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저잣거리와 태평성대

최동열 2022. 10. 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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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휴 기간 중 강릉 오죽한옥마을에서는 조선시대 저잣거리를 재현하는 행사가 열렸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에 옛 저잣거리 정경이 잘 나타나 있다.

저잣거리 백성들의 삶을 화두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면, 유토피아의 꿈을 키울 수 있겠는데, 오늘 우리 정치권에는 겨우 십일홍(十日紅)에 불과한 권력 공방만 난무하니 태평성시도의 꿈은 아직도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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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휴 기간 중 강릉 오죽한옥마을에서는 조선시대 저잣거리를 재현하는 행사가 열렸다. 강릉시와 강릉관광개발공사가 마련한 ‘푸드살롱’ 행사였다. 500년 전, 율곡 선생이 다녀간 강릉의 옛 장터를 주제로 연극배우들이 시대상을 재현하고, 음식문화공연, 전통놀이와 음식·의복 체험, 장터 국악콘서트 등의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가을 나들이 관광객들을 즐겁게 했다.

‘가게가 늘어선 장거리’를 의미하는 저잣거리, 즉 장터는 예나 지금이나 민초들에게는 삶의 용광로이다. 무뢰배와 야바위꾼이 설치는 곳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사람들 입길에 오르기도 하지만, 인심과 재미가 넘치고, 질경이 같은 끈질긴 생명력의 풀뿌리 문화가 만개하니 지친 심신을 달래는데 이만한 도락처가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에 옛 저잣거리 정경이 잘 나타나 있다. 문예부흥기인 18세기 영·정조 연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이 8폭 병풍 그림은 무려 2100여명이 등장하는 대작이다. 거리는 수레와 인파로 북적이고, 고급스럽게 단장된 가게마다 담뱃대와 안경, 우산, 거울 등 희귀 기호·사치품부터 각종 식료품과 생활용품이 가득하다. 민속놀이는 물론 연희패 공연과 원숭이 기예도 보이고, 행차하는 관리, 마차 탄 귀부인, 군인, 대장장이, 일꾼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중국 송(宋)·명(明)·청(淸)대에 상업화한 성시를 화제로 성행한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그림은 조선 후기 사회상을 연구하는데 소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인들이 꿈꾼 도시화·상업화, 문예 중흥의 염원이 담겨있다. 그림 속에 보이는 ‘태평(太平)’이라는 문자 뜻 그대로 모든 백성이 걱정 없고 안락한 가장 이상적인 태평성대를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백성들이 그리는 이상향을 구현하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 정치의 영역이다. 저잣거리 백성들의 삶을 화두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면, 유토피아의 꿈을 키울 수 있겠는데, 오늘 우리 정치권에는 겨우 십일홍(十日紅)에 불과한 권력 공방만 난무하니 태평성시도의 꿈은 아직도 요원하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dychoi@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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