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20년 근속 발레리나 강미선, 2년만의 '오네긴' 무대 오른다

이지훈 기자 2022. 10. 1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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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발레단에서 발레리나 최초로 20년 근속 무용수가 된 UBC 수석무용수 강미선의 모습. 그는 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하는 전막발레 ‘오네긴’의 타티아나 역으로 무대에 선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유니버설발레단(UBC) 수석무용수 강미선(39)은 지난달 27일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발레단(국립·유니버설) 소속 발레리나 최초로 ‘20년 근속 무용수’가 됐다. 강수진, 김지영, 김주원 등 한국 발레계를 대표하는 많은 발레리나 중에서도 무용수로서 20년 간 한 발레단의 무대에 선 건 강미선이 유일하다.

선화예중고,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 워싱턴 키로프 아카데미를 거친 그가 UBC에 입단한 건 2002년. 연수단원에서 시작한 그는 코르드발레(군무), 드미 솔리스트, 솔리스트를 거쳐 2012년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올해 그는 20년차 단원, 10년차 수석무용수로 무대에 서고 있다. 6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인생의 절반을 UBC에서 보냈다”며 웃었다.

“삼십대 중반부터는 춤출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1, 2년 정도 남았다고 생각했어요. 작품 하나하나 최대한의 에너지를 쏟겠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서왔습니다.”

2017년 ‘오네긴’ 공연 당시 강미선(오른쪽)과 이현준의 모습.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그의 발레 인생은 처음부터 UBC와 함께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호두까기 인형’의 파티걸 아역으로 처음 무대에 오른 그는 중·고생 때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라 바야데르’에서 군무를 췄다. 일편단심 UBC 입단을 꿈꿨다는 그는 “어릴 때부터 봐와서 다른 발레단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미국 유학 마치고 다른 오디션은 안 보고 곧장 귀국해 입단 시험을 봤다”고 했다.

20년간 UBC에 있으면서 안 해본 역할이 없을 것 같은 그에게도 숙원은 있었다. 1994년 UBC가 초연한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오로라 역. 좀처럼 기회가 없었던 그에게 올 6월 공연에서 오로라 역에 처음 발탁됐다. 입단 20년, 수석무용수 10년차가 되어서야 UBC의 모든 작품의 주역을 거친 무용수로 발돋움했다.

“이 연차에 새로운 역할로 데뷔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다 놀라시더라고요. 오로라는 상큼하고 신선한 이미지라 보통 어려서 데뷔하는 편인데 제겐 기회가 없었어요. 인연이 없는 배역인가 보다 하고 마음을 접었어요. 근데 이번 오로라 데뷔 무대 치르고는 막 두근거리고 너무 신나서 신입단원으로 돌아간 것처럼 기쁘더라고요.”

‘오네긴’의 한 장면. 사랑을 갈망하는 순진한 시골 여인 타티아나(강미선)와 자유분방하지만 오만한 도시귀족 오네긴(이현준)의 엇갈린 사랑과 운명을 그린 전막발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공연되는 ‘오네긴’은 그에겐 남다른 작품이다. 순수한 시골여인 타티아나와 자유분방한 도시귀족 오네긴의 어긋난 사랑과 운명을 그린 알렉산드로 푸쉬킨(1799~1837)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 원작인 전막발레.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가 만든 오페라 ‘오네긴’에 영감을 받아 전설적 무용수 존 크랑코(1927~1973)가 안무한 작품이다. 196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한국에선 2009년에 UBC에서 처음 공연됐다. 한국 초연 당시 타티아나로 발탁된 강미선은 이후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무대에 서고 있다.

“초연 준비할 땐 제가 맡기엔 무겁고 성숙한 역할 같아 어렵게 느껴졌어요. 책, 영화, 오페라 등 볼 수 있는 자료는 모조리 찾아볼 정도였어요. 그만큼 힘들게 무대를 준비했던 기억이 있어 그런지 오네긴은 몇 번을 해도 부담스러웠는데 2017년부터는 조금씩 편안해지더라고요. 실수 걱정 않고 역할에 몰입할 수 있게 됐어요.”

지난해 10월 아들을 출산한 강미선은 ‘엄마 발레리나’이기도 하다. 그의 남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37)도 2004년 UBC에 입단한 러시아 출신 발레리노다. UBC에서 연을 맺은 두 사람은 2012년 나란히 수석무용수로 승급했고 2014년에 결혼하면서 사내 커플이 됐다.

“둘 다 마흔을 앞둔 지금 부부의 목표는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훗날 아이가 엄마 아빠의 무대를 기억할 수 있게요. 아이가 이제 갓 돌이 지났거든요? 그래서 아직 한참은 더 춰야 합니다.(웃음)”

29일~다음달 6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만~12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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