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원전 불안하다던 文정부 한수원.. 北공격 대비 안전평가는 거부했다

박상현 기자 2022. 10. 1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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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수력원자력이 국내 원전의 각종 제어설비를 무력화할 수 있는 북한의 EMP(전자기파) 공격에 대비해 취약점 평가를 받으라는 국정원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탈(脫)원전에 이어 전시 상황에 대비한 원전 안전대책조차 손을 놓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수원 측은 “EMP 공격을 받아도 국내 원전의 차폐(遮蔽) 효과는 충분하다”는 내용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근거로 들었으나, 보고서 자체는 “기밀”이라며 어떻게 방호 대책이 수립됐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문 정부 당시 꾸려진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일부에만 보고됐다.

전자기파 공격으로 광범위한 피해를 초래하는 EMP탄. /방사청

10일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한수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국정원과 산업부가 2019년 3월부터 시행 중인 ‘공공분야 주요 정보통신기반시설 대상 EMP 시범평가’에 참여하지 않았다. 국정원은 ‘EMP 취약점 분석·평가 기준’에 따라 공공분야 주요 정보통신기반 시설을 대상으로 한국전력, 한수원, 한국가스공사 등 11개 공기업에 EMP 대응 평가를 받으라고 요청했다.

EMP(Electromagnetic Pulse) 공격은 강력한 전자기파를 통해 전자기기를 먹통으로 만드는 전술이다. 특히 원전에 EMP 공격이 가해질 경우 제어장치가 무력화 돼 ‘노심용융(원자로 중심부인 핵연료봉이 녹아버리는 일)’ 등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북한의 EMP 공격에 대한 우려는 2014년부터 나왔다.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은 당시 미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러시아가 북한에 EMP 무기를 개발하도록 도왔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은 북한이 EMP 무기개발에 성공했다고 보고 있다. 작년 6월 미 의회 자문단체인 ‘EMP TF(태스크포스)’의 빈센트 프라이 사무총장은 ‘북한 EMP 위협 평가 보고서’에서 “북한은 이미 초강력 EMP탄 개발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EMP 공격에 대한 가장 확실한 방어수단은 차폐 기술개발 및 시공을 통한 방호(防護)다. 이에 미국은 EMP 공격에 대비해 군과 민간에서 각각 ‘신뢰성 규격’이란 기준을 마련해놓고 에너지 발전소 안전을 관리 중이다.

한수원은 국정원의 EMP 평가에 응하지 않으면서 자체 실시한 ‘가동원전 EMP 영향분석 및 대책수립’ 연구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한수원은 원자력안전위원회 의뢰로 2014년 8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21억 4000만원을 들여 ‘가동원전 EMP 영향분석 및 대책수립’ 연구과제를 수행했고, 최종보고서는 2019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측에 제출됐다. 결론은 “국내 원전은 EMP에 대한 충분한 차폐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별도 차폐 시설이 불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십년 전 건설한 국내 원전이 북한의 현대화 된 군사 공격을 100% 방어할 수 있느냐”를 두고 우려가 나왔다. IAEA(국제원자력위원회)조차 “노후 원전일수록 고압·진동·전자기파에 취약할 수 있다”면서 각국 원전에 지속적인 시설 보수를 권장하고 있는데, 한수원이 4년간의 연구 끝에 내놓은 결론이 “북한 EMP 공격에 대해 준비할 게 없다”는 식이란 것이 비상식적이란 것이다.

국정원 EMP 평가에 응한 국내 화력발전사는 모두 “EMP 대비가 미흡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국정원은 2019년 한국서부발전의 국가보안기술연구소 내 시설에 대해 “설비 이중화 및 예비기를 통한 신속복구 이외에 별도의 전자파 차폐 대책은 적용하지 않고 있어 EMP 침해에 의한 핵심시설 고장으로 주요 기능에 문제 발생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이후 서부발전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는 않았다.

중부발전은 지난해 국립전파연구원의 신보령발전본부 발전제어시스템에 대한 EMP 평가를 받았다. “EMP 방호규정 마련 및 전담인력 편성, UPI, 비상발전기 등 지원설비 대책 마련, 예비품 미확보 설비 및 핵심설비 등 예비품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차폐 시설 확충에 필요한 예상 비용은 약 40억 원으로 추산됐으나 이 역시 조치가 이뤄진 것은 없다.

미 전력연구소는 2019년 1월 보고서에서 “북한의 EMP 공격으로 전력망이 파괴되면(blackout) 1년 안에 미국인 90%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북한의 EMP 공격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원전, 화력발전소 등 국가 주요 에너지 발전소에서 북한의 EMP 공격에 오히려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산업부는 최 의원실 측에 “국정원이 수립 중인 ‘EMP 보호대책 가이드라인’이 확정되면 시설별 중요도와 추가적인 방호 필요성을 종합 검토해 에너지기반시설에 보호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북한의 EMP 공격이 당장 발생해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 /국회사진기자단

최형두 의원은 “발전소 방호는 국가안보와 국민생명이 달린 문제인데 문 정부에선 북한의 공격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던 셈”이라며 “원전과 화력발전소 등 국가기간시설을 북한의 EMP 공격으로부터 지킬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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