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생신날 모였다가..무주 일가족 가스 누출 참변
큰딸은 병원으로 옮겨 치료 중
무주의료원 분향소 3곳 운영
“어떻게 이런 날벼락이 벌어질 수 있나요. 친구가 걱정돼 아침 일찍 청주에서 달려오면서도 할 말을 잃어 버렸습니다.”
10일 전북 무주군 무주의료원 장례식장 제3분향소 앞에 4명의 고교생이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 분향소엔 전날 무주군 무풍면에서 가스중독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부부의 빈소가 차려져 있었다. 고교생들은 졸지에 부모를 잃은 아들 정모군의 친구들이었다. 청주에서 고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이들은 친구의 부모가 모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무주로 달려왔다.
조금 뒤 친구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빈소 밖으로 나온 정군은 친구들을 부둥켜안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오열했다. 친구 최모군은 “너의 곁에는 우리가 남아 있다. 힘내라”며 어깨를 감싸안고 눈물을 쏟았다. 박모군은 “우리 친구 고3인데 어떡하냐”며 가슴을 쳤다.
이날 무주의료원의 3개 분향소 모두 참변을 당한 가족들의 분향소로 쓰였다. 어머니 곽모씨(84)는 1분향소에 안치됐고, 2분향소에는 첫째 사위와 손녀딸의 빈소였다. 부부가 모두 숨진 둘째딸과 둘째 사위 빈소는 3분향소에 안치됐다.
마을 주민 박모씨는 “혼자 사시는 할머니였지만 늘 건강하셨다. 다른 날도 아닌 생일 축하를 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였다가 변을 당했다니 할 말이 없다”면서 “마을 주민들도 소식을 듣고 밤잠을 설치며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일하게 맥박이 잡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 중인 큰딸의 아들 신모군은 “아버지와 누나를 함께 잃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치료 중이신데 무사하길 기도하고 있다”면서 “나는 일이 밀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사인을 일산화탄소에 의한 중독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김유선 무주경찰서 수사과장은 “간이검사 결과 고인들 혈액에서 모두 일산화탄소 양성반응이 나왔으며 범죄 소견은 없다”고 말했다.
전북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날 오전부터 최종 사인을 밝혀내기 위해 현장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2018년 강릉 펜션 가스중독 사고 이후 보일러를 설치할 경우 가스감지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데 이번 사고 현장 보일러는 주민들이 설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면서 “현재로선 보일러 설치 과정의 위법 여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9일 오후 4시55분쯤 전북 무주군 무풍면 주택에서 집주인 곽씨 등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곽씨의 큰사위(64)를 비롯해 큰손녀(33), 작은딸(42), 작은 사위(49)가 숨졌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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