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맞은 소나무 언덕 "소싯적 추억 새록"
담벼락 낮추고 ‘녹지 공원’ 탈바꿈…지난주 임시개방
비에도 방문객 발길 줄이어…이름 걸맞게 소나무 많아
“저 담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스물다섯 살 때 서울 종로구 풍문여고에 윤리 교사로 부임해 13년간 일한 전직 교사 박상미씨(64)는 약 40년 만에 학교 밖 담벼락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있게 됐다. 지난 9일 남편과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열린송현)을 찾은 박씨는 “(풍문여고 재직 때) 일을 마친 후 안국역 사거리에 있던 건물 1층 카페를 남편과 자주 방문했다”며 “추억이 많이 싸여 있는 곳인데, 개방한다고 해서 방문했다”고 말했다.
100년가량 베일에 싸여 있던 종로구 송현동 일대 부지가 ‘열린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임시 개방 3일째인 이날, 쌀쌀하고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열린송현을 찾는 시민의 발길이 이어졌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송현동은 조선시대에 주로 왕족이 흩어져 살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조선총독부가 세운 조선식산은행 사택이 들어서면서 4m에 달하는 높은 담이 쌓였다. 광복 후에는 1997년까지 주한미국대사관 직원의 숙소로 사용됐다.
이후 이곳 부지의 소유권은 정부, 삼성생명, 대한항공 순으로 넘어갔다. 대한항공은 이곳에 호텔을 지으려고 했지만 보안상 이유로 허가받지 못했다. 서울시가 대한항공,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3자 매매 교환방식으로 시유지인 구 서울의료원 남측 부지와 맞교환해 LH가 송현동 부지를 소유하게 됐고, 곧 서울시가 소유권을 갖게 된다. 서울시는 지난 7일 담벼락 높이를 1.2m로 낮추고, 별도 입구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임시개방했다.
이날 오전 11시, 부슬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50명가량의 시민이 ‘열린송현’을 찾았다. 긴팔, 긴바지에 재킷 하나씩을 걸친 시민들은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장을 누볐다. 광장 한구석에는 분홍색, 연보라색의 코스모스와 노란색 해바라기가 피어 있었다.
인천 남동구에서 온 홍원표씨(70)는 “젊을 때 4년간 이곳 건너편 건물에 있던 회사에 다녔고 거기서 아내도 만났다”며 “옛날에는 여기 부지 담벼락에 미군 보초병들이 서있었다”고 회고했다. 서울 노원구에서 온 김정민씨(54)는 “서울시청에서 오래 근무하신 장인어른이 인사동부터 송현동, 청계천을 한번 둘러보시면 옛날 생각 나실까해서 해서 궂은 날씨에도 한 바퀴 돌아볼 참”이라고 했다.
‘소나무 언덕’(송현)이라는 이름에 맞게 ‘열린송현’에는 소나무가 많다. 잔디광장에는 남산 소나무 씨앗을 키운 25년 수령의 ‘남산 소나무 후계목’이 서 있고, 덕성여중과 맞닿은 부지 안쪽에는 어린 소나무 약 30그루가 심겨 있다.
서울시 공공개발기획담당관은 “100년 이상 시민들이 접근하기 힘들었던 송현동 부지를 시민 전체에게 공개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향후 이건희 기증관이 완공된 이후에는 부지 내 문화 기능과 공원 기능을 함께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기증한 미술품 등을 전시하는 ‘이건희 기증관’이 송현동 부지에 들어선다. 2025년 착공해 2027년 개장한다. 서울시는 이건희 기증관 착공 전까지 이곳을 공원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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