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산하 기관 '박물관에나 갈 노동의식'
15곳 "육아휴직 대체인력, 상황 따라서 계약 변동 가능"
경주문화재연구소는 기간제 발굴 보조원 '일급제' 적용
경북 경주에 있는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5월 발굴 작업을 위한 기간제 임시보조원을 뽑았다. 연구소는 채용공고상 자격요건으로 ‘고고학과·사학과 등 문화재 학사 재학 이상’을 제시하는 등 나름대로 전문성 있는 인재를 구했다. 그런데 이 임시보조원은 함께 채용된 다른 공무직·기간제 연구원과 달리 식대나 명절휴가비 등을 받지 못한다. 반년을 함께 일할 보조원인데도 연구소가 매일 근로계약이 생성·소멸하는 일용직처럼 ‘일급제’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가기관인 문화재청 소속 공무직·기간제 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에서 노동권을 침해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명확한 평가 기준 없이 저성과자로 판단해 쉽게 해고할 수 있거나, 대체인력의 고용기간을 보장하지 않고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하는 등 불합리한 조항·사례가 다수 나왔다. ‘신상정보’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등 인권침해 소지도 컸다.
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은 ‘문화재청 공무직노동자 인사노무관리 실무사례집’과 공무직 인사관리규정, 취업규칙, 소속기관들의 채용공고문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문제 조항들이 다수 발견됐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평가자의 자의적인 기준으로 저성과자를 판단해 해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었다. 인사관리규정을 보면 문화재청은 ‘근무성적평가 결과 최근 3년 이내 2회 연속으로 최하위 등급을 받은 경우’에 고용기간 내 계약해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평가표에 기재된 평가 기준은 “담당업무를 책임감 있게 수행한다” “맡은 업무 및 조직 발전에 헌신적인 자세를 갖는다”는 등 비객관적·비정량적이다.
육아휴직 대체인력을 뽑으면서 고용기간을 보장하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 문화재청 소속기관들이 올해 올린 기간제 노동자(육아휴직 대체) 채용공고들을 보면, “육아휴직 근로자의 상황에 따라 근무기간이 변동할 수 있다”는 취지의 문구가 만안의총관리소, 궁능유적본부,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등 최소 15개의 채용공고에 등장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아예 “육아휴직자 조기복귀 시 계약해지”를 공고에 명시했다.
연차나 주휴수당 지급을 피하기 위한 ‘초단시간 쪼개기’ 계약 정황도 있었다. 올해 초 국립무형유산원은 전시관 기간제 직원을 채용하면서 근무시간을 토·일요일 하루 7시간(주 14시간)으로 한정했다. 이 전시관은 개관시간이 정확히 7시간으로, 개관 전 준비나 종료 후 관리업무 등을 고려하면 8시간 정도의 노동이 필요하며, 이 전시관의 다른 공무직 주말 출근자들은 하루 8시간을 일한다. 그러나 전시관은 ‘쪼개기 계약’으로 주 15시간 이상 노동자부터 적용되는 연차·주휴수당·퇴직금 등 의무를 피해갔다.
류 의원은 “인사관리규정과 채용공고문 주요 내용 중 위헌이거나 위법 또는 부당한 내용은 노동자 권리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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