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생각 다르다고 태극기마저 외면하나

채성진 국제부 차장 2022. 10.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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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右老少 ‘분열의 나라’ 한국
태극기를 꼰대·틀극기라 경멸
우크라 국기는 단결·연대 상징
‘원팀 코리아’로 뜨겁게 뭉칠 때

개천절인 지난 3일에 이어 10일 서울 도심에선 보수 단체 주도로 ‘자유 통일을 위한 천만 서명 국민대회’가 열렸다. 광화문 일대는 태극기를 흔들고 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는 중·노년들로 가득했다. 꽉 막힌 인도를 지나며 이들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표정엔 냉소가 가득했다. 어느 젊은이는 “꼴사나운 틀딱 태극기 꼰대들” “틀극기(틀딱+태극기) 할매미들까지 설친다”는 경멸적 언사를 내뱉기도 했다. 생각과 지향이 다르다 해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싶었다. 주최 측이 건넨 태극기를 매몰차게 거부하거나 받아 들더라도 이내 길바닥에 버리는 이도 있었다. 한 젊은이에게 ‘왜 그러느냐’ 물으니 “꼴보수로 보일까 봐”라고 했다.

한글날 연휴 마지막 날인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동화면세점 일대에서 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 주최로 '자유통일을 위한 천만서명 국민대회' 집회가 열리고 있다. /박상훈 기자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때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태극기는 좌우, 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4강 열기가 후끈하던 광화문 광장과 서울광장은 “오! 필승 코리아” 함성과 함께 수많은 태극기가 펄럭이던 감동의 현장이었다. 태극기를 망토처럼 두르거나 두건처럼 쓴 청년들, 치마나 브라톱으로 만들어 맵시 있게 차려 입은 여성들이 다 함께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쳤다. 당시 태극기는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며’ 소비한 ‘힙한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지금 20~30대 MZ세대 상당수는 태극기를 ‘짜증 유발자’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날아든 한 장의 사진은 국기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했다. 동부 전선에서 거센 반격을 펼치며 러시아 점령지를 수복하는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도네츠크주 요충지 리만을 탈환하고 국기를 내거는 장면이다. 6·25전쟁 당시 9·28 서울 수복 하루 전 중앙청 건물에 걸린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하던 해병대 장병의 모습을 재현한 흑백사진이 떠올랐다.

파란 창공 아래 일렁이는 황금빛 밀밭을 오롯이 형상화한 것이 지금 우크라이나 국기다. 1918년 처음 제정됐지만 소련이 통치한 60년간 달지 못하다가 1992년 러시아에서 독립한 뒤 비로소 자유롭게 내걸 수 있었다. 지금은 평화와 반전(反戰)의 상징이 됐다. 파리 에펠탑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서울 남산타워 등 지구촌 랜드마크가 파랗고 노란 조명에 물들며 연대감을 전했다. 파란 셔츠에 노란 재킷을 입고 연단에 선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우크라이나 국기에 ‘전쟁 반대(No War)’라는 글귀를 새긴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선 각국 선수들... 한 나라의 국기엔 그런 힘이 있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평화를 뜻하고, 태극 문양은 음양의 조화를 의미한다.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는 하늘과 땅, 물과 불을 상징한다. 태극을 중심으로 조화와 통일을 이룬다. 외국인들에게 태극기 의미와 조형미를 설명하면 “이렇게 유니크하고 힙한 아이템을 본 적이 없다”며 손 하트를 쏘아댄다.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해 그저 그렇게 느껴지지만 외국인에겐 ‘세상 신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대와 지역, 이념으로 갈갈이 찢겨 있다. 기존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경제 위기가 엄습하는데 대통령 비속어 논란을 두고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로 싸우더니, 북한의 미사일 파상 공세에도 한·미·일 합동훈련을 “친일 국방”이다 “아니다” 대거리하며 다투고 있다. 카타르 월드컵이 다음 달 개막한다. 온 국민을 하나 되게 했던 2002년의 감동을 되새기며, ‘힙한 태극기’를 다시 한번 휘날려보자. 분열과 대립을 접고 스무 해 전 ‘원팀 코리아’로 뜨겁게 뭉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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