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훈련 명분으로 '핵 고도화'..전술핵 실전 위협 현실화한 북한

박광연 기자 2022. 10. 10. 18: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9일까지 인민군 전술핵운용부대와 장거리포병부대, 공군비행대 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최근 보름새 7차례 실시한 탄도미사일 발사가 전술핵 운용을 위한 군사훈련이었다고 10일 발표했다. 핵 선제공격 교리를 법제화한 상황에서 전술핵 실전 활용까지 시사하며 대남·대미 위협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적들과 대화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고 재차 밝히며 당분간 한반도를 둘러싼 강 대 강 대치는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전술핵 실전 운용 과시한 김정은

노동신문·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이날 “나라의 전쟁억제력과 핵반격능력을 검증판정하며 적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조선인민군 전술핵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이 9월25일부터 10월9일까지 기간에 진행되였다”며 “김정은동지께서 전술핵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을 현지에서 지도하시였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사상 처음 전투기 150여대가 동시 출격한 대규모 항공공격 종합훈련도 김 위원장 지도 아래 지난 8일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은 7차례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전술핵 운용 훈련이었다고 일일이 강조했다. “전술핵탄두 반출 및 운반, 작전시 신속하고 안전한 운용취급질서를 확정하고 전반적 운용체계의 믿음성을 검증 및 숙달”(9월25일 발사), “전술핵탄두 탑재 모의 훈련에서도 핵탄두운용과 관련한 전반체계의 안정성을 검증”(9월28일 발사)했다는 것이다.

전술핵 관련 미사일의 타격 목표가 한국군임을 분명히 밝혔다. “남조선작전지대 안의 비행장들을 무력화시킬 목적”(9월28일 발사), “적의 주요군사지휘시설타격을 모의”(10월6일 발사), “적의 주요항구타격을 모의”(10월9일 발사)했다고 북한 매체들은 설명했다. 지난달 25일 쏜 미사일은 북한 서북부 저수지 수중에서 발사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이었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9일까지 인민군 전술핵운용부대와 장거리포병부대, 공군비행대 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이번에 진행한 실전훈련들을 통해 임의의 전술핵운용부대들에도 전쟁억제와 전쟁주도권쟁취의 막중한 군사적임무를 부과할수 있다는 확신을 더욱 확고히 가지게 되였다”며 “적들에게 우리의 핵대응태세, 핵공격능력을 알리는 분명한 경고, 명백한 과시로 된다”고 자평했다.

매체들은 “7차례에 걸쳐 진행된 전술핵운용부대들의 발사훈련을 통하여 목적하는 시간에, 목적하는 장소에서, 목적하는 대상들을 목적하는만큼 타격소멸할수 있게 완전한 준비태세에 있는 우리 국가 핵전투무력의 현실성과 전투적 효과성, 실전능력이 남김없이 발휘되였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을 실시했다고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북한 전술핵이 실전 배치된 것이라며 핵 선제공격 위협이 현실화됐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핵무력 법제화를 통해 시사한 핵 선제타격 방침이 실제 훈련으로 뒷받침됐다는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핵전쟁 억제력뿐 아니라 핵전쟁 주도권을 쥐겠다는 명백한 의지와 능력을 과시했다”고 분석했다.

한·미 훈련 명분으로 핵 고도화

북한은 전술핵 운용부대의 미사일 발사훈련이 최근 진행된 미 항공모함의 한반도 전개와 한·미 해상연합훈련에 대한 맞대응 차원이라며 정당화했다. 김 위원장이 “미국과 남조선정권의 이러한 지속적이고 의도적이며 무책임한 정세격화행동은 부득불 우리의 더 큰 반응을 유발시키게 될뿐”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실시를 명분으로 핵무력 고도화 수순을 밟으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분석한다.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지난달 말 전쟁억제력의 신뢰성과 전투력을 검증·향상하고자 훈련 실시를 결정했다는 북한 매체 설명 등을 볼 때, 일련의 미사일 발사가 치밀한 계획 아래 전개됐다는 시각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모든 훈련들이 전술핵 탑재 능력과 대응 태세를 보여준다는 하나의 목표로 꿰어져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9일까지 인민군 전술핵운용부대와 장거리포병부대, 공군비행대 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한반도 주변에서 대북 확장억제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는 한·미 당국 움직임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도 읽힌다. 최근 북한은 외무성·국가항공총국·국방성 순으로 한·미 규탄 수위를 끌어올리다가 김 위원장 발언으로 정점을 찍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조선반도의 불안정한 안전환경과 간과할수 없는 적들의 군사적 움직임을 빠짐없이 예리하게 주시하며 필요한 경우 상응한 모든 군사적대응조치를 강력히 실행해나갈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당 창건 77주년인 이날 내부에 처음으로 최근 미사일 발사 소식을 대대적으로 알리며 체제 결집을 시도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간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는 관련 소식이 일절 실리지 않아왔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내부 사정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외부 긴장을 조성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의도”라며 “당 창건일을 맞아 주민들에게 다양한 미사일 발사 능력이라는 업적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화 거부’ 김정은, 핵실험으로?

김 위원장은 “적들이 군사적 위협을 가해오는 속에서도 여전히 계속 대화와 협상을 운운하고 있지만 우리는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또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며 당장 한·미와의 대화·협상에 나설 뜻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와 한·미 확장억제력 강화가 팽팽히 맞서는 긴장 국면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위원장은) 당분간 핵무력 강화와 강 대 강 맞대응에 방점을 두겠다는 것을 분명히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9일까지 인민군 전술핵운용부대와 장거리포병부대, 공군비행대 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고자 이달 16일 열릴 중국 20차 당대회가 코 앞으로 다가온 만큼 북한이 당분간 도발을 자제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다음달 8일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7차 핵실험이 진행될 수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이 전술핵 운용 능력을 보여준 데에는 사실상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담판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있다”며 “7차 핵실험으로 핵무력 고도화의 정점을 찍고 미국과 담판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전술핵 실전 활용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한·미 당국의 정교한 대북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민 실장은 “북한의 안보 위협을 줄이려면 한·미 확장억제력을 대놓고 자극적으로 강조할 필요는 없다”며 “전술핵 위협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북한이 맞대응할 근거를 주지 않을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