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문학정신 그리운 디지털 세상

강춘진 기자 2022. 10.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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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독자 함께 엮어내던 시대·인간성 탐구 메시지..빛 바랜 세상엔 왠지 허전
서정 시인 최계락 기리는 축제마당 등 그나마 위안

이맘때면 최계락문학상 작품 공모가 진행된다. 순수 서정을 노래한 최계락(1930~1970) 시인을 기리고자 제정된 상이다. 최계락 시인은 다양한 시적 기교를 바탕으로 울림이 큰 동시를 썼다. 동시의 특성인 절제된 언어 배치와 단순 구성을 일반 시 창작에 적절하게 활용해 소박하고 전원적인 시도 내놓았다. 40년 짧은 생애에 빚은 작품들은 문학을 풍요롭게 했다.

대표작 ‘꽃씨’는 간결하다. ‘꽃씨 속에는/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꽃씨 속에는/빠알가니 꽃도 피어서 있고//꽃씨 속에는/노오란 나비 떼가 숨어 있다.’ 아주 짧지만 압축된 시어로 원대한 우주의 신비한 이치를 담아냈다는 평을 받는다. 1969년 10월 발표된 이 작품의 시적 창의성은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시대에도 살아 꿈틀거린다. 어른들도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이라고 할 만큼 빼어나다. 시인의 문학정신은 ‘시의 순수성 옹호’로 응축된다.

문인 대다수의 이력은 등단 매체와 데뷔작, 대표작이 중심에 놓인다. 평단에서 작품세계를 다룰 정도면 유력 문단 인사 반열에 올릴 만하다. 논쟁을 촉발했다면 인상 깊은 활동을 펼쳤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치열한 작품 활동과 각별한 인생 역정의 산물인 문학정신이 거론된다면 해당 문인의 존재 이유는 특별하다. 세상 흐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겠지만, 문학정신에 담긴 가치는 남다르다. 거의 모든 문학상 밑바탕에 ‘문학정신 계승’이 깔린 이유다.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모순과 거짓을 거부한 문인들은 오로지 작품으로 승부를 걸었다. 풍자와 해학, 때론 저항 이미지가 짙게 묻어 있다. 사랑의 본질을 파고들고, 인간의 순수성을 추구한 이들은 언어를 고르고 또 골랐다. 그들은 말했다. 온 밤을 지새고 아침 해가 불쑥 떠오를 때까지 한 줄 글도 못 건진 날에는 허무감이 몰려왔다고. 창작의 고통이다. 쓰디 쓴 고통을 감내하고 또 감내했을 것이다. 시어와 문장을 갈고 닦아 빛을 낸 작품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순수와 참여형 문학 다툼 등 그동안 이런저런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것이 ‘맞다, 그르다’고 재단할 계제가 아니다. 각자 시선과 눈높이에 따라 해석하면 될 일이다. 시대 상황을 고민했든 순수 서정을 갈구했든 그 정신이 중요하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전쟁기와 산업화 및 민주화 시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당대를 대변한 작품은 시대정신을 아우르기도 했다. 문인과 문학 애호가들이 함께 호흡한 문학판은 질적·양적으로 확대재생산됐다.

문학정신은 추상적인 개념이다. 일상을 보내는 데도 정신 사나운 판에 실체가 모호한 ‘특정 정신’에 관심 둘 여유가 없기도 하다. “문학정신이 밥 먹여주느냐”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20세기에는 각종 문화 장르 중 선두주자로 대접받았던 문학의 위상이 쪼그라든 것 또한 사실이다. 21세기 디지털시대 독자들은 문학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린다. 빠른 속도 전개의 새로운 이야기와 볼거리를 다채롭게 제공하는 다매체 영상시대 문학 장르를 놓고 ‘골방 이미지’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문학정신까지 운운한다면 “열정은 높이 사지만 참 한가롭다”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탓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맘때면 전 세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노벨문학상 발표 다음 날 아침 수상자의 작품을 묶은 책이 서점 진열대에 깔렸던 시절도 있었다. 독자들은 노벨문학상 작품 세계와 작가정신을 바로 접한다는 기쁨을 안고 서점가를 누볐다. 수상자를 족집게처럼 맞히고 선제적인 마케팅을 펼친 출판사는 수익과 지명도를 동시에 올리는 ‘대박’을 터트린 게다. 물론 수상자가 예상이 빗나가면 ‘쪽박’ 차기 십상이다. 책 속의 활자보다 인터넷 플랫폼의 글이 더 익숙한 요즘에는 상상이 안 되는 문학시장 풍경이다.

사람들은 매일 접하는 영상 작품에서 급변하는 시대 흐름을 시시각각 읽어내는지도 모른다. 글쓴이와 읽는 사람의 실시간 쌍 방향 소통까지 가능한 플랫폼 작품의 위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읽는 재미는 한순간의 흥미를 채우고 금방 버려지는 현실이다. 개개인의 생각은 파편화하고 메시지 선명한 응축된 정신은 찾기 어렵다. 이런 세태에 문학정신의 효용가치를 따진다는 게 멋쩍기도 하다. 마음 한 구석에 허전한 공간이 생긴 느낌이다. 그 빈 공간을 메우기도 어려운 디지털 세상이다.


오는 31일까지 일반문학·아동문학·최계락문학연구 3개 부문으로 나눠 공모하는 제22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작품은 다음 달 초 발표된다. 시상식은 ‘최계락 문학세계’를 재해석하고 좋은 작품 발굴을 축하하는 축제의 장이 될 것이다. 수상자와 문인, 독자들이 한데 모여 문학정신이 빛 바랜 시대의 허전함을 잠시 잊을 수 있겠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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