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우크라 전쟁 쇼크에 에너지 안보 보루로 원전 재부각

이주형 기자 2022. 10. 1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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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원전 새로운 새벽 맞이하나

수년간 탈원전에 앞장섰던 유럽 등 선진국이 다시 원전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자원의 무기화가 에너지 안보 보루로서 원전의 중요성을 부각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대란은 전력난뿐 아니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심화라는 경제 악재로도 작용하고 있다. 거기에 전 세계적으로 수립한 ‘탄소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원전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전,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 세계의 탈원전 바람을 일으킨 계기였다. 하지만 경제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차세대 원전,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이 등장하며 원전의 새 새벽이 앞당겨질지 기대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최근 글로벌 이슈로 떠오른 친원전 정책으로의 회귀 현상과 그 배경을 분석해봤다. [편집자주]

이코노미조선

# 독일이 9월 27일(이하 현지시각) 남은 원전 3기 중 2기의 폐기 일정을 최장 2023년 4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애초 올해 말까지 원전을 모두 폐기하는 계획을 10여 년 전에 세웠지만, 올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전력 위기에 직면한 탓이다.

# 중국 국무원은 9월 13일 광둥성과 푸젠성의 원전 건설을 승인했다. 올 들어서만 다섯 곳의 원전 건설을 승인했다.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여파로 2016~2018년 원전 건설을 단 한 곳도 승인하지 않았던 중국은 2019년 세 곳, 2020년 구 곳, 2021년 세 곳에 이어 원전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 우리나라 정부는 9월 20일 원전을 K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 초안에 포함하며 ‘친환경 경제 활동’으로 분류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원전 기업이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조치다.

11년 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을 선언했거나, 원전 건설에 속도를 늦추던 나라들이 다시 원전 생태계 가동을 위해 기름칠을 하고 있는 사례들이다. 풍력과 태양광 같은 재생 에너지만으로는 70여 개국들이 약속한 2050년까지 탄소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데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발 에너지 대란으로 에너지 안보가 국가 과제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2월 “원자력 산업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9월 5일 “(탈원전 5년간) 무너진 생태계 복원에서 나아가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배경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불러일으킨 탈원전 바람은 신규 건설 중단이나 노후 원전 조기 퇴역 등에 따른 원전 감소로 이어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전 세계 33개국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2018년 말 444기에서 지난해 말 432기로 감소했다. 올 들어 9월 21일 현재 433기로 증가했는데, 건설 중인 원전이 57기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증가세는 더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지난해 착공에 들어간 원전이 10기로, 최근 연간 4~5기에 머물던 수준의 두 배에 달했다.

우리나라가 5년간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동안 원전 수출 강국의 자리를 러시아가 차지했다. 2017년 이후 착공한 전 세계 원전 27기 가운데 17기는 러시아, 10기는 중국 기술이 적용됐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러시아 입지가 좁아지고, 한국과 함께 원전 강국으로 꼽히던 프랑스 등이 탈원전 정책 폐기에 나서면서 원전 산업의 판도는 또다시 요동 칠 전망이다. 1970년대 중동전쟁발 오일쇼크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원전 붐이 일었던 것처럼 원전에 또 다른 새벽이 올지 주목된다. 원전의 재기는 한국의 원전 산업 수출 회복과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할 전망이다. 하지만 폐기물과 사고에 대한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았다. 원전 산업이 본격적으로 재기에 나서려면 적지 않은 조건이 성숙돼야 한다. ‘이코노미조선’이 ‘원전 르네상스’를 기획한 이유다.

기후 목표 달성, 재생 에너지만으로 역부족

원전의 새벽을 기대하는 배경엔 탄소중립을 위한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 에너지에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순탄치 않은 현실이 있다. 신재생 에너지가 2050년까지 전 세계 전력 공급의 90% 이상을 차지해야 하지만 작년 말 기준 28.1%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태양광 발전 산업과 관련한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신재생 에너지 확장세가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탈원전 고수 국가들마저도 이를 폐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보복하기 위해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는데, 그 결과 가스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 비중이 40%에 달한 탓에 혹독한 에너지 대란을 겪는 유럽에서는 원전을 다시 돌려 ‘에너지 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럽연합(EU)의회가 지난 7월 택소노미에 원전을 추가하기로 한 배경이다. 이에 따라 원전 산업은 저금리 융자 등의 녹색 투자 범주에 속한 업종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특히 9월 26·27일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해저 가스관의 연쇄 누출이 러시아의 파괴 탓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에너지 안보 보루로서 원전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독일에 앞서 벨기에는 원전 2기 계속 운전 기한을 기존 2025년에서 2035년으로 연장했다. 유럽뿐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9월 1일 2024년과 2025년에 가동이 각각 중단될 예정이던 원자로 두 기를 보유한 디아블로 캐니언 원전 가동 기한을 2030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신증설을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일본은 차세대 원전 개발 신설을 검토하고, 운전 기간을 연장하거나 재가동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세계 원전 발전 설비량이 2020년 415GW에서 2050년 812GW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 원전 건설을 위한 연간 투자 규모는 2010년대 300억달러(약 43조4100억원)에서 2030년까지 1000억달러(약 144조7000억원)로 확대된 뒤, 2050년까지 800억달러(약 115조7600억원)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SMR 승부수 던진 세계

원전에 새로운 새벽이 열리면 과거와는 다른 기술이 부각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경제성과 안전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차세대 원전 기술인 소형모듈원자로(SMR)가 그것이다. 2016년 막대한 비용 문제로 원전 건설 계획을 보류했던 베트남이 올해 3월 SMR을 포함한 에너지 계획 초안을 공개한 배경에는 SMR의 경제성이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에 따르면, SMR의 중대 사고 확률은 10억 년에 한 번으로 100만 년의 한 번인 대형 원전에 비해 크게 낮다. 건설 기간과 비용도 각각 24개월, 1조원으로 대형 원전의 48개월, 4조~5조원보다 효율적이다.

SMR 시장에서는 2027년 세계 첫 상용화를 목표로 내건 미국 뉴스케일파워가 선두에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뉴스케일파워에 지난해까지 1억400만달러(약 1504억원)를 투자했고, 지난 8월 방한한 빌게이츠와 만난 최태원 SK그룹회장은 빌게이츠가 만든 SMR 개발 업체 테라파워에 2억5000만달러(약 3617억원) 투자를 약속했다.

원전 르네상스는 인재 양성에서도 나타난다. 2020년 기준 원자력 관련 학과 재학생은 2165명으로 탈원전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전인 2016년 대비 22% 감소했다.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등 일부 학과에서는 입학 정원 미달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전력이 운영하는 한국에너지공과대학은 내년 원전 교육과정을 신설하기로 하고, 우선 SMR 석·박사 신입생을 모집할 예정이다.

K원전 수출 산업으로의 복귀도 기대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8월 3조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하지만 원전 르네상스가 한국 원전 강국의 복귀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원전 산업 매출이 2020년 4조573억원으로 2016년 대비 26.2% 위축될 만큼 무너진 원전 생태계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5년까지 1조원 이상의 일감을 원전 생태계에 조기 공급하고, 연내 6700억원의 기술 투자, 38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추진하기로 한 배경이다.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정책을 조기에 마련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백원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원전 사고와 사용 후 핵연료 문제 등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며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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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모듈원자로(SMR) 경수로, 중수로, 고속로, 고온로 등 다양한 중소형 원전을 통칭한다. 발전 용량은 500MW 이하로 대형 원전(1000~1400MW)보다 적다. 공장에서 제작·조립할 수 있어 건설 기간은 줄이고, 비용은 절감할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해도 원자로 주변의 물로 바로 열을 식힐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Plus Point

Interview 마이클 크루제 독일 자유민주당(FDP) 에너지 대변인

“원전, 유럽 전력망 안정시킬 수 있는 효과적 발전원”

독일 자유민주당(FDP) 에너지 대변인. 사진 FDP

“우리는 비핵화가 장기적 관점에서 옳은 일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보면 이 중요한 에너지원을 잃을 여유가 없다.”

마이클 크루제 독일 자유민주당(FDP) 에너지 대변인은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독일 여당인 FDP는 사회민주당·녹색당 등 야당과 ‘원전 가동 연장’을 두고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불안정해진 에너지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전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크루제 대변인은 독일 내 원전 찬성 여론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독일 시사 주간지인 ‘슈피겔’이 8월 12일 진행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78%는 올해 말 가동 중단이 예정된 남은 원전 3기의 가동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원전 신설 찬성 의견도 41%에 달했다. 그는 이 같은 배경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벌인 부당한 전쟁이 유럽 에너지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랫동안 유지된 가스 공급이 급격히 중단되며 가스 가격이 상승했고, 독일이 전력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 수립한 단계적 원전 철폐 계획을 조정하게 된 배경이다. 그는 “원전은 유럽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에너지원”이라며 “국민은 이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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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원전의 귀환

① 탄소중립·우크라 전쟁 쇼크에 에너지 안보 보루로 원전 재부각

② [Infographic] 원전 르네상스

Part 2. 원전 산업의 혁신가들

③ [Interview] 다이앤 휴스 뉴스케일파워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부사장

④ [Interview] 강홍규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영업담당 상무

⑤ [Interview] 김기원 조광ILI 기술연구소장

Part 3. 전문가 제언

⑥ [Interview] 사마 빌바오 이 레온 세계원자력협회 사무총장

⑦ [Interview] 대니얼 예긴 S&P 글로벌 부회장

⑧ [Interview] 윤시우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⑨ [Interview] 백원필 한국원자력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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