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쳐다도 안본다"..심리도 수급도 망가진 회사채시장

박정수 2022. 10. 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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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맥경화 대진단]
계속 벌어지는 AA- 신용스프레드..연말 120bp 예상
얼어붙은 투심에 9월 회사채 순발행액 80% 급감
기관들 지갑 닫는다..조기에 '북 클로징'
레고랜드발 충격에 단기자금도 경색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글로벌 금리인상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시중 유동성도 급격하게 말라가고 있다. 최근 유럽계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 위기설까지 더해지면서 신용위험이 확산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여기에 고신용, 고금리의 한국전력 채권이나 은행채 발행으로 구축효과가 나타나면서 정작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레고랜드 조성사업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파산으로 단기자금시장까지 얼어붙었다.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는 ‘돈맥경화’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양호한 고용지표를 바탕으로 물가 잡기 위한 ‘자이언트 스텝’에 또 한번 나설 가능성이 높고, 기관투자자들은 리스크 회피 심리에 일찌감치 ‘북클로징’(장부 마감)에 돌입해 회사채를 사 줄 주체는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크레딧 시장 ‘꽁꽁’…벌어지는 크레딧 스프레드

10일 본드웹에 따르면 채권 발행 투자심리를 확인할 수 있는 크레딧 스프레드(신용등급 ‘AA-’ 기준 회사채 3년물 금리와 국고채 3년물 금리 차이)는 지난 7일 기준 110bp(1bp=0.01%p)를 기록했다.

지난 9월 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크레딧 스프레드가 100bp대로 진입했고, 이후로도 지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는 채권 발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수급이 불안정하다는 의미로 기업 자금 조달 환경이 종전보다 위축됐음을 의미한다. 크레딧 스프레드는 올해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80bp 수준을 넘어선 후 4개월 만에 30bp 가까이 올랐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9월 FOMC 이후에도 통화정책의 불확실성 지속에 따른 국고채 금리 급등 등 올해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 요인들이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문제는 올해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의 주요한 요인인 통화정책의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금리 상승이 연말까지는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라며 “연말까지 적어도 10~20bp는 추가로 상승해 120bp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BBB- 3년물로 보면 크레딧 스프레드는 695bp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최대 폭인 875bp와의 차이가 180bp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채권시장 패닉에 지난 9월 28일 한국은행은 3조원 규모의 단순매입을, 기획재정부는 2조원의 긴급 국채 바이백(조기상환) 계획을 발표했으나 회사채 시장은 예외인 상황이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권시장 패닉에 대응한 정부와 한국은행의 대응이 절반 정도 성공한 셈”이라며 “국고채 금리 반락에도 회사채 금리는 상승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기관들 지갑 닫는다…‘북 클로징’ 서둘러

투자 심리 위축과 함께 높아진 금리로 인해 회사채 발행도 크게 감소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월 회사채 발행 규모는 5조3438억원으로 전년 동월(8조4950억원) 대비 37%나 줄었다. 올해 9월 상환액이 4조6593억원으로 순발행액은 6844억원 수준이다. 지난해 같은 때(3조2808억원)와 비교하면 순발행액은 80% 가까이 급감했다.

연초 2% 중후반이었던 우량 회사채(AA-등급, 3년) 금리가 5.2%대로 급등하면서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망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 6일 기준 민간채권평가사 4사가 제시하는 AA- 등급 3년물 금리는 5.250%에 달한다. 작년 같은 기간 AA- 등급 3년물 금리는 2.172%에 불과했다.

한 증권사 DCM 담당자는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 상환을 위해 공모채 발행에 나서려 해도 시장 외면에 주저하는 상황”이라며 “특히 연말까지 금리 변동성이 크다 보니 일찌감치 기관투자가들이 북을 닫아놓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글로벌 금리 상승을 비롯해 영국발 금융위기 우려, 우크라이나 지정학적 위기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보니 리스크 오프 모드가 최고치에 달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 가파른 금리 상승에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AA급 우량채에서도 수요예측 미달이 발생하고 있다.

메리츠금융지주(AA0)가 지난달 28일에 진행한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사채(제15-1~3회) 수요예측에서 모집액 3000억원을 채우지 못하고 미달이 발생했다.

만기를 1년6개월과 2년, 3년물로 비교적 짧게 구조를 짜 리테일 수요를 겨냥했으나 전 구간에서 미달이 나타났다. 1년6개월물 1500억원 모집에 540억원, 2년물 1000억원에 680억원, 3년물 500억원에 340억원에 불과한 주문이 들어왔다.

한 증권사 채권딜러는 “최근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들만 봐도 은행 외에는 적극적으로 시장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며 “그나마 은행의 경우 4%대 수준의 대기업 대출(통상 기준금리+200bp 수준)보다는 5%대 수준의 AA급 이상의 우량채 투자가 낫기 때문에 매수 주체로 나서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AA0급인 CJ제일제당의 경우 지난달 26일 3년 단일물로 1000억원 규모의 수요예측을 진행, 모집액을 채운 기관투자가 비중은 퇴직연금 수요를 고려한 보험사를 비롯해 은행과 연기금이 컸다.

이화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재무 안정성과 업황이 우수한 기업만 회사채 소액 발행에 나서고 있다”며 “우량 등급 기업 중심으로 이전 대비 발행 규모를 축소해서 조달에 나서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레고랜드발 충격에 단기자금도 경색

강원도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 사업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상환에 실패하면서 단기자금 시장에도 찬물을 끼얹게 됐다. 지난달 29일 강원도의 지급금 지급의무 미이행으로 인해 단기 신용등급 중 우량 등급인 A1등급의 미상환 신용 이벤트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해당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은 ‘레고랜드 코리아 개발사업’과 관련해 지방 공기업인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보유하는 대출채권을 기초로 발행된 것이었다. 신용평가사들은 만기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C 등급으로 강등, 이후 D로 다시 한번 낮췄다.

현재는 대출 상환 의무를 넘겨받게 된 강원도 측이 강원중도개발에 대해 기업회생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황이다.

정대호 KB증권 연구원은 “CP시장의 혼란은 곧 단기금융시장의 노이즈”라며 “레고랜드 대출 특수목적회사(SPC)의 회생신청 결정 후 우량 CP 가격은 오히려 비싸진 데 반해 PF ABCP 스프레드는 급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PF ABCP 금리 급등으로 일반 CP 대비 스프레드는 96bp 가까이 벌어졌다. 지난달 21일에는 44bp 수준이었으나 28일 58bp까지 확대됐고 29일 88bp 수준으로 뛰었다. 지난 4일에는 106bp까지 진입했다.

정대호 연구원은 “단기자금 시장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가 군집행동과 그에 따른 리스크 관리 형태가 유사하게 이뤄진다는 점”이라며 “PF ABCP의 머니마켓펀드(MMF) 추가 편입은 상당한 제약이 따를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KB증권에 따르면 설정잔고 1조원 이상의 MMF 자산운용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CP 등 어음·전단채의 만기 도래 이후 재투자를 하지 않고, 초단기 투자인 레포 매수를 통해 일드를 다소 포기하더라고 리스크 관리를 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정 연구원은 “은행의 콜론과 양도성예금증서(CD) 등 단기 대출·예금에 투자하면서 CP 시장에서 한발씩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감지된다”며 “강원중도개발공사 청산절차 진행에 따른 ABCP 부도는 이 과정을 더 타이트하게 만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나 단기 금융시장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금전신탁의 성장이 멈추고 환매가 나타날 때 보유 CP를 받아줄 뉴 페이스 찾기가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한 증권사 DCM 담당자는 “PF ABCP를 편입한 신탁 시장의 신뢰 훼손으로 연결된다면 시장은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다”며 “이는 크레딧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쳐 투심이 더욱 얼어붙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정수 (ppj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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