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조선시대 유튜버를 아십니까

이한 작가·'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저자 2022. 10. 1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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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허예진

이제는 사라져버린 옛날의 직업 중에 전기수(傳奇叟)라는 게 있다. 조선 후기에 인기가 많았다는데, 책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던 시기에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니며 직업적으로 소설을 읽어주는 사람들을 전기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단옷날 그네 타다가 이도령 눈 맞은 춘향전, 흥부와 놀부처럼 책을 읽기도 하고, 아니면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이야기를 들려줘야 했으니 감칠맛 나는 목소리에 발음도 분명해야 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완급을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꼭 필요했을 것이다.

즐거운 장면에선 신이 나서 청중들의 웃음이 터지게 하고, 원통한 장면이 나오면 화가 나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하고, 그렇게 사람들을 울고 웃기는 것이 전기수였다. 마이크 하나 없이 목소리만으로 그리 했다는 것이 기술 문명에 찌든 현대인의 시선으로 보기에 신기할 뿐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책이 값싸게 출간되고, 영화가 나오면서 전기수는 차츰 사라졌다. 그다음으로 등장한 이야기꾼은 무성영화의 변사였다. 소리가 녹음되지 않은 흑백 영상을 틀고 때맞춰 스토리를 설명하고 배우들 목소리를 대신 내주는 변사는 옷을 갈아입은 전기수였다. 그리고 시간이 다시 흘러 무성영화는 유성이 되고, 흑백은 총천연색 컬러가 되었으며 동네 반장님 댁에만 있던 텔레비전도 이제는 집집마다 있다. 채널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다음으로 유튜브가 나타났다.

요즘은 유튜버가 가장 선망받는 직업 중 하나라던가. 가상공간에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채널을 만들고, 방송을 하는데 이것도 결국 전기수가 아닌가. 저마다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은 그중 좋아하는 이야기를 골라 들으며 기뻐하고 화내거나 한다. 유튜브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어 팩트 체크를 해야 한다는 말도 들리지만, 말하는 사람이 신이 나고, 듣는 사람이 즐거우면 그걸로 또 족한 것 아닐까. 언젠가 책이고 유튜브고 다 없어지고 또 다른 무엇으로 바뀔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는 즐거움은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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