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길고양이는 우리 초등학교가 책임져요'
동아리 꾸려 집 만들어주고 밥도 줘
고양이굿즈 만들어 판매금 기부하기도
마을과 생명에 대한 감각 배우는 기회
유기동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초등학생들이 나서서 동네 길고양이들과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인천 서흥초등학교의 ‘묘한건축사무소’는 지난해 여름 결성된 길고양이 보호 동아리다. 지역 내 현안을 고민하고 해결하는 주민자치 프로그램인 ‘리빙랩’에서 마을활동가들과 학생들이 지역 문제를 찾다가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온 게 길고양이 문제였다고 한다. 서흥초가 있는 송림동은 현재 철거 또는 재개발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보니 길고양이가 위험한 상황이다. 아이들은 고양이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아보고 뭘 해주면 좋을지 연구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학교 동아리로 자리잡게 됐다. 묘한건축사무소에는 현재 서흥초 고학년 학생들과 동네 주민 등 1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가장 먼저 중점을 둔 활동은 길고양이들이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는 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아리 이름도 ‘묘한건축사무소’가 됐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의 도움을 받아 고양이집 10여개를 만들어 동네에 설치하기도 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또 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해 아이들이 주기적으로 고양이 밥을 주고 청소도 한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어떤 고양이들이 어디에서 지내고 있는지 살피고, 고양이들의 밥그릇을 조금씩 이동하는 방식으로 고양이들의 동선을 바꿔 위험으로부터 대피시키고 있기도 하다.
매주 고양이 전문 잡지인 <매거진 탁> 집필진과 만나서 고양이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도 갖고 있다. 이번 가을에는 많은 축제에 참여해 부스를 설치하고 길고양이 사료비와 치료비 등으로 활용할 기금을 모금할 예정이다. 아이들은 요즘 축제 부스에서 판매할, 길고양이 만나는 법을 알려주는 소책자를 한창 제작 중이다. 다행히 지역 어르신들이 아이들의 활동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이 활동을 불편해하는 지역민이 있을까봐 동아리는 조심스럽게 활동하고 있다.
오혜림 학생은 “평소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친구가 함께하자고 해서 동아리에 가입하게 됐는데, 친구들과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며 활동하는 게 재미있다”며 “앞으로는 유기동물 보호소에 가서도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임채현 학생은 “우리나라에서 예전에는 고양이가 왕의 사랑을 받는 진귀한 존재로 대접을 받았는데, 지금은 학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게 안타깝다”며 “이 활동을 통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정서율 학생은 “평소 학교나 학원에 다닐 때 길고양이를 많이 봤는데 누가 얘네들을 돌봐주나 궁금했는데 동아리가 있어서 가입하게 됐다”며 “실제로 고양이들이 굶주리지 않게 내가 돌봐주게 되니 굉장히 뿌듯하다”고 전했다.
송한별 교사는 “아이들이 주말이나 연휴 때도 자발적으로 고양이 밥을 챙기고 청소를 하는 등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다 요즘에는 ‘마을’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는데 아이들이 계속 마을을 돌아다니며 고양이를 챙기다 보니 마을에 대한 감각도 생겨나는 것 같다”며 “이 활동을 통해 책임감과 마을을 배워나가는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도 화성시의 노진초등학교 학생들도 올해 동네 길고양이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전교생이 68명 정도로 소규모 학교인 노진초등학교는 학교자율과정인 마을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아이들이 마을과 관련해 선택하고 싶은 분야를 스스로 골라 무학년제로 섞여서 함께 배워나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10명의 아이들이 ‘길고양이와 인간이 공존하는 환경’을 주제로 공부하기를 원했다. 학교가 화성시 면 지역에 있다 보니 아이들이 살고 있는 동네와 학교 인근에 떠돌아다니는 길고양이가 많았다. 아이들은 그 길고양이들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아이디어를 내 지난 7월 이 주제로 3일 동안 12차시에 걸친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하루는 반려동물 전문 강사를 초청해 길고양이의 습성과 살아가는 방식, 길고양이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강의를 들었다. 하루는 책갈피와 열쇠고리 등 길고양이 굿즈를 만들었고, 마지막 날에는 학교 인근 농협으로 나가 마을 주민들에게 굿즈를 판매했다. 50여개의 굿즈를 만들었는데 마을 주민들에게 모두 팔렸다. 수익금은 최근 동물보호단체 헬프애니멀에 전달했다.
이는 아이들에게 동물보호와 봉사활동, 기부 등에 대해 두루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문소리 학생은 “이 수업을 통해 길고양이들을 대하는 방법과 먹이면 좋은 음식과 안 좋은 음식 등을 알게 되어 좋았다”며 “앞으로 유기동물에 대해 봉사도 하고 싶고 유기동물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보윤 학생은 “봉사활동을 통해 더 나은 지구와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나도 커서 길고양이를 구조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은찬 학생은 “기부를 해서 너무 기쁘고 뿌듯했다”며 “어른이 되면 우리 마을 고양이도 도우면서 기부도 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 교육과정을 담당한 김하영 교사는 “아이들이 기부금을 마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판매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특하기도 했고, 이 교육과정을 통해서 유기동물이나 봉사활동 등과 같은 직업적인 관심으로도 성장해나가는 걸 볼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기부금을 전달받은 헬프애니멀 임수연 대표는 “길고양이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소중한 마음을 나눠준 노진초등학교 학생들과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길고양이와 유기동물 치료를 위한 기금으로 소중히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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