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49] 불꽃놀이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2. 10.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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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미상, 그린파크의 불꽃놀이, 1749년, 동판화, 50×118.4㎝, 런던 영국 박물관 소장.

1749년 4월 17일 저녁 8시 반, 런던의 그린파크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당대 최고의 무대 감독과 왕립 화약 연구소가 함께 만들어낸 어마어마한 축제였다. 중앙에는 가로 120m, 높이 34m 규모의 목재 가건물을 세웠는데 화려한 채색과 장식 덕에 견고한 대리석 왕궁처럼 보였다. 100여 대의 관악기가 바로 이날을 위해 헨델이 작곡한 ‘왕궁의 불꽃놀이’를 연주하는 가운데, 101발의 포성이 울리고 건물 위 두 개의 별 뒤에서 각각 500발의 불꽃이 발사됐다. 건물 전면에서 수레바퀴가 돌면서 사방으로 불꽃을 날리다가, 중앙에서 6000발의 불꽃이 연속으로 터져 나오는 게 축제의 절정이었다.

국왕 조지 2세가 주관한 이날의 불꽃놀이는 1740년 시작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마침내 1748년 아헨 화약(和約)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은 것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였다. 무대 가운데는 대포알을 밟고 앉은 평화의 여신상이 양옆에 전쟁의 신 마르스와 바다의 신 넵튠을 거느리고 앉아 있었다. 오스트리아와 연합해 프로이센-프랑스와 대결했던 영국은 이 전쟁 이후 국제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됐으니 조지 2세가 영국에 평화와 번영을 불러왔음을 대대적으로 선전할 필요가 있었던 것.

그러나 사실 계획대로 된 건 없었다. 하필 비가 내렸고 수레바퀴가 돌지 않았고 화가 난 감독이 칼싸움을 하는 와중에 불꽃이 목조 화약고에 옮겨 붙으면서 건물이 내려앉았고, 두 명이 사망했다. 물론 비극적 참사였지만, 만약 이 화약이 모두 전쟁에 사용됐다면 사상자 수는 헤아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불꽃놀이가 아름다운 건 대포를 쏠 수도 있는 화약으로 꽃을 쏘아 올리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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