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도는 쌀.. "농가에 다른 작물 재배 지원해 공급과잉 해소를"[인사이드&인사이트]

세종=최혜령 경제부 기자 2022. 10. 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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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쌀 매입 논란, 구조적 해법은
작년 과잉생산 후폭풍으로 쌀값 45년만의 최대 하락폭
정부, 격리-매입 나섰지만, 하락 못 막자 농민들 시위
野, 남는 쌀 의무매입하도록 '양곡관리법 개정안' 내놓자..
세종=최혜령 경제부 기자
“국민의힘 측에서도 공연히 발목 잡지 마시고 쌀값 유지 정책에 대해서 흔쾌히 협력해 주길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9월 15일 전북 현장 최고위원회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굉장히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다. (과도한) 재정 투입이나 포퓰리즘적인 정책은 일종의 마약적 요소와 독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한덕수 국무총리, 10월 3일 기자간담회)

쌀값이 45년 만에 최대 폭으로 떨어지고 의무매입 논란이 이어지면서 ‘쌀 구매’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가 올해 수확기에만 총 90만 t의 쌀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했지만 야당은 남는 쌀을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매년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의무매입을 하게 되면 재정 악화와 쌀 과잉생산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올해 쌀값, 45년 만에 최대 폭 하락

통계청에 따르면 올 9월 15일 기준 쌀값은 20kg당 4만725원으로 1년 전(5만4228원)보다 24.9% 떨어졌다. 통계를 작성한 1977년 이래 45년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이다. 쌀값이 폭락한 것은 2020년, 2021년 쌀값이 이례적으로 높았던 영향도 있다. 2020년에는 기상 악화에 따른 생산량 급감으로 쌀값이 올랐고, 지난해에는 풍년임에도 쌀값이 높게 형성되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1년 전보다 37만5000t(10.7%) 급증한 388만 t에 달했다. 정부 관계자는 “농협이 조합원에게 이익을 환원한다는 차원에서 가격을 높게 매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쌀값이 높게 형성되자 쌀을 사들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가격이 너무 높아지면 (다음 해) 쌀 생산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 시장격리를 자제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잉 생산의 후폭풍은 올 초부터 불어닥쳤다. 대형마트 등 유통 단계로 넘어오면서 쌀값이 뚝 떨어졌다. 부랴부랴 정부가 초과 생산량 27만 t 중 20만 t을 우선 격리하고, 이후 시장에 남은 물량까지 10만 t을 추가로 사들였지만 쌀값 하락을 막기는 어려웠다. 급기야 농가는 논을 갈아엎고 시위를 하는 등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 농촌 지역구 민심에 쌀 의무매입 일사천리

농민들의 분노에 정치권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민생 입법과제로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를 들고나왔다.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전체 생산량의 3% 이상이거나 가격이 전년도보다 5% 이상 하락하면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했다. 현행법에서 임의조항인 시장격리를 의무조항으로 바꾼 것이다.

이 대표가 쌀값 강경 대응을 주문한 지 하루 만인 9월 15일 민주당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단독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날치기”라는 비판에도 민주당은 상임위 전체회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까지 속전속결을 예고했다. 국회 상임위 의원의 상당수가 농촌을 지역구로 두고 있어 여당도 내심 강하게 반대하지 못했다.

마음이 급해진 정부와 여당이 지난달 25일 사상 최대 규모인 45만 t의 시장격리 계획을 내놨지만 다음 날(26일) 민주당은 농해수위 전체회의에 개정안을 상정했다. 국민의힘이 안건조정위원회 회부로 맞섰지만 의결에 필요한 정족수인 3분의 2(4명)를 채운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할 수 있다.

민주당은 여당일 때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추진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년 1조 원가량을 들여 쌀값을 보전해주던 변동직불금제를 없애고 소유 농지에 따라 소득을 보전해주는 공익직불금제를 도입했다. 4일 농해수위의 농식품부 국정감사장에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은 “또다시 변동직불금제와 같은 불합리성이 있는 시장의무화로 간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고 꼬집었다.
○ 의무매입하면 연평균 1조 원 넘게 들어

정부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은 의무매입으로 쌀값이 높아지면 쌀 생산이 오히려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쌀 소비량이 줄어들면서 지금도 매년 평균 20만 t의 쌀이 남아돈다. 게다가 벼는 기계화율이 100%에 가까워 재배가 쉽고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품목으로 꼽힌다. 시장격리 의무화로 판로까지 보장되면 벼 농가 수나 재배 면적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례로 2020년 기상이 악화돼 쌀값이 치솟자 이듬해 벼 재배 면적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매년 조 단위로 투입될 재정도 부담이다. 정부는 2021년산 쌀 37만 t을 격리하는 데 이미 약 7800억 원을 투입했다. 올해 공공비축미 45만 t과 격리물량 45만 t을 합해 총 90만 t을 사들이는 데 2조 원이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3조 원 가까운 돈이 쌀값 유지에 들어가는 셈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격리를 의무화하면 2030년에는 1조4042억 원, 그 이전까지는 연평균 1조443억 원이 투입될 것으로 분석했다. 농식품부 안팎에서는 “매년 막대한 재정을 들여 쌀을 사주면 1950년대 정부가 쌀을 수매한 것과 뭐가 다르냐”는 말이 나온다.

쌀 구매에 들어가는 예산이 늘어나면 그만큼 청년 농업인이나 스마트팜 등 미래 농업을 위한 예산이 줄어든다. 정부 관계자는 “시장격리 예산은 농업 발전을 위한 투자와 상관없는 소모성, 휘발성 예산”이라며 “청년 농업인 지원을 위해 써야 할 예산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벼 재배면적 줄여야”… 구조적 해법 필요

쌀값을 둘러싸고 반복되는 논란을 두고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장기적으로는 쌀 소비 감소 추세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벼 재배면적 감축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식량안보를 위해 전체 경지면적은 유지하면서도 논에서 다른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쌀 생산을 줄이기 위해 내년 예산에 720억 원을 들여 가루쌀이나 콩, 밀 등 대체 작물을 재배하면 자금을 지원하는 ‘전략작물직불제’를 시행한다.

김태연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쌀 생산을 줄이기 위해 ‘식량안보직불금’(가칭)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전국 농업진흥지역의 10%에서 5년 동안 쌀을 생산하지 않는 대신 이들 농가에 평균 소득의 120%를 보전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휴경 농지에는 체험 관광이나 농산물 가공 등 비농업 활동을 허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세종=최혜령 경제부 기자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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