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더라도 '핵 버튼' 손 안 대게..'푸틴의 탈출구' 고민하는 미국

김재중 기자 2022. 10. 1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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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체면 살리며 전쟁 종료
침략 정당성 주는 딜레마로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내에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술핵을 쓸 가능성과 관련해 지구 종말에 벌어질 최후의 전쟁으로 성경이 묘사한 ‘아마겟돈’을 언급해 논란이 됐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징후는 없다며 해프닝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 발언의 배경에는 어떻게 하면 궁지에 몰린 푸틴 대통령이 핵 버튼에 손을 대지 않도록 하면서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에 대한 미국의 고민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미국과 서방이 직면한 고민을 직설적으로 보여줬다. 그는 “우리는 푸틴의 출구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 “그가 어디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어디에서 체면과 러시아 내 상당한 권력을 모두 잃지 않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대목을 두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한때 푸틴의 승리를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그의 패배를 두고 걱정한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패배를 안기면서도 그가 궁지에 몰려 핵무기 사용 유혹을 느끼지 않도록 탈출구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의 푸틴을 위한 출구 찾기는 1962년 세계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쿠바 미사일 사태 교훈에서 비롯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서기장은 막후 비밀협상을 통해 쿠바에 설치한 미사일 철거에 합의함으로써 핵전쟁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쟁이 당장 끝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푸틴 대통령이 이달 초 우크라이나에서 새롭게 점령한 4개 주에 대한 병합 작업을 마무리한 것은 협상의 여지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달 예비군 30만명 동원령을 발령한 푸틴 대통령은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심화될수록 서방의 대오가 흐트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서방이 무기를 충분히 지원해주면 향후 3~6개월 이내에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을 모두 되찾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참에 2014년 러시아가 병합한 크름반도까지 되찾는 게 목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 같은 강경파는 푸틴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당국자들은 푸틴 대통령을 너무 막다른 길로 몰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출구 고민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마이클 멀린 전 미국 합참의장은 9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에 대해 “그는 궁지에 몰린 동물이다.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 국무부 차관과 나토 사무차장을 지낸 로즈 고테뮐러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서방은 파국을 막기 위해 외교를 통한 정치적 해법을 타진할 때라고 밝혔다.

문제는 푸틴 대통령을 위한 탈출구 찾기가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를 대상으로 타협점을 찾기 위한 거래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결이냐 협상이냐를 놓고 서방이 분열되는 것은 푸틴 대통령이 핵위협을 통해 노리는 바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지만 러시아를 자극하지도 않는다’는 노선은 현실주의 외교 이론에 기반한다. 놈 촘스키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가 “핵전쟁을 피하려면 푸틴에게 출구를 주는 추악한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는 자칫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위기의 책임이 서방에 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러시아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김재중 기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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