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것이 한국 정신인가
[세상읽기]
[세상읽기] 한승훈 | 종교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
현재 <한겨레>에는 ‘이것이 K-정신이다’라는 제목의 인터뷰가 연재되고 있다. 세계인이 한류에 열광하고 있는 지금, 그 문화예술의 뿌리가 되는 한국의 정신사상이 무엇인지를 추적해보자는 의도라 한다. 주된 대상자는 “종교·인문학 고수들”이라 표현된 원로 학자들이다. 그리고 전체 구성의 절반 이상이 진행된 현시점에서 나는 외부 필진으로서, 그리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연재물에 대한 비평을 수행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 기획 전체가 전제하고 있는 문화에 대한 가정에 동의할 수 없어서이다.
먼저 김성철 교수는 화엄사상에서 비롯한 회통(會通)과 화쟁(和諍)정신이 한국 불교, 나아가 한국 문화 일반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한국 불교가 이질적인 교의적 요소들의 조화와 융합을 중시하는 통불교(通佛敎)라는 것은 이 분야 연구의 고전적인 논제 가운데 하나다.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많지만, 일정한 설득력을 가지는 주장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을 현대 대중문화 영역에까지 확장해 영화, 드라마, 케이팝과 같은 종합예술도 “우리의 회통하고 종합하는 능력”에서 나온 것이라는 견해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더구나 “서구 예술문화가 퇴폐적인 게 많았지만, 한류는 권선징악적이어서 굉장히 보수적인 이슬람권에서조차 거부감이 없다”라는 대목에 이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권선징악 서사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전통적인 문법이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의 메시지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구도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강렬했던 것이 아닌가.
한편 최준식 교수는 무기(巫氣)와 신기(神氣)에서 우러나오는 흥이야말로 한국인의 근본적인 기질이라고 본다. 그리고 흔히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가 한류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도 독특한 관점이다. 가족 중심의 집단주의에 친숙하기에 한국의 아이돌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집단의 규율에 잘 따르게 되고, 혹독한 훈련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한국인의 기질이 중국, 일본 등 주변 문화와 구분되며, 차이의 원인은 종교문화에 있다고 지적한다. 동북아 3국은 유교와 불교를 공유하지만 중국은 도교(道敎), 일본은 신도(神道), 한국은 무교(巫敎)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열광적으로 노래하고, 춤추고, 거리응원을 하는 “집단적인 망아경”은 한국인의 “신기”에서 나오는 에너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에는 민족 간 차이만이 아니라 지역적, 계층적 차이도 있다. 그가 묘사하는 무교는 서울 및 서해안 지역의 강신무를 모델로 하고 있다. 무속인 가운데에는 맹인 판수나 독경을 하는 법사 등 앉은 채로 정적인 의례를 이어나가는 이들도 있다. 한편 중국과 일본의 민속종교에도 광란의 축제는 있다. 그의 비교는 문화의 내적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피상적인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이기동 교수에 의하면 한국 문화는 한풀이 문화이며, 한은 “우리가 하나라는 본질인 한마음을 회복해야 풀린다”. 그는 그런 통찰을 “한민족의 고대 역사와 철학을 담은” <환단고기>에서 얻었다고 말한다. 학계에서는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하여 고대사 사료로 인정하지 않지만, 철학자의 시각으로 감정해보면 현대 지구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한국인의 위대한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철학적 접근이 문헌에 대한 역사적 비평을 건너뛰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지 않는다. 근래의 정밀한 연구들에 의하면 <환단고기>는 근대 이후 단군계열 종교들에서 활발하게 생산된 역사서 형식의 경전들을 모방하여 1960~70년대 사이에 성립된 것이 명백하다. 거기에 어떤 심오한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수천년 전 조상들이 아니라 박정희 시대 한국인들의 산물이다.
이 모든 논의에는 한국인의 핏속에 무언가 변하지 않는 본질적 기질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대중문화 분야에서 드러나는 창의성은 그런 고정된 민족정신 개념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력에서 분출하고 있다. 낭만주의 시대 지식인들이 생각한 바와 달리, 유전자는 (흔히 부계로 상상하는) 머나먼 조상의 특질을 손상 없이 실어 나르는 것이 아니다. 유전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형질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본질주의, 집단주의, 국수주의는 오늘날 퇴화하는 문화적 형질들이다. 그런 것은 한국 정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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