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고객보다 중요한 것
하지만 나는 고객이 '제일'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고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직원'이다. 정확히는 직원의 전문성이다.
대우증권 도곡동지점장으로 일하던 때다. 처음 발령받았을 때 이 지점은 전국 130개 점포 중 130등을 하던 곳이었다. 직원들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고, 시장마저 내리막이었다. 나는 실적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매일 다 같이 모여 시장 상황과 산업·기업을 분석하고 투자전략을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주일에 한 번 모든 직원이 기업을 직접 탐방한 뒤 리포트를 쓰고 발표하게 했다.
그런 루틴을 몇 개월간 이어가자 직원들에게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장을 보는 안목이 예리해지고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고객을 대하는 태도가 한층 적극적이고 당당해졌다. 우리 직원 덕분에 투자 의사결정에 도움을 받아서 고맙다고 말하는 고객이 늘기 시작했다. 영업실적도 쑥쑥 올랐다. 결국 부임 1년 반 만에 전국 1위 지점이 됐다.
공자의 사상 중에 '정명론(正名論)'이라는 것이 있다.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각자가 이름에 걸맞은 역할에 충실하면 사회 질서는 저절로 바로 선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프로가 프로답게' 전문성을 갖추면 고객가치는 자연히 실현된다. 프로페셔널한 증권사 직원은 고객이 현명한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이는 자연스레 고객만족으로 이어진다. 즉 직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고객 중심'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다.
신한투자증권 대표로 취임한 후에 지금까지 한시도 놓지 않은 생각은 모든 직원을 프로페셔널한 자본시장 전문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취임 후 신입사원을 리서치센터로 보내 6개월간 공부하게 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리서치 베이스의 의사결정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전문성으로 고객에게 도움을 준 직원은 신뢰를 얻고 더 많은 자산과 고객 기반을 갖게 된다. 회사의 수익이 뒤따라온다. 직원과 고객과 회사가 모두 윈윈하는 그림이 만들어진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회사의 수익은 '뒤따라오는' 것이라는 점이다. 수익은 직원이 프로답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고객에게 신뢰를 얻을 때 따라오는 결과물일 뿐이다. 이 순서를 바꿔 이익을 먼저 생각하면 본질적으로 수행해야 할 역할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고객도, 수익도 잃는다.
가끔 나에게도 "회사 수익 먼저"라는 속삭임이 들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제약회사 머크를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그들의 비전을 되새긴다.
"약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다. 수익은 사람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이다."
[이영창 신한투자증권 대표이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경데스크] 백경란 청장과 백신 피해자들
- [신장섭의 기업과 경제] 다시 생각하는 경로 우대
- [기고] 납품단가연동제, 시장경제 법리와 조화 이뤄야
- [매경춘추] 0.81,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
- [기자24시] 여당 간사도 질책한 법무부 `방어 국감`
- 강경준, 상간남 피소…사랑꾼 이미지 타격 [MK픽] - 스타투데이
- 고난의 세월 딛고…수주 대박 두산에너빌
- 럭비 국대 출신 방송인, 옛 연인 강간·상해 혐의로 구속 - MK스포츠
- 이찬원, 이태원 참사에 "노래 못해요" 했다가 봉변 당했다 - 스타투데이
- 양희은·양희경 자매, 오늘(4일) 모친상 - 스타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