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로 막아도 소용없는 '샛길 등산'에 국립공원 '신음'

이미지 기자 2022. 10.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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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금지행위 적발 건수 증가.. 샛길 출입이 전체 적발 중 37% 차지
우후죽순 생긴 샛길로 생태계 단절
지도에 없어 사고 시 구조 어려워
도토리 등 임산물 불법채취도 성행
4일 오후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서울 북한산국립공원 칼바위 능선 탐방로 부근 샛길(비법정탐방로)을 순찰하고 있다. 직원들 뒤로 샛길 진입을 막아놓은 나무 울타리가 보인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4일 오후 1시. 서울 북한산국립공원 칼바위 능선 탐방로. 국립공원공단 직원 두 명과 함께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나무 울타리를 넘었다. 울창한 참나무 사이로 비(非)법정탐방로인 ‘샛길’이 보였다.

법정탐방로가 아닌 샛길로 들어갔다가 걸리면 과태료로 최대 50만 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길을 따라 걷자 버린 지 며칠 안 된 걸로 보이는 페트병과 비닐 쓰레기가 보였다. 태우다 만 담배꽁초와 낙엽 더미에 불을 피운 흔적까지 발견됐다. 화재 위험 때문에 산에서는 모든 종류의 발화가 불법이다.

“국립공원에서는 울타리까지 쳐가며 이런 샛길 산행을 막고 있는데…. 개인은 물론 산악회에서 단체로 적발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샛길 하나를 막으면 또 다른 샛길을 뚫으니 아무리 단속해도 끝이 없어요.”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장면 안전관리반장은 한숨을 쉬었다.
○ “비대면 산행 인기, 샛길 이용 늘려”

단풍철이 다가오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16개 산을 포함한 21개 국립공원 탐방객 수(지자체 별도 관리 한라산·오동도 제외)는 매년 3000만 명 이상이다. 2018, 2019년에는 3900만 명이 넘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다소 줄어 지난해에는 3390만 명, 올해는 8월 현재까지 2304만 명을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국립공원 내 금지행위 적발 건수는 늘었다. 2018년 2067건, 2019년 2499건에서 2020년 3004건, 2021년 3030건에 달했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니 샛길 출입이 전체 적발의 37%로 가장 많았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급증해 2018년 703건에서 2020년 1155건, 2021년 1153건으로 60%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파가 몰리는 법정탐방로보다 ‘비대면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샛길을 선호하게 된 것 같습니다.”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길창현 계장의 설명이다. 장 반장도 “‘남들이 안 가본 길을 정복하고 싶다’는 과시욕에 샛길을 타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북한산 법정탐방로는 총 96개. 공단 직원들이 단속을 통해 찾아낸 샛길은 130개다. 법정탐방로보다 많다. 길 계장은 “친구 두 명에게 샛길을 알려주면 그 친구들이 또 다른 친구 두 명에게 퍼뜨리는 식으로 샛길 정보가 퍼져나간다”며 “해당 샛길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옆에 새로운 샛길이 또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으로 샛길이 증가하면 국립공원 내 공간이 파편화되고 지역 생태계도 단절된다. 실제 기자와 공단 직원들이 샛길을 걷는 동안에도 청설모 한 마리가 샛길 쪽으로 달려오다 사람을 보고 화들짝 놀라 왔던 길로 달아났다. 북한산 보현봉의 경우 샛길 단속을 시행한 것만으로 2010년 148종이었던 일대 식물종이 2017년 277종으로 늘었다.

샛길 이용은 자연뿐 아니라 등산객에게도 위험하다. 사고가 났을 때 신속히 도움을 요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 반장은 “샛길은 지도에 기록된 법정탐방로가 아니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피해자나 공단 직원들이 정확한 위치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샛길은 길바닥 정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고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이날 기자도 가파르고 돌이 고르지 않은 샛길을 걷다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다.
○ 도토리 등 채취 불법

국립공원 내 금지행위는 샛길 출입 말고도 많다. 지난해 기준 취사 행위가 355건, 흡연과 인화물질 반입 238건, 음주 230건, 야영과 특별보호구역 출입이 각각 206건, 79건 적발됐다.

이 중 가을철에 공단 직원들을 가장 괴롭히는 위반 사례 중 하나는 도토리 등 임산물(林産物) 채취다. 국립공원 내 식물 채취는 불법이다. 공원 내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의 먹이’이기 때문이다. 식물엔 자양분이 된다. 공원 관계자들은 매년 임산물 채취를 단속하고 관련 정책을 홍보하는데도 불구하고 위반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나온다고 하소연했다.

장 반장은 “도토리 주워 가시는 분들에게 ‘여러분은 도토리묵 먹고 싶을 때 사 드시면 되지만, 다람쥐는 배고플 때 도토리를 사 먹을 수 없다’고 감정에 호소하기도 한다”고 했다. 공단 직원들은 직접 발로 뛰는 순찰뿐 아니라 드론을 이용한 사각지대 순찰도 하고 있다. 공단은 조만간 국립공원 성수기 특별단속도 벌일 예정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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