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세계' 근본적인 변화 맞춰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 확장해야

한겨레 2022. 10. 1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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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릴레이 기고 2
김형수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이 지난 6일 국회 인근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해 단결투쟁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왜냐면] 권오성 | 성신여대 법대 교수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업종을 가리지 않고 전 산업에서 광범위한 외주화가 진행되었다. 물론, 최근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조선업이나 건설업의 경우에는 산업화 초기부터 외주화가 진행되어 다른 산업 부문에 비해 그 뿌리가 깊다. 흔히 ‘하청노동자’라고 불리는 외주업체에 소속된 근로자들은 사실상 원청기업을 위하여 노동을 제공하지만, 원청과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기 때문에 원청을 사용자로 보아 노동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이러한 하청노동의 확산은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악영향을 미침은 물론, 노동 3권 침해도 심각한 문제이다. 하청노동자의 노동 3권 행사와 관련하여 정부와 법원은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 등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고는 하청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상대방만을 사용자로 인정해왔고, 이에 근거하여 하청노조와 관계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긍정하는 데 인색하였다. 이에 더하여 2010년 노동조합법 개정으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도입된 이후, 교섭창구 단일화는 사실상 ‘1사 1교섭 원칙’으로 변용되었고 그 결과 하청노동자의 노동 3권은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법원에서 원청의 하청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를 긍정한 사례도 있었으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시행 이후에는 원청기업의 단체교섭 의무를 부분적으로라도 긍정하던 이러한 경향이 약해졌고, 대신 원청기업의 단체교섭 의무를 부정하는 입장이 강해졌다. 다만, 아직까지 대법원에서 이러한 쟁점을 정면으로 판단한 판결은 없으며, 오히려 중앙노동위원회는 최근 씨제이(CJ)대한통운 사건에서 하청노조에 대한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긍정하기도 하였다.

단체교섭에서 상대방으로서 사용자는 근로조건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 자여야 하므로 원청기업을 사용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광범위한 아웃소싱과 자회사 설립 등을 통한 사업 방식의 변화와 개인 하청, 프리랜서의 확대 등이 결합한 ‘일의 세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고려할 때,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여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원청기업도 하청노조에 대하여 단체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로 긍정하는 해석과 입법이 긴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9년 “노동조합법 사용자 규정을 개정하여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노동조건 및 노동조합 활동에 대하여 실질적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까지 포함하도록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였고, 나아가 “해당 노동관계에 대해 실질적 영향력 내지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가 단체교섭 상대에서 제외된다면, 단체교섭의 원래 목적인 노동조건 개선 및 노동자 이익 보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부여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였다.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여, 간접고용관계의 경우 근로자의 근로조건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용기업을 사용자로 취급하는 입법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 하청노동자와의 관계에서 원청을 단체교섭의 상대방으로 인정할 경우, 단순하게 사용자 개념이 넓어지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와의 관계에서 교섭단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하청노조와 원청기업 및 하청기업 사이의 다면적인 교섭 구조를 어떻게 규율할 것인지 등에 관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

나아가 하청노동자들이 원청기업과 별도의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한 경우, 원청기업과 그 직영근로자들 간에 체결된 단체협약을 하청노동자들에게도 확장 적용하는 방식의 입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식이 다소 과격해 보이겠지만, ‘일터의 균열화’가 가져온 일의 세계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 상상력이 절실하다. 평범하지 않은 문제를 평범하게 풀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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