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한겨레 2022. 10. 10. 18: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숨&결][이란 ‘히잡 시위’]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이란인들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이슬람공화국 대사관 인근에서 이란 당국의 히잡 반대 시위 강경 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던 중 한 참가자가 숨진 마흐사 아미니(본명 지나 아미니)를 추모하고 이란 내 히잡 반대 시위에 연대하는 뜻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김정효 기자

[숨&결]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지난 9월13일 오빠를 만나러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방문한 22살 쿠르드 여성 지나 아미니가 ‘도덕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히잡을 느슨하게 둘러 머리카락이 보였다는 이유였다. 우리가 속칭 ‘닭장차’라고 부르는 호송차 안으로 끌려간 그는 두 시간 뒤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이틀 뒤 사망했다. 눈 밑과 머리, 다리 곳곳에 멍이 들어 있었으며, 귀에서는 피가 흘렀다. 호송차에서 구타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사람도 나왔다. 정부는 아미니가 어렸을 때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았으며, 그 때문에 심리적인 충격에 빠져 심장마비를 일으켰다고 발표했지만, 가족은 뇌종양을 앓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

젊은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맞아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입원했던 병원과 그의 고향을 시작으로 시위가 일어나 이란 전체에 들불처럼 번졌다. 이란의 민중은 1979년 이른바 ‘이슬람 혁명’ 이후 권위적인 신권정치 아래서 억압받아왔다. 압제 아래서 흔히 그렇듯 특히 여성들이 겪은 불평등, 차별, 억압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여성은 남성의 종속물로 취급되었고, 공공장소에서 노래와 춤, 심지어 머리를 바람에 날리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거리 곳곳에서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이는 도덕경찰은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보인다거나, 몸에 붙는 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체포해 ‘재교육’을 시켰다. 그 과정에서 무자비한 구타와 인권 유린이 벌어졌다.

이란 정부는 대규모 시위 사태를 핵 협상 결렬 뒤 미국이 주도한 경제제재와 이에 따른 경제난 탓으로 돌리면서 비난의 화살을 외부로 돌리려고 했다. 대중은 권위주의 정권의 프레임에 말리지 않았다. 10대 소녀들이 주도해 시작된 시위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국가 전체로 번지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쿠르드족이라는 소수 집단에 대한 탄압, 여성에 대한 억압, 나아가 인권과 자유라는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부정이 구조화되었기 때문임을 꿰뚫어 본 것이다.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싸운 쿠르드족 여성 전사들의 슬로건인 ‘여성, 삶, 자유’(Jin, Jiyan, Azadi)를 그대로 빌려다 시위 구호로 삼은 것은 상징적이다.

중동이란 먼 곳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과 인간의 기본권 투쟁을 지켜보며 1980년 5월의 광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파렴치한 정부는 언론 통제는 물론, 인터넷마저 차단해 실상이 알려지는 것을 막으면서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에 나서 이미 150명 이상이 죽었다 한다. 다치고 상한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느닷없이 실종된 사람이 속출해 전체적인 피해를 가늠하기 어렵다. 와중에도 어떻게든 진실을 외부에 알리려는 시민과 언론인들의 투쟁이 눈물겹고 안타깝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후원금조차 보내도 전달이 어렵다고 하니 애가 탈 뿐이다. 우리는 어떻게 돕고 연대할 수 있을까?

인간을 규정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인간은 기억이자 이야기다. 광주를 기억하고 이야기로 전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해 5월 고립된 채 분노와 공포를 견뎌야 했던 사람들, 그 뒤로 한없이 이어진 기만의 세월 동안 진실의 무게를 져야 했던 사람들에게 어디선가 새까맣게 먹칠이 된 기사로, 유인물과 대자보로, 책과 노래로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는 징후보다 더 큰 힘이 된 것이 있었을까? 그러니 에스엔에스와 용기 있는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 이야기를 실어 나르자. 그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하자. 지금은 모든 사람이 뉴스가 되는 시대가 아니던가. 그러니 보고 들으라. 그리고 밖으로 나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라.

※보도된 마흐사 아미니는 이란에서 공식 문서에 페르시아 이름만 허용하기 때문에 여권 발급을 위해 지은 것으로, 본명은 지나 아미니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