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렉스 아니면 무지출..'중간' 없어진 소비 세상

한전진 2022. 10. 1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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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 '확' 줄이는 소비자 증가
한쪽에선 여전히 명품 '오픈런'
'소비 양극화'로 경기침체 우려
샤넬이 가격인상을 앞뒀던 당시 롯데백화점 샤넬매장앞에서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소비 양극화 현상이 점차 심화하고 있다. 고물가에 따른 불황이 깊어지면서다. 일부는 '무지출 챌린지'로 씀씀이 줄이기에 골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명품 등 고가품을 거침없이 소비하고 있다. 아예 비싸거나 아예 저렴해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면서 시장에서 이른바 '중간'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 같은 소비 양극화는 고인플레 속에서 경기 침체를 더욱 부추길 것으로 우려된다.

점심값도 아끼자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8.93(2020=100)으로 전년 동기 대비 5.6% 상승했다. 8월부터 상승세가 소폭 꺾이는 추세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소비자 물가는 올해 초부터 무섭게 치솟았다. 3월 4.1%, 4월 4.8%에서 5월에는 5.4%로 급등했다. 특히 지난 6월(6.0%)과 7월(6.3%)은 6%대로 올라 외환위기였던 1998년 11월(6.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이처럼 극심한 고물가에 한 푼이라도 지출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일부 소비자들은 돈을 한 푼도 쓰지 않는 날을 SNS에 인증하는 '무지출 챌린지'를 벌이고 있다.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는 직장인도 늘었다. 위메프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도시락 관련 상품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80% 이상 증가했다. 마트에서는 이른바 치킨런도 벌어졌다.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이 연일 오르자 6000~1만원의 대형마트 치킨에 사람들이 몰렸다.

사라졌던 대형마트의 초저가 경쟁도 부활했다. 홈플러스는 최근 '최저가 보상제'를 도입했다. 홈플러스는 대형마트 3사의 상품 가격을 비교해 비싸게 구매하면 그 차액을 돌려주겠다고 선언했다. 앞서 이마트도 쿠팡과 롯데마트 등 경쟁사의 상품을 대상으로 최저가격 보상제를 도입했다. 과거 2008년 금융 위기 때나 있었던 대형마트의 '100원 단위' 경쟁이 되살아난 셈이다. 

명품은 '플렉스'

반면 한편에선 명품 등 고가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명품 카테코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1% 증가했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구찌, 디올 프라다 등 명품 업체들은 올해 초부터 1~3차례에 걸쳐 제품 가격을 올렸다. 국내 물가인상률의 최대 4배 수준에 달하는 인상이었다. 그럼에도 명품 매출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고가의 주류도 인기다. 와인과 위스키가 이제 '보통'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가 컸다. 젊은 층 사이에서 홈(home)술 등 트렌트가 불면서 위스키, 와인 수요는 계속 증가세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위스키의 수입금액은 1억2365만달러(1621억원)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62.9% 증가했다. 와인 수입금액도 같은 기간 6.2% 오른 2억9749만달러(3901억원)로 집계됐다.

고물가지만 '하나를 사도 제대로 사겠다'는 인식의 영향이 컸다. 다른 지출을 아껴 자신이 원하는 상품은 아낌없이 '플렉스'하는 셈이다. 젊은 층 사이의 '나심비'(나의 심리적 만족을 위한 비용) 트렌드가 대표적이다. 특히 고가품의 주 구매층인 고소득층은 불황에도 소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백화점의 VIP 수요가 견고한 것이 그 예다. 고소득층 사이의 보복 소비 열풍도 여전하다. 

'평균' 없는 사회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소비 양극화는 인플레이션의 대표적인 폐해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각국이 고금리 정책을 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고금리는 기업과 소비자의 채무 부담을 키우는 대표적 요인이다. 이는 다시 지출 감소로 이어진다. 악순환인 셈이다. 인플레이션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소득 양극화가 커지고 있는 것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소득 양극화는 소비 양극화의 대표적 원인으로 꼽힌다. 자산이 많은 이들은 인플레이션에도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자산이 증가한다. 하지만 중산층 이하 사람들에게 인플레이션은 치명적이다. 소득 증가보다도 물가 인상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부동산, 주식 등 자산 불평등 구조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6900원 치킨을 구매하기 위하 모여든 사람들 / 사진=한전진 기자 noretreat@

유통 업계에서는 소비 양극화에 '중간'이 사라졌다는 말도 나온다. 아예 비싸거나 아예 저렴해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중간 없는 시장은 경기 침체를 야기할 수 있다. 소비 양극화는 기본적으로 소비의 감소를 동반한다.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소비 형태가 명품 아니면 최저가 상품 위주로 바뀌고 있다. 중간 가격대 제품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추세"라며 "백화점은 명품과 사치품 위주로 상품 구성을 바꾸고 있고, 대형마트와 편의점은 이른바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득 불균형, 1인 가구 증가와 맞물려 소비 양극화는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전진 (noretreat@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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