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연애·결혼 시장의 弱者들이 불러올 여파

어수웅 문화부장 2022. 10. 1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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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 고도화될수록 독신율 높아지지만
남성의 性的 빈곤층 문제는 사회의 불안 요소
시장경제에 복지 필요하듯
性의 자유경쟁서 패배한 약자 문제도 고민해야

#1. 막내딸을 결혼시키며 무척 힘들어한 선배가 있다. 미술 전공으로 프랑스 유학까지 보낸 금지옥엽 귀한 딸인데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하더란다.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한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공중 부양 하며 결사반대했지만, 자식 이기는 장사는 없었다. 3년이 흐른 지금 그는 딴소리를 했다. 딸 셋 중 이 커플이 제일 잘 산다고. 사위가 돈 버는 재주는 없지만 그건 장인·장모가 도와주면 되고, 세상없이 착하고 헌신적이어서 딸을 아껴준다고.

결혼하는 남녀./Pixbay

#2. 대학 진학에 실패한 20대 후반의 남성 A는 편의점 알바로 용돈을 번다. 중산층 부모 덕에 먹고는 살지만, 연애를 하고 싶어도 늘 실패의 연속이다. 내 눈에 차는 여자들은 학력과 매력 자본 취약한 그에게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갈망도 욕망도 없는 소위 ‘초식남’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는 피 끓는 젊은 남자. 성(性)의 자유경쟁 시장에서 패배한 그의 불만과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세상은 왜 이리 불공평한가.

체면과 시선을 우선하는 독자들에게 이 글은 조금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더라도 대놓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세태니까. 10년 전쯤 결혼 트렌드와 관련해서 이런 이야기가 유행했다. 학력, 재산, 외모 등을 거칠게 평균해서 남성과 여성을 A, B, C, D 등급으로 나눈다고 하자. 결혼 시장에서 누가 제일 불리한가.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정답은 남자 D 등급과 여자 A 등급. 남자의 경우는 쉽게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을 것이다. 능력도 매력도 없는 남성들이 선택받기란 쉽지 않은 법. 반면 여성 A 등급은 왜 그런가. 가부장제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남성은 자신보다 뛰어난 여성을 부담스러워하기 마련이고, 여성 역시 눈을 낮춰 결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10년이 흘러 요즘은 트렌드가 달라졌다고 한다. 요약하면 여성 A 등급과 남성 D 등급이 크게 늘었다.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딸과 아들을 차별하지 않은 최근 10년 덕에 알파걸의 대학과 사회 진출은 급증했고, 반면 능력이 못 미치는데도 어영부영 진학과 취업에 성공하던 베타남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이 변화가 가져온 단면이 처음에 언급한 두 사례다.

요즘 세대가 생각하는 결혼의 제1 조건은 이렇다. 양쪽 모두 결혼 전보다 결혼 후의 삶이 나아질 것. 이 조건을 맞추지 못하는 결혼은 할 이유도 없고 안 하는 게 낫다는 주장을 한다. ‘멸종’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요즘 대한민국의 성혼율과 출산율 핵심에는 이 보수적 판단이 뿌리에 있다.

물론 무엇이 더 나은 삶이냐의 기준은 시대와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2022년의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방어적인 결혼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전통적인 부양·육아·가사의 성별(性別) 분업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아끼는 커플끼리의 정신적·육체적·경제적 결합. 여기까지는 긍정적인 세태의 변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두 번째 사례, 불만 가득한 남성 D 등급의 증가다. 제 자신이 못나서 연애와 결혼에 실패한 걸 어떻게 구원하느냐는 비판은 잠깐 유보하시길. 자본주의의 경제적 약자에게 국가 차원의 복지가 불가결이듯, 성의 자유경쟁 시장에서 밀려난 남성에게도 배려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쿠르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베크는 자신의 장편소설 ‘투쟁 영역의 확장’에서 이런 문장을 썼다. “어떤 이는 매일 수많은 섹스를 하고, 어떤 이는 평생 대여섯 번만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열댓 명의 여자와 섹스를 하고, 어떤 이는 한 여자와도 사랑을 하지 못한다. 이런 걸 일컬어 ‘시장의 법칙’이라고 한다.”

제동장치가 없는 경제적 자유주의가 그렇듯, 성적 자유주의도 같은 이유로 절대적 빈곤을 초래한다는 게 이 작가의 주장이다. 게다가 남성이라는 종의 불만과 분노는 사회의 불안 요소라는 차원에서 더욱 그렇다. 성적 좌절이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생각 자체가 남성 중심주의라는 반박도 있지만, 2011년 노르웨이의 총기 연쇄 살인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청년 77명을 총으로 쏴 숨지게 했던 브레이비크(Breivik) 사건의 뿌리에는 여성들이 자신을 봐주지 않는다는 청년 남성 D 등급의 패배 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게 많은 심리·사회학자의 결론이었다. 남성 성적 빈곤층의 좌절과 그에 따른 폭력 문제는 이미 전 지구적 현상. 야만을 넘어선 문명사회에서 해법은 쉽지 않아 보이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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