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벌써 혼돈에 빠진 새 정부 교육정책

2022. 10. 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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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주호 전 교과부 장관이 12년 만에 다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교과부장관 시절의 '자율'과 '책임'이 이제는 '맞춤형'과 '특성화'로 무늬만 살짝 바뀌었다. 학생의 능력이나 적성을 무시한 입시·경쟁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을 과감하게 폐기하고, 학생 각자의 행복한 성장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연한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자율·책임이 그랬듯이 맞춤형과 특성화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맞춤형과 특성화가 난마처럼 뒤엉킨 우리 교육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는 비현실적인 환상일 수밖에 없다.

교육 현장에서 이주호 지명자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1996년의 대학설립준칙주의에도 이 지명자의 체취가 남아있다. 2004년 제17대 국회를 거쳐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으로 발탁된 그는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실질적인 설계자로 활동했다. 부총리 부서였던 과학기술부를 해체하고 교육과학기술부에 통합시킨 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부터 우리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는 입학사정관 제도를 핵심으로 하는 대학입시 자율화 방안에 이르는 교육 정책이 모두 그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대학설립준칙주의 덕분에 문을 열었던 대학들 중 상당수가 개교 50주년도 못 넘기고 폐교되거나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전락해버렸다. 고등학교 다양화와 학업성취도 평가는 고등학교의 서열화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애써 만들어놓았던 자사고는 극심한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스스로 자사고의 지위를 포기하는 학교도 속출했다. 교육부가 정해 준 '자율'과 '규제 완화' 틀에 갇혀 버린 대학의 현실도 암울했다. 강압적인 등록금 인상 상한제로 재정이 파탄나버린 대학은 활기를 잃어버렸다.

이주호 장관 지명자를 기다리고 있는 교육 현안은 만만치 않다. 우선 최근에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와의 관계가 도무지 분명치 않다. 국가 백년대계인 교육을 정치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국가교육위원회법의 입법 취지는 이미 상당 부분 퇴색된 상황이다. 과연 배경·입장·이념이 서로 다른 21명의 위원들이 안정적이고 일관된 교육비전·학제·교원정책 등이 담긴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고, 국가교육과정을 확정·고시할 수 있을 것인지가 불확실하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후에 사회부총리를 겸직하는 교육부 장관이 할 수 있는 업무가 과연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다.

당장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고시하는 일이 진행 중이다. 교육부가 개최한 공청회는 벌써부터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난장판이 돼버렸다. '생태 전환 교육'과 '일과 노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입장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사회·도덕·보건·역사 과목의 주요 내용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진보 정권이 마련해놓은 초안과 보수 정권이 내놓은 수정안이 격하게 충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등학교 과학 선택과목의 구분에 대한 논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심화과목'을 '진로선택'으로 바꾸면서 교육 내용이 크게 줄어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역학과 에너지'와 '물질과 에너지'의 내용이 어떻게 구분되는지가 도무지 석연치 않다. 현대 생물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생물의 진화'도 찾아볼 수 없다. 2012년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삭제하겠다고 밝혔다가 전 세계 과학계의 비웃음을 샀던 기억이 새롭다.

재정난 극복을 위한 대안과 함께 진정한 자율과 책임을 기대하고 있던 대학의 입장도 난처하다. 대학의 자율적인 혁신과 유연한 제도를 지원해주겠다는 110대 국정 과제는 이미 힘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대학은 반도체와 같은 국가전략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추상같은 특명 때문이다.

이념적 투쟁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교육의 정상화가 절실하다. 어설프고 옹졸한 혁명·혁신의 구호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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