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경향신문 취재팀은 지난달 2일 오은선, 박민아, 남궁수진씨와 좌담회를 가졌다. 오씨는 5살 자녀를, 박씨와 남궁씨는 8살·10살 두 자녀를 키운다. 이날 좌담회에서 세 사람은 노키즈존에 갔다가 낭패를 당한 경험을 공유하며 어린이와 양육자를 환대하지 않는 도시 공간의 배타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노키즈존이 도시 공간에 흐르는 아동 혐오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소”라고 입을 모았다.

10세 이하 아동을 양육하는 오은선, 박민아, 남궁수진씨(왼쪽부터)가 지난달 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노키즈존 관련 좌담회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어린이를 키우기 전과 후, 도시 공간이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는 양육자들이 많습니다.

= 아이를 낳기 전까진 서울의 대중교통이 불편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지금은 편하게 탈 대중교통이 없어요. 유아차를 끌고 지하철 환승을 하려면 엘리베이터를 찾아서 한참을 뺑뺑 돌아야 해요. 유아차 이동권 이야기를 하면 항상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생각하게 되는 이유예요. 남편이 캐나다 출신인데, 캐나다에서는 유아차가 버스에 타면 당연하게 발 받침대가 나와요. 타고 나서도 안전벨트를 맬 때까지 출발하지 않는 문화가 일상이었어요. 서울에선 받침대와 안전벨트는커녕 기사와 승객들에게 ‘왜 아이를 데리고 타냐’는 핀잔만 듣기 일쑤였죠. 캐나다엔 아이가 출입할 수 없는 곳은 카지노, 술집, 스트립 클럽 세 군데밖에 없어요. 한국에 와 보니 아이는 그냥 다 출입금지인 거예요.

남궁 = 3개에서 5개짜리 애매한 계단들이 가장 불편해요. 유아차를 끌고 어쩌지 못하는 거예요. 인도에 세워진 차량들, 깨진 보도블럭처럼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유아차와 아이들의 이동을 정말 크게 방해하거든요. 아이들이 안전하게 공놀이 할 곳도 없어 결국 축구 교실 같은 사교육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 도시가 아이들한테 마음도 안 내어주고 공간도 안 내어준다고 느끼고 있어요.

10세 이하 아동을 양육하는 오은선, 박민아, 남궁수진씨(왼쪽부터)가 지난달 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노키즈존 관련 좌담회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도시가 어린이를 환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경험이 있다면요?

= 양육자를 배려하지 않는 식당이나 카페가 되게 많아요. 유아차와 휠체어가 아예 진입조차 어려운 곳이 있는가 하면, 버젓이 ‘노키즈존’ 붙여놓은 팻말을 만날 때도 있죠. 요즘은 그렇게 노골적인 표현보다는 ‘노 배드 패런츠 존(No Bad Parents Zone)’ ‘10세 미만의 어린이는 주의를 요합니다’로 바꿔 혐오를 표현하더군요. ‘유대인 출입금지’ ‘흑인 출입금지’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 꼭 노키즈존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유아용 의자와 식기를 제공하는 식당이라도 아이가 조금이라도 보채기 시작하면 밖으로 나가줄 것을 요구할 때가 많아요. 울고 보채는 것이 당연한 나이인데도 성인처럼 점잖게 굴 것을 강요할 때가 많아요. 사실 아이가 밖에서 울 때 가장 진 빠지고 땀 흘리는 사람은 양육자거든요. 그런데 아이다움에 대한 관용없이 양육자들에게 손가락질부터 하는 경우가 많아 마음이 너무 힘든 거죠.

= 아이들이 이제 8살, 10살인데 예쁘고 좋은 공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나이예요. 지나가다 근사한 카페를 보면 아이들이 먼저 들어가자고 해요. 그런데 검색해보면 노키즈존이라고 써있는 경우가 많죠. 그럴 때 어떻게 아이들에게 상처받지 않게 설명해줄까 고민하게 돼요.

5살 자녀를 양육하는 오은선씨가 지난달 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노키즈존 관련 좌담회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노키즈존에 대한 경험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남궁 = 너무 추운 날, 바닷가였어요. 저 멀리 카페가 보이길래 아이들과 함께 막 뛰어갔는데, 문 앞에 ‘노키즈존’이라고 딱 써있는 거죠. ‘엄마, 왜 안 들어가’ 아이가 투정하니 조심스레 설명을 해줬죠. 아이의 농담 섞인 반응이 마음에 박혔어요. “그럼 엄마, 얼굴 못생긴 사람 못 들어가는 데도 있겠네?”

= 주말에 아이들과 카페를 자주 찾아요. 웹상에선 아무런 정보 표시가 없는데 막상 가보면 떡하니 노키즈존이라 써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나와 내 아이의 존재를 거부 당하는 경험이잖아요. 볼 때마다 얼굴이 화끈해져요. 내 아이만은 이걸 안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 자주 다니던 샤브샤브 식당에 못 들어가게 된 적이 있어요. 밖에 노키즈존이라고 써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전에 유아차를 끌고 가본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아이랑 들어갈 수 없다는 거예요. 주말 외식을 한껏 기대하고 갔다가 너무 당황했죠. 사장님껜 아무 말도 못하고 급히 다른 식당을 검색했어요.

남궁 = 부당한데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게 더 화가 나는 것 같아요. 양육자나 아이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노키즈존은 이미 아동 혐오와 양육자 혐오가 전제된 곳이기 때문에 내가 한마디 하는 순간 곧 ‘진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괜히 나 때문에 다른 양육자들까지 나쁘게 생각할까봐 조심하게 되죠.

8살, 10살 자녀를 양육하는 남궁수진씨가 지난달 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노키즈존 관련 좌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자녀에게 노키즈존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알려줬나요?

남궁 = 아이들이 7살, 9살이었을 때 설명해줬어요. 반응이 좀 멍했죠. 나라는 존재 때문에 어딘가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잖아요. 아이들이 처음엔 이해를 못 했어요. ‘안 좋은 규칙을 만드는 어른이 있어, 미안해’ 사과하며 같이 얘기도 나누고 글도 써봤어요. 아이들은 노키즈존을 정말 싫어해요. 부당하다고 느껴요. 그 단어를 들을 때 ‘귀가 썩을 것 같다’고 할 정도예요.

= 아이에게 노키즈존에 대해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했어요. 어떤 말을 하더라도 혐오를 가르치는 것밖에 안 될 것 같아서요. 지금은 노키즈존을 만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가게될 곳의 동선을 미리 검색해 노키즈존과 ‘웰컴 키즈존’을 확인해요. 전자는 발에 채이게 많은데, 후자는 그 반대죠.

8살, 10살 아동을 양육하는 박민아씨가 지난달 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노키즈존 관련 좌담회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어린이를 환대하지 않는 문화가 양육자 개인과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을 어떻게 체감하나요.

= 일단 둘째 생각이 사라졌어요. 아이를 환영하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애를 낳겠어요. 낳아봐야 혐오 대상만 하나 추가되는 거잖아요.

= 점잖고 얌전하게 굴어야 하니까, 밖에 나가면 아이들을 계속 단속해요. 잔소리도 많아지고요. 아이들 손에 스마트폰 쥐어줄 수밖에 없어요. 이런 와중에 노키즈존은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대놓고 노키즈존이라 써붙인 공간은 조금 줄어든 대신, 사실상 아이는 이용할 수 없는 장소나 행소가 많아졌어요. 야외 콘서트장이나 동물을 볼 수 있는 카페, 저녁 시간 이후의 호텔 라운지들이 생각나네요.

남궁 = 아이들도 어른들의 문화와 공간을 향유하고 싶어해요. 예쁜 카페에 가서 예쁜 사진 찍고 싶어하죠. 저는 어렸을 때 친척들과 스탠드바에 갔던 기억이 너무나 행복하게 남아 있어요. 가서 이경규 아저씨도 만났어요. 이런 공간들을 아이는 누릴 수 없다고 제한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어린이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장애인이 시설에만 살기를 종용하듯 어린이도 소수의 ‘예스(Yes)키즈존’에 격리해 두려는 사회가 된 것 같아요. 카페만 해도 어른들이 가는 곳과 키즈 카페가 나뉘어져 있잖아요. 차별과 혐오에서 발생한 일인데도, 양육자와 어린이가 기꺼이 키즈존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고요.

남궁 = 비장애인 눈엔 장애인이 안 보이듯, 성인 눈에 어린이가 안 보이니 어린이에 대한 몰이해만 점점 심해지고 있어요.

노키즈존과 함께 자란 어린이들에겐 어떤 가치관이 자리잡게 될까요.

남궁 = 지금 어린이를 혐오하는 성인들이 나이가 들었을 때, 다시 혐오의 대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은 노키즈존 만들면서 아이들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배제당한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배제와 혐오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어린이들이 커서 어떤 사회를 만들지 두려워요. 지금이라도 멈춰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 다양한 존재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져서, 나와 다르면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 먼저 배울까 걱정돼요.

= 요즘 아이들은 노키즈존뿐만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관계와 다양성에 대한 경험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어요. 나와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손절’이라고 해서 쉽게 관계를 끊는 데 익숙하고요.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라는 아이들이 앞으로 사회의 정책과 시스템을 만들 텐데, 지금이야말로 문제를 바로 잡을 시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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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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