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조약, 그게 아니다

한겨레 2022. 10. 1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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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강화 진무영 열무당.

[왜냐면] 이경수 | 강화도 주민

지난밤, 인터넷을 검색하다 강화도조약과 관련한 사진 ①을 보았다. ‘수호 조약 체결을 강요하는 일본군[강화부 연무당]. 1876년 촬영.(ⓒ국립중앙박물관)’이란 설명이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대백과사전)에 실린 사진과 글이다. 하지만 사진 속 배경은 연무당이 아니라 열무당이다. 대백과사전에서 밝힌 출처를 따라 국립중앙박물관 사이트로 들어가 봤다. 역시나 같은 사진에 같은 설명이 있었다. 열무당을 연무당으로 표기한 것은 단순 실수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소해 보이는 오류의 부정적인 영향력이 너무 크다.

연무당(鍊武堂)과 열무당(閱武堂)은 강화를 지키던 군영인 진무영의 부속건물이다. 연무당은 군인들이 훈련(訓鍊)하는 공간이고, 열무당은 지휘관이 사열(査閱)하고 지휘하는 공간이다. 일종의 고급 사열대인 열무당은 현재 강화읍사무소 옆에 있었다. 여기에 일본인들이 포를 배치하고 무장한 군인들을 세워 위협적인 분위기를 만든 것이 사진 ①이다.

② 강화 연무당 옛터.

연무당은 열무당에서 600m가량 떨어진 강화산성 서문 안에 있었다.(사진②) 바로 이 연무당이 강화도조약을 맺은 장소이다. 그런데 열무당을 조약 체결 장소인 연무당으로 설명하는 바람에 보는 이들이 엉뚱한 연상을 하게 만들었다.

‘저 안(사진 ①)에서 지금 조약을 맺고 있구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중무장한 일본군의 무력과 위협에 벌벌 떨면서, 그들 요구에 순종하여 조약을 체결하는 조선 교섭단! 딱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난다. 이렇게 맺은 조약이니 조선에 불리한 불평등조약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지.

열무당을 연무당으로 잘못 소개한 후유증이 이러하다. 강화도조약이 불평등조약인 것은 맞는다. 하지만 신헌을 대표로 한 조선 교섭단은 일본군의 위협에 ‘쫄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했다. 비굴하지 않았고 당당했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지킬 것은 지키면서 일본 교섭단과 맞섰다. 이렇게 밀고 당기기 약 스무날 만에야 조약 체결에 이르렀다. 국제 정세와 근대 외교에 어두운 조선은 주로 명분과 체면을, 일본은 실리를 챙겼다. 당시로서 강화도조약은 굴욕이 아니라 냉엄한 현실이었다.

③ 강화도조약 체결 장면으로 알려진 정체불명 사진.

강화도조약 체결 장면으로 알려진 사진 ③을 보면 우울해진다. 일본 대표 구로다 기요타카로 보이는 이가 주인인 양 중앙 상석에 앉았고 조선 대표 신헌으로 보이는 노인이 오른쪽에 앉았다.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까지 숙였다. 조선 땅 강화도에서 열린 회담인데 참석자는 일본인이 훨씬 많다. 빌빌대는 조선, 뭣도 모르면서 일본이 시키는 대로, 예예, 숙이며 조약 맺는 조선의 이미지가 다시 떠오른다.

그런데 이 사진은 출처가 불분명하다. 아무리 뜯어봐도 진짜 사진이 아니다. 뭔가 위조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당시 신헌은 67살, 구로다는 37살이었다. 그렇게도 명분과 격식을 중시하는 조선의 신헌이, 당당하게 회담을 이끌었던 신헌이, 저 자리에 저렇게 쭈그리고 앉아 조약을 맺었을 리 없을 것 같다.

일본 교섭단은 강화도에 머무는 동안 구석구석 돌며 많은 사진을 찍어 남겼다. 사진 ①도 그들이 촬영한 것이다. 꼭 찍어야 할 결정적 장면은 조약 체결 현장의 모습이다. 당연히 촬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진은 전해지지 않고, 정체불명의 사진 ③만 나돈다. 상당히 께름하다. 뭔가 의도가 숨어 있을 것 같다. 혹시 그들이 감출 수밖에 없는 장면이 찍힌 것은 아닐까?

아무튼, 이 사진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래전부터 교과서에 실렸다. 지금도 교육부 발행 초등학교 5학년 사회 교과서(사진 ④)에 문제의 열무당 사진과 함께 실렸다. 초등학교뿐이 아니다.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에도 여전히 등장한다. 분명히 개선해야 할 일이다.

왜 학생들에게 조선을 한심한 나라로 여기게 하는가.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는 사건임에도 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가. 자조적 역사관은 국수적 역사관보다 더 나쁘다.

④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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