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탈석탄' 'ESG투자' 이행 할 수 있을까..지난해 5월 '선언'하고도 지지부진
국민연금공단이 ‘탈석탄’ 투자를 본격 선언한지 1년 반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올해 4월 마련된 용역보고서에 담긴 석탄 투자 배제 기준은 ‘글로벌 표준’보다 느슨하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를 기금 자산의 50%까지 확대한다는 ‘ESG 통합전략’도 2년째 지연되고 있다.
연구용역 나온지 6개월···여전히 “단계적 시행방안 수립 추진 중”
연금공단은 지난해 5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배출 감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석탄채굴·발전산업에 대한 투자 제한 전략을 도입할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에 맞춰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진행한 연구 용역보고서에는 기업 전체 매출에서 석탄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또는 50% 이상일 때 투자를 배제해야 한다는 기준까지 담겼다. 연금공단은 이같은 용역 결과를 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했으나 아직 기금위는 구체적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일 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연금공단은 탈석탄 선언 이후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묻는 김 의원의 질의에 “기금위는 국내·외 석탄발전소 신규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 투자를 금지했다”며 “최종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각계 각층의 의견 수렴을 거쳐 투자제한 전략의 단계적 시행방안 수립을 추진 중”이라고 답했다. 용역 결과가 나온지 6개월이 지났지만 ‘원칙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종오 한국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이날 통화에서 “국민연금은 변화한 상황에 대해 상당히 둔감하다”며 “국내외 석탄발전소 신규 건설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조항은 2018년 당시 금융기관들이 처음으로 탈석탄 선언을 할 때 최소한의 기준으로 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170여개 환경·시민단체는 지난달 23일 김태현 연금공단 이사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해외 주요 연기금은 탈석탄 이행을 넘어 화석 연료 전반에 대한 투자 배제 정책을 이행하고 있는데 국민연금은 지난해 탈석탄을 선언해놓고도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용역결과를 바탕으로 마련된 투자 배제 기준 ‘30%·50%’ 안이 “독일 환경 단체인 우르게발트가 개발한 세계 석탄 퇴출리스트의 기준인 20%와 비교해 글로벌 표준에 매우 뒤처진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도 “특히 50% 기준안은 기후변화 시장에 시그널을 줄 수 없고, 탈석탄 선언을 형해화(形骸化) 시켜버리는 ‘그린워싱’에 가깝다”고 했다. 단체들은 석탄 관련 매출 비중이 30% 이상인 기업에는 투자하지 말고, 석탄 생산·유통·소비에 이르는 가치사슬 전체를 석탄 산업으로 정의해 투자 제한 전략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연금공단은 김 의원이 공개서한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자 “국민연금은 말씀하신 서한에 대한 답변서를 준비하고 있다”며 “대내외 환경 및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빠른 시일 내에 투자제한전략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답했다.
연금공단은 아직 ‘석탄기업’과 ‘석탄산업’의 정의도 만들지 않았다. 연금공단은 ‘ESG 도입 이후 석탄 및 화석연료 발전 관련 기업에 투자한 현황 자료’를 요구하는 김 의원의 질의에 “석탄 및 화석연료 발전 관련 기업에 대한 명확한 범위 및 기준에 대해 정해진 바가 없어 투자 현황을 집계·작성해 제출하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자산 50% ESG 투자’ 약속했지만 지난해 13.7% 그쳐
2020년 김용진 당시 연금공단 이사장은 “2022년까지 기금 전체 자산의 약 50%를 ESG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이행하기 위한 ‘ESG 통합전략’은 지연됐다. 애초 연금공단은 국내채권과 해외주식·채권에 대한 ESG 통합전략을 2021년 내에 적용할 계획이었으나, 현재는 국내주식과 국내채권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다.
연금공단은 김 의원에게 “해외주식·채권 ESG 통합전략 적용의 경우, 연구용역을 토대로 국가별 제도·관행 등 해외자산 특수성을 고려한 기준 검토 및 기금운용본부 내 책임투자 전략 수립부서와 실행부서 간 협의 등 충분한 검토가 필요함에 따라 계획 대비 지연됐다”며 “해외주식·채권의 경우 ESG 통합전략 적용 방안의 연내 마련 및 2023년 적용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연금공단의 계획대로 해외주식·채권에 대한 ESG 투자가 내년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애초 계획보다 2년 늦어지는 셈이다.
국민연금의 ESG 투자 현황을 보면 김 전 이사장이 약속한 ‘자산의 50%’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지난해 국내주식과 국내채권의 ESG 투자 규모는 130조2000억원(국내주식 92조원+국내채권 38조2000억원)으로 기금 전체 자산의 13.7%에 그쳤다. 김 의원이 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이 중 국내주식의 ESG 투자 규모는 주식장 하락 등으로 인해 지난해보다 줄었다.
김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대선 후보 시절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탈석탄을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 보이지 않고 있다”며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이행, 강화되고 있는 국제환경규제에 대비해 ‘탈석탄’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 주요 국가들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밝혔다. 이어 “탈석탄 이외에도 ESG를 고려한 국민연금기금 책임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ESG 통합전략’ 가이드라인이 신속하게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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