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힘들어요 꼭 하겠다면 세상에 유의미한 기업"

정혁훈 2022. 10. 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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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포니정 영리더상 수상한
수직농법 개척 김혜연 엔씽 대표
컨테이너 농장서 연중 농사
UAE 수출, CES 혁신상 두번
대학졸업 포기하고 창업 몰두
"내가 하고 싶은 일 찾기보다
시장이 원하는것에 집중하길"
김혜연 엔씽 대표(37)는 농업계에서 이미 스타 최고경영자(CEO)로 통한다. 컨테이너형 버티컬 팜(수직농장)을 자체 개발해 경기도 이천과 용인에서 1년 내내 작물을 재배하고 있고, 이 농장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도 수출했다. 농업 스타트업으로는 드물게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쇼 'CES'에서 2020년과 2022년 혁신상을 받았다.

포니정재단(이사장 정몽규)이 젊은 혁신가에게 수여하는 제3회 '포니정 영리더상' 수상자로 김 대표를 선정했다는 소식에 전혀 놀라지 않은 이유다. 오는 13일 영리더상 시상식을 앞두고 만난 김 대표에게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는 역시 창업을 꿈꾸는 다른 젊은이들에 대한 조언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솔직히 저는 다른 청년들에게 창업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재밌긴 하지만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후배가 창업한다고 하면 사서 고생하지 말고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할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스타트업 창업가의 고충이 느껴졌다.

이어 김 대표는 "그럼에도 창업을 하고 싶다면 세상에 의미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그러자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보다 세상과 시장,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창업에는 정답이 없다"며 "평소 시장과 사람을 잘 관찰하는 것이 창업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엔씽은 통상적인 스타트업에 비해 사업 일관성이 높다. 성공한 스타트업 대부분은 이른바 피버팅(pivoting·방향 전환)을 잘한 경우가 많다. 처음 시작했던 사업을 고집하기보다 시장 수요와 트렌드 변화에 맞게 사업 모델을 빠르게 전환한 것이 주효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엔씽은 큰 목표를 정해놓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 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김 대표는 "우리의 목표는 처음부터 극심한 기후변화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농장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며 "2014년 1월 엔씽을 설립할 때 첫 사업으로 스마트 화분을 시작한 것은 그런 농장으로 가기 위한 발판과도 같다"고 말했다. 그가 어쩌다 강연을 할 때 "화성에서도 작물 재배가 가능한 농장을 만들고 싶다"고 하는 건 허황된 게 아니라 고도의 전략가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서 전자통신공학부를 다니면서 창업을 꿈꾸던 그가 농업 분야 스타트업을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사실은 시장과 사람에 대한 관찰에서 나왔다. 대학 입학 후 일찌감치 군에 다녀온 김 대표는 기획사에서 연예인 매니저 아르바이트도 하고 대기업에서 트렌드 분석 단기 업무를 맡기도 했다. 그가 영국으로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온 것도 대기업 아르바이트 시절 영어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와 창업 의사를 밝히자 어머니가 사회 경험이나 하라며 보낸 곳이 외삼촌이 운영하던 비닐하우스 제작사였다.

이때 우즈베키스탄 현지 토마토 농장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는데, 전문재배사가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농사를 망치는 걸 지켜봤다. 김 대표는 "종자부터 시설까지 모든 게 같은 조건임에도 전문재배사가 없다는 이유로 농사가 잘 안 되는 걸 보고 '센서와 인터넷을 활용하면 원격으로도 농장을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처음 갖게 됐다"고 말했다. 농장의 규격화와 자동화를 통해 얼마든지 확장 가능한 버티컬 팜 시스템 구축이 엔씽의 목표가 된 건 사실상 이때 결정된 것이었다.

김 대표는 "사실 창업하느라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는데, 이런 큰 상을 받게 되니 마치 장학생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뭐가 더 있을지 고민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 사진 = 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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