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하려고 하면 할수록 '개밥에 도토리' 된다

한겨레 2022. 10. 1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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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픽사베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빼면 그냥 세상이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세상을 빼면 희망이 보인다

# 1

어느 가수가 나를 찾아와서는 운동권 노래를 같이하자고 말했다. 나는 그럴만한 자질도 없고 그럴 형편도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뒷날 그 동무는 운동권 가수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사실 나는 내 노래가 운동권에서 불리기에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내가 볼 수 있는 것만 노래했을 뿐, 보이지 않는 것을 노래하기에는 실력이 받쳐주질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내 노래는 자연스레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되었고, 나 역시 점점 왕따가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운동권 노래를 섣불리 만들 수도 없는 일이었다. 노래라는 것이 무슨 동기가 있거나 가슴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건데 조그만 약방에 갇혀서 무슨 운동권 노래를 만들 수 있겠나 싶었다. 사실 나는 운동권 노래라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말이 언제부터 왜 생겨났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 2

어느 후배가 자기가 쓴 책이 나왔다며 책을 보내왔다. 책을 펼쳐보니 여러 꼭지 가운데 나에 관한 얘기도 있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읽어 보았는데 생각과 달리 좀 부담스러운 데가 있었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나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 쓴 것도 그랬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과대 포장한 것이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껄끄러웠다. 읽고 나서 칭찬을 해 주려고 했는데 그 마음이 조금씩 사그라졌고 나는 한숨을 쉬며 이런 경우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기어이 전화를 걸어 불편한 얘기를 하고 말았다.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쓴 글인데 괜히 전화했나 싶어, 칭찬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당연히 칭찬받을 줄 알았던 후배는 마음이 상했을 것이다. 그냥 수고했다는 말을 하면 될 일을 내가 너무 옹졸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과대 포장된 내 모습을 생각하니 불편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나마 잘했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다면 나를 포장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건데 그래서 나름 느긋함이라는 것도 있었던 건데 이번 일은 참 씁쓸하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후배는 아무 잘못이 없는 것이었다. 포장을 싫어하는 내가 문제가 있는 거였지.

# 3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 시절 인터뷰 기사를 보면 어떤 신문에는 내가 서울대 약대를 나온 거로 되어 있고 또 어떤 신문에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온 거로 되어 있다. 아버지 약방에서 종업원으로 일한 것이 와전되어 그렇게 된 것 같고,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었다는 말이 와전되어 그리된 것 같았다. 내가 약대를 나왔다거나 사회학과를 나왔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기사가 그리 나왔으니 한순간에 나는 거짓말쟁이가 된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창피했던지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훌륭한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대학을 다니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서울대 약대와 사회학과를 나온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더 웃기는 것은 그 많은 대학 가운데 서울대가 당첨되었다는 건데 기자의 눈에도 내가 공부 잘하는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 4

나는 누가 나에게 작곡가라고 하거나 가수라고 하면 무척 당황한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까지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음악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노래를 부른 것도 가수들을 잘 알지 못해서 그냥 기록하는 의미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가수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나는 그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한번은 내 이름 앞에 작곡가, 가수라고 써도 되겠냐고 묻는 어떤 기자한테 꼭 써야 한다면 ‘ᄐᆞ래마니’(노래 캐는 사람)로 써 달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정발산의 한돌. 조현 종교전문기자

# 5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지만, 나는 포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뜯기는 포장,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쉽게 이해를 하지 못했다. 포장에는 사전적 의미 말고 감춤, 벽, 스펙, 화장, 옷, 성형의 뜻도 있다고 본다. 나는 내 속을 숨김없이 다 보여줬는데 다른 동무들은 뭔가 벽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 다닐 때는 나랑 친하게 지내려는 동무들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속을 보여 주지 않은 동무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속을 다 보여 준 내가 비정상이라는 것이었다. 사회적 통념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그래도 비정상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살기에는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아저씨가 그랬다. 아무리 믿고 싶더라도 그것의 반의반만 믿으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세상살이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일들을 되풀이해서 겪다 보니 이제는 누가 나에게 친근감을 보이면 나도 모르게 주춤거리게 된다.

# 6

어쩌다 방송국에 가면 주눅이 들어 고개를 제대로 쳐들지 못하곤 했다.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그런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보는 눈초리들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개밥에 도토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에게 그런 병이 있었지만 참 불쌍하게 살았다는 생각도 든다. 갖은 고생 끝에 이제는 유명 인사가 된 동무가 있었다. 한번은 방송을 마치고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는데 1층 문 앞에 그 동무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반가워서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분명히 눈이 마주쳤는데 그 동무는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아, 나와 만나는 것을 꺼리는구나.’ 동무의 이름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도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는 얼마나 허전했던지, 내가 뭘 잘못했나 싶기도 하고 개밥에 도토리가 된 것 같기도 하여 기분이 영 꿀꿀했다. 도토리를 어디에다 치워버리든지 해야지 이거야 원 가는 데마다 도토리가 나타나니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도토리묵을 자주 먹으면 좀 나아지려나? 생각해보니 그런 일들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어느 무명 가수에게 노래를 준 적이 있었는데 그 무명 가수는 가타부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무명 가수에게조차도 개밥에 도토리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 7

가끔은 내가 사회적 흐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함께 어울려 흐를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어느 날 바람에 등 떠밀려 흐름 속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시류에 배 띄어놓고 함께 뱃놀이하자는 동무에게 뱃멀미가 심하다는 핑계를 대고 빠져나왔다. 산에서 내려다보이던 평화가 마을로 내려오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막상 흐름 속에 들어와 보니 어지럽고 낯설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 그러는 사람도 없는데도 사람들이 무서웠고 나만 동떨어진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저절로 왕따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시류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을 생각도 없었다. 결국 사람들한테 이용을 당하고 사기를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릴수록 믿음과 사랑이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슬펐다.

# 8

살다 보면 한순간에 개밥에 도토리가 되는 경우가 있다. 백화점에 가면 선물을 포장해 주는 곳이 있는데 어떤 선물이든 예쁘고 고급스럽게 포장을 해준다. 하지만 포장지는 결국 찢기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아무리 자신을 포장해도 어느 순간에 포장지는 찢어지기 마련이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모자람에서 일어나는 사고보다 지나침에서 일어나는 사고가 잦으니 멈춤이 필요하다.

# 9

정치하는 사람 중엔 개밥에 도토리들이 많다. 바른길로 가지 않고 톡톡 튀어서 자기를 돋보이려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수작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잘 알 텐데 막무가내로 그런 행위를 한다. 과연 얼굴이 철판이다. 철판이 아니면 그런 행위를 할 수 없다. 도대체 에스엔에스(SNS)를 왜 그리 열심히 하는지 당최 이해되지 않는다. 혹시 개밥에 도토리를 스포트라이트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픽사베이

# 10

예전에는 성형이라는 말이 별로 없었다. 곰보수술, 화상 수술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요즘처럼 대놓고 얼굴 고치는 성형수술이라는 말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성형을 포장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유전자까지 성형이 되는 것은 아니며 성형으로 예쁜 얼굴이 돼도 때 묻은 마음까지 포장되는 것 또한 아니다. 포장에 얽매이다 보면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성형한 얼굴이 자기의 본 얼굴이라고 믿는 것처럼.

# 11

왕따였던 시절을 뒤돌아보면 내 옆에 아버지도 있었고 어머니도 있었고 형, 동생도 있었는데 나는 왜 스스로 왕따라고 생각했던 걸까? 어쩌면 나도 모르게 포장지를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중·고등학교 시절에 열등감이라는 말이 나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힌 적이 있었다. 집이 가난한 것은 열등감이 아닌데 그걸 열등감이라고 생각했고 공부를 못하는 것도, 여자 친구가 없는 것도 열등감이 아닌데 그걸 열등감이라고 생각해서 허송세월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포장지로 감추려 했고 포장지를 구하기 위해서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상상은 달콤한 포장지니까. 그때 내가 어리석었던 것은 상상을 너무 자주 했다는 것이다. 자기한테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 개밥에 도토리가 될 일이 없는데 나는 그걸 게을리하고 포장지를 찾으려 했기 때문에 개밥에 도토리가 된 것이다.

# 12

고등학교 2학년 때 와이엠시에이(YMCA)에서 연극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주인공을 받쳐주는 단역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할 생각을 하지 않고 주인공 역을 부러워했다. 그때 내 역할에 충실했더라면 개밥에 도토리가 되지 않았을 텐데 주인공 역을 탐하는 바람에 개밥에 도토리가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개밥에 도토리는 자기 앞에 놓인 떡을 싫어하고 남의 떡을 탐할 때 그리된다.

# 13

내가 처음으로 나를 개밥에 도토리라고 생각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공부를 못해서 2학년에 올라가지 못하고 1학년을 다시 다니게 되었는데 새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달리 나의 헌 교복이 나를 날마다 외롭게 하였다. 아, 나만 헌 교복이구나! 그러다가 차츰차츰 개밥에 도토리로 변해가는 나를 보게 되었다. 2학년에 올라간 동무들은 자연스레 나와 멀어졌고 심지어 어떤 양아치 동무는 자기한테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나를 하급생 취급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 여덟명의 양아치 동무들한테 몰매를 맞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입학 동기였는데 내가 낙제를 해서 이런 수모를 당하는가 싶었다. 나는 여덟명의 주먹을 순순히 다 받아들였다. 그날 피투성이가 된 채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거리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종로 국제극장 앞을 지나는데 어떤 경찰이 나를 보고는 괜찮으냐고 물었다. 피 묻은 도토리는 괜찮다며 계속 걸었다.

# 14

도토리는 괜히 개밥 그릇에 떨어져서는 개밥에 도토리가 되었다. 그냥 숲속에 떨어졌으면 청설모에게도 다람쥐에게도 좋은 음식이 되었을 텐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내가 개밥에 도토리가 된 것은 내가 나를 포장하려고 했다는 것,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세상은 내가 개밥이든 도토리든 전혀 상관을 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포장을 하며 살지는 않았지만 포장을 하려고 상상한 적이 있었다면 그것 역시 포장을 한 거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내 잘못으로 개밥에 도토리가 된 것을 가지고 세상 탓을 하고 있었으니 좀 유치하긴 했다.

# 15

나는 오이를 못 먹는다. 오이는 나한테 개밥에 도토리라고 하고 나는 오이한테 개밥에 도토리라고 한다. 어느 날 내가 오이를 먹었다. 오이가 오이 되고 나는 내가 되었다. 내 속에 사랑 있으면 이렇게 편하고 좋은 것을 내 속에 미움이 있으니 멀쩡한 것들이 도토리가 되었구나. 도토리를 외로움으로 덮지 말자. 누가 나를 개밥에 도토리로 만들었나. 미움을 버리고 사랑을 심어 보자.

# 16

나는 도토리를 미워했지만 사랑으로 마음에 품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이 세상에서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개밥에 도토리가 된 나를 누가 사랑해 주겠는가? 세상한테 피해 준 일 없고 죄지은 일 없으니 개밥에 도토리가 될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다. 죄지은 일 없으니 주눅 들지 말고 세상한테 피해 준 일 없으니 어깨 펴고 살자. 더 이상 나는 개밥에 도토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내가 희망이 되고 세상이 개밥으로 보이는 이상한 수학 공식이 떠올랐다. 1988-0=1988, 0-1988=-1988.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빼면 그냥 세상이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세상을 빼면 희망이 보인다. 희망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싹을 틔우니까.

온 세상에 외치고 싶다
믿고 살자고 믿고 살자고
온 세상에 외치고 싶다
사랑하자고 사랑하자고
세상 사람들 나를 보더니
손짓하며 웃는다
나도 따라서 웃어 보지만
왠지 외롭다
허허 벌판에 내버려진
돌멩이의 외로운 노래
세상 사람들 그 노래를
못 들은 척 하네(‘개밥의 도토리’·1988)

글 한돌(<홀로 아리랑>·<개똥벌레>·<조율>·<불씨>·<유리벽>·<터> 등의 작곡가 겸 가수·작가)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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