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고대하던 '피봇'은 오지 않았다

2022. 10. 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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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증권팀장

"주식 시장은 (재료를) 언제나 너무 일찍 반영했으면 했지, 나중에 반영하는 법은 없습니다." 얼마 전 운용업계 사람에게 회자되던 물가연동채권이나 달러 연계 상품에 대해 물었더니 나온 대답이다.

맞는 말이었다. 시장은 '김칫국'을 마시지 '숭늉'을 들이키지는 않는다. 미국 증시와 우리 증시 따로 나눌 것 없이, 올 여름을 지나오며 시장 참여자들이 마셔댄 건 '김칫국'이었다. 다같이 목을 빼고 쳐다봐야 했던 '떡 줄 사람'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었다.

짧았던 '써머 랠리'의 재료도 연준의 '피봇' 기대였다. 회전이란 의미의 '피봇(Pivot)'은 연준의 전면적 정책 전환을 일컫는 월가의 유행어다. 물가 억제를 위해 현재 강력한 통화긴축정책을 시행 중인 연준에 있어 피봇이란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거나 중단하고, 급기야는 다시 금리 인하 정책으로 돌아갈 것이란 뜻이 된다.

오랜 저금리 상황에 길이 든 시장은 연준이 경기 경착륙과 리세션(경기 침체)을 그냥 두고 볼 리 없다며 여름이 다 가도록 '희망 회로'를 돌렸다. 연준 주요 인사들의 잇따른 발언과 부정적인 경제 지표들에서도 실낱 같은 피봇의 단서를 찾아냈다.

피봇의 기미가 보이면 채권과 주식시장이 마치 양적완화 시기처럼 움직였다. 증시는 강세를 이어갔고, 채권 금리는 꾸준히 하락했다. 파월을 비롯한 연준 위원들이 인플레이션 상황이 얼마나 위협적인지에 대해 쉬지 않고 말해도 김칫국 마시기가 멈춰지지 않았다.

연준은 더 이상 말로 설득하지 않았다.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또 한번 75bp(0.75%포인트) 인상한 것이다. 세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은 셈이다. 미 기준금리는 연 2.25~2.50%이던 것이 연 3.00~3.25%가 됐다. 이는 2008년 1월 이후 14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파월 의장은 시장의 피봇 기대에 대한 싹이라도 자르려는 듯 강한 매파 발언을 쏟아냈다. 기자회견에서 긴축 기조가 경제 성장과 고용 증가를 저해해 국민들이 고통을 겪을 수 있다면서도 인플레이션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기침체를 피할 수 있지만 경기 연착륙 가능성은 감소하고 있다며 통화긴축 기조를 재확인시켰다.

피봇은커녕 오는 11월에도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은행도 이번 주 있을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젠 시장에서 '내년 첫 FOMC'를 먼저 언급하기 시작한다. 올해 안에는 피봇이 없을 가능성이 높고, 내년까지 금리 인상이 이어질지 모른다는 전망이 돌고 있다.

최근 나온 미 고용지표도 이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경기침체 우려에도 노동시장은 여전히 호조이고, 실업률은 낮은 수준이다.

낮은 실업률은 임금 상승 압력으로 이어져 인플레이션 진정 가능성은 낮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9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은 26만3000명으로 전월 증가 폭(31만5000명)보다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노동시장은 활기차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9월 미국 CPI(소비자물가지수)로 이동했는데, 이조차 시장이 원하는 수준은 아닐 전망이다. 씨티은행은 미국 근원물가가 전월 대비 소폭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를 포함한 산유국 협의체인 OPEC+도 코로나 대유행 이후 최대 폭의 감산을 결정하면서 국제유가가 오름세로 돌아섰다. 물가 정점은 사실상 더 멀어졌다. 여기에 국제통화기금(IMF)까지 "임금과 물가가 악순환을 일으킬 위험은 제한적이지만, 오일쇼크 때처럼 예외적인 사례도 있다"며 "정책 당국자들은 안이하게 대처하지 말고 기대 인플레이션의 고삐가 풀어지는 위험을 낮추기 위한 강한 통화긴축을 계속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연준이 피봇을 할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연준과 싸우지 마라(Don't fight the Fed)"는 시장의 오래된 격언은 이제 "연준보다 너무 앞서 가지 마라(Don't get ahead of Fed)"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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