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백의자유롭게세상보기] 포용적 다양성이 필요한 우리 정치
더 나은 환경 조성이 정치 존재 이유
정권 바뀔 때마다 지난 정책 정쟁화
잘한 점은 받아들이는 포용력 필요
필자가 속한 대학에서 최근 신임교수 환영 간담회가 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 신임교수들은 최근까지 면접부터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교수회의 등을 온라인으로만 진행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새롭게 부임한 학교에 소속감도 느끼기 어려웠고 교수 간 지적 교류에 한계를 절감했다. 이런 아쉬움을 떨어내고자 새로 부임하는 교수들이 자신을 소개하고 동료들과 소통하는 간담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 간담회는 포용적 다양성의 가치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포용적 다양성이란 차이의 존재를 인정하는 수동적 다양성이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과 관점을 존중하고 수용하여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창의적 도전을 이끄는 태도와 행위를 뜻한다. 이러한 포용적 다양성의 개념은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다양성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자 현대사회가 전근대 봉건사회와 구분되는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사회학의 창건자 가운데 한 사람인 에밀 뒤르켐은 1893년 ‘사회분업론’에서 전근대사회와 근대사회를 구분하는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의 개념을 주창했다. 기계적 연대는 사람들 사이의 유사성을 근간으로 형성된 연대이다. 신분제와 1차산업에 기반한 전근대사회에서 다양성은 매우 제한되었기에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제한적으로 결성하는 전근대적 연대가 바로 기계적 연대이다.
하지만 뒤르켐은 근대사회의 연대는 유기적 연대의 형태를 띤다고 보았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며 신분제도가 붕괴하고 산업이 분화되며 사람의 이동도 활발해지니 자연스레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 대신 다른 일을 하고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과 교류하며 자신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연대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유기적 연대를 통해 전근대사회의 질곡을 넘어 근대사회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 대학 캠퍼스와 19세기 유럽의 사회상은 너무나도 다르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구성원 간 다양성을 존중하며 이를 통해 서로 보완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대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우리의 노력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가능하게 만드는 출발점이며 모든 인간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천부인권의 실질적 운영 원리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를 살펴보자. 많은 영역에서 포용적 다양성은 이미 일상화된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만은 포용적 다양성은 여전히 남의 얘기로 들린다. 양당제에 기반한 소선거구제와 대통령선거라는 제도가 포용적 다양성의 추구를 어렵게 만드는 배경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상대방의 잘못은 나의 이득이며 내가 잘하기보다는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꼬투리를 잡는 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의 존재 이유는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존재를 반영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여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상대방을 비판하고 잘못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대신 상대 진영의 정치적 입장과 주요 정책의 선한 의도를 받아들여 나의 입장과 생각을 개선하고 더 많은 사람의 복리를 증진하는 안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쟁을 통한 정권 획득이 정치의 본질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권의 정책은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쟁의 소재가 된다. 이 과정에서 포용적 다양성은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비단 선거 과정에서는 비판하더라도 일단 정권을 잡으면 다양성을 존중해 본받을 점, 잘한 점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민을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탈원전정책이 부적절하게 시행되었더라도 재생에너지에 대한 의지는 받아들이며, 부동산 가격 억제 정책은 실패했더라도 자산불평등을 줄이려는 의도는 이어갈 필요가 있다. 비판하더라도 포용력을 가지고 본받을 점을 찾아야 한다. 다름을 통해 정치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포용적 다양성이 정치의 영역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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