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미 이겼다"..'북한 비핵화' 정책 실패 지적하는 미 전문가들
FT "북핵 포기 실패, 인정해야"
38노스 "비핵화 주도 창구 닫혀"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에도 조건 없는 대화를 원한다는 메시지만 계속 보내고 있다. 하지만 미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의 비핵화를 설득하려는 미국의 대북 정책은 이미 실패했다는 진단이 이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현지시간) 대북 전문가들을 인용해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려 했던 지난날의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5월 “세심하게 조율된 실용적인 접근으로 대북 외교를 모색한다”며 새로운 대북 기조를 발표했다. 전임 트럼프 정부가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기조로 강경책을 펼쳤던 것과 달리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동맹국 및 관련국과 “긴밀히 조율하고 협의하는” 외교에 방점을 두겠다는 얘기였다. 이를 위해 미국은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거듭 제의하며 외교적 해법을 촉구했지만, 북한은 이에 화답하지 않았다.
북한은 오히려 올해 들어선 탄도미사일을 23차례 발사하는 등 무력 도발 수위를 높여나갔다. 최근 15일 사이엔 미사일을 7차례나 발사해 이틀에 한 번꼴로 미사일을 쏘기도 했다. 이에 한·미·일은 북한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연합군사훈련 및 미사일 발사 등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동안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기술 수준을 높여 한반도에서의 안보 위협만 커졌다고 지적한다.
앙킷 판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 핵정책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고집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웃음거리(farce)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우리는 반응하고 그리고 나서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냐”면서 “북한은 이미 (비핵화 싸움에서) 이겼다. 쓰디쓴 현실이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걸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이 핵무기를 버리지 않을 거란 현실을 인정할 때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릴수록 북한의 무기는 더 커지고 더 정교해질 것이며, 훗날 협상에서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 우려했다.
스팀슨센터 38노스 프로그램 책임자인 제니 타운도 “비핵화 주도 프로세스의 창구가 닫혔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북한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미국과 정상 간 외교를 피하고 있다. 그는 동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이 심화하고 미·중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며 “한국을 포함한 모두가 무장하고 있을 때 북한이 비핵화를 고려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 지적했다.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간 대북제재 공조도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소집해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대응하려 했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성명 채택에 반대하면서 결론조차 내리지 못했다. 채드 오캐럴 코리아리스크그룹 대표는 “대부분의 미국 고위 관리들은 이제 비핵화가 일어나지 않을 거란 점을 개인적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말할 수도 없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사학과 교수는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정책 목표로 계속 삼는 한 북한은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핵무기에 대한 규제를 고려하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에게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지난 2017년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보다 현재 한반도의 상황이 더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마이크 멀린 미 전 합참의장은 이날 미국ABC방송 인터뷰에서 “역대 최다 수준의 미사일 발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현재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협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핵을 탑재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판다 선임연구원도 북한이 한국에 배치될 수 있는 전술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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