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기적처럼 10년 생존한 부산 독립영화관

조윤화 기자 2022. 10. 1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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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10월 부산은 문화의 향기가 가득합니다. 내노라하는 영화배우·제작자들이 총출동하는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열리기 때문! 올해 BIFF에선 71개국 354편이 상영됩니다. 관객과 ‘마주 앉아’ 소통하는 프로그램도 풍성합니다. 동네마다 스크린을 설치해 영화를 상영하는 ‘커뮤니티 비프’는 5년째 이어지는 BIFF의 자랑인데요. 커뮤니티 비프의 태동이 10년 전 부산 중구 중앙동의 10평 남짓한 독립극장에서 이미 시작됐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관객 문화운동의 출발지 ‘모퉁이극장’이 부산 중구에 자리하던 시절. 40계단 인근 건물 4층에 위치해있어 극장으로 가는 계단 벽면을 각종 포스터로 꾸며놓았다.


씨네필 사이에서 모퉁이극장은 유명합니다. 대기업 자본을 등에 업은 멀티플렉스 극장이 관객을 흡수하는 상황 속에서도 모퉁이극장은 10년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모퉁이극장의 김현수 대표에게 영화는 ‘호기심의 샘’입니다. “어릴 적부터 문학·음악도 탐구했습니다. 특히 영화는 파면 팔수록 선명해지기보다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이 들었어요.”

김 대표는 한때 단편영화를 찍기도 했습니다. 얼마 못 가 “탁월한 감독이 될 자질은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해요. “직장 생활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어요. 결론은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퉁이극장의 김현수 대표


김 대표는 관객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관객이 숫자로 취급받아선 안된다’는 김 대표의 문제의식과도 연관돼 있었는데요. “부산에는 영화 마니아들이 많은데도 누군가 그들에게 ‘여러분의 활동 자체가 훌륭한 문화’라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관객이 스스로 영화를 기획하고 평론도 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모퉁이극장을 열었습니다.”

2017년 관객 문화교실에 참여한 관객 문화활동가들의 단체 사진. 모퉁이극장 제공


1년여 준비를 거쳐 2012년 중앙동의 4층짜리 상가 꼭대기 층에 모퉁이극장이 문을 엽니다. 이름은 김 대표가 주도했던 무성영화 세미나 ‘모퉁이극장’을 그대로 차용했어요. 다양한 ‘관객 문화운동’ 프로그램도 진행했는데요. 10주간의 교육 프로그램인 ‘관객문화교실’부터 ▷영화를 함께 보고 관람평을 나누는 ‘관객영화제’ ▷누구나 어우러져 영화를 관람하는 ‘40계단 시민극장’이 대표적입니다.

김 대표와 인터뷰하며 들었던 의문 하나! “지속가능하려면 수익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였습니다. 모퉁이극장이 10년을 버틸 수 있을 거라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전혀”라고 했어요. “인건비나 운영비를 우려하는 시선은 늘 있었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수익’을 우선순위에 둔 적은 없습니다. 늘 ‘하고 싶은 일을 한다’가 목표였거든요. 돌이켜보면 그랬기 때문에 10년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모퉁이극장 운영 초기 3년간은 수익이 없다시피 했다고. 당시 김 대표는 간이침대를 가져다 놓고 극장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해요. 그의 곁에는 영화평론가를 꿈꾸며 돕는 동료가 있었는데요. “이 친구도 영화 마니아를 위한 사랑방 같은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해서 거의 무보수로 힘든 시기를 버텨줬죠. 언젠가 이 친구가 ‘제가 아프면 병원비는 주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모퉁이극장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은 “30년 넘게 배우들 사진을 오려서 차곡차곡 모아오고 있었다. 내가 해온 일에 ‘관객문화활동’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곳이 모퉁이극장”이라며 기뻐했다고.

신문 형태로 발간된 ‘원도심 사람들’ 프로젝트.


오프라인 커뮤니티로서 입지를 구축해가던 모퉁이극장은 코로나19가 불어닥치면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거리두기 탓에 아예 모일 수가 없었거든요. 김 대표는 당시를 “문화적 우울증이 걸린 시기였다”고 회고합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김 대표는 ‘원도심사람들’이라는 새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중구 주민 30명에게 코로나19로 생긴 변화에 대해 묻고, 이웃주민들을 향한 응원 메시지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달될지는 알려주지 않고 익명의 이웃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게 하는 것이죠. 누군가는 직접 만든 컵을 내놓았어요. 낙지전골집 사장님은 낙지 밀키트를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마지막으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목록을 손글씨로 적어달라 요청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과 결과물들은 신문 형태로 발행됐습니다.

BNK부산은행 아트시네마 모퉁이극장.


2020년 모퉁이극장은 새 둥지를 찾습니다. BNK부산은행과 BIFF는 부산은행 1호점인 신창동 지점에 BNK아트시네마를 조성했는데요. 이곳 3층에 있는 72석짜리 상영관 운영을 모퉁이극장이 맡게 된 겁니다. “중구·BIFF와는 이전부터 협업을 해오고 있었어요. 특히 BIFF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커뮤니티 비프’ 시작단계부터 기획을 함께 했죠. BNK아트시네마를 활성화시켜달라는 제의를 받게 됐고, 1여 년간의 준비를 거쳐 새롭게 출발하게 됐습니다.”

중앙동 시절과 비교하면 정식 상영관도 갖추게 됐고, 널찍한 활동 공간도 확보하게 됐는데요. 다만 ‘프로그램 기획’에서 ‘극장 운영’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한 탓에 ‘모퉁이극장’ 다운 활동을 아직까진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BNK아트시네마를 운영하면서도 모퉁이극장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극장 운영 시스템에 적응이 되고 나면 하나씩 도모해 나갈 수 있을 거라 봐요. 아직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의 10%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부산 북구 화명동에 위치한 독립극장 ‘무사이’에서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아이들.


모퉁이극장의 지난 10년 활동은 유의미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부산 북구 화명동에 자리 잡은 독립극장 ‘무사이’는 ‘관객 프로그래머’를 통해 관객이 제안한 영화를 상영하고 있습니다. 무사이는 포털사이트에 ‘부산 독립극장’을 검색하면 모퉁이극장과 함께 뜨는 곳이기도 해요. 박 대표와 무사이 최용석 대표는 서로의 극장을 오가며 종종 소통한다고.

독립극장이 너무 적은 것 같다는 라노의 질문에 김 대표는 “관객이 독립영화에 자주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있다면 독립극장도 확산할 것이다. 독립영화를 키우는 예산 만큼 영화에 대한 관객의 이해도를 키우는 프로젝트에도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무사이 최 대표는 공공도서관처럼 ‘공공극장’이 생겨났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또 부산시가 기획한 프로그램에 예산을 지원하기보다 이미 민간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지속될 수 있도록 돕는 편이 낫다고 제안했습니다.

‘무사이’에서 제공하는 영화티켓. 관객이 직접 꾸며 ‘나만의 티켓’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OTT 등장으로 언제든 수백 가지의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도래했습니다. 그래도 영화는 대형 스크린으로 봐야 제 맛! 조금 색다른 분위기에서 온전히 영화를 즐기고 싶다면 독립극장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독립극장이 많지 않아 조금 먼 거리를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대신 독립극장 영화 티켓값은 멀티플렉스의 절반 수준이라는 사실! 영화의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부산의 독립극장 저변이 넓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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