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키스보다 비틀스의 탄생을 바라며[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2022. 10. 10. 09: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스템과 콘텐츠의 조화..진일보한 K팝 장르와 문화 되다
역사상 최고의 밴드로 평가받는 비틀스 / 자료=위키피디아



최고의 시스템이 만들어 냈지만 비틀스의 아류로 평가받는 '몽키스' / 자료 = 위키피디아


어느 순간 미국의 ‘빌보드’ 차트가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멀고 먼 세상에서 이뤄지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좋아하는 K팝 가수들이 차트에 오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이들이 빌보드 정상을 차지했다는 소식까지 잇달아 전해지고 있다. 들을 때마다 신기하면서도 하나의 익숙한 일상처럼 여겨진다.

지난 9월에도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블랙핑크’가 K팝 걸그룹 최초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했다. 미국 음악 매체 빌보드지는 “블랙핑크가 글로벌 최강자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 그룹 ‘대니티 케인’ 이후) 14년 동안 이어진 여성 그룹의 빌보드 200 차트 1위 부재를 깨뜨렸다”고 보도했다. 블랙핑크는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미국과 영국 양대 차트를 동시에 석권한 여성 아티스트는 2001년 데스티니 차일드 이후 21년 만이다. 

K팝이 한층 더 진일보하고 있다. 그 보폭은 우리의 예상과 기대보다 훨씬 더 넓은 것 같다. 싸이와 방탄소년단(BTS)에 이어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보이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팬덤이 약한 걸그룹이 정상에 오른 것도 K팝의 확산 범위와 파급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류를 이끌어 온 K팝이 이제 ‘한류’라는 단어의 틀조차 깨부수고 하나의 장르이자 문화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시스템이 만들어 낸 K팝 전성기

음악이 국경을 넘나들었던 역사 그리고 그 막강한 힘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한국엔 1960년대에 이미 팝송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미드(미국 드라마), 영드(영국 드라마)를 접하고 좋아했던 시기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 대중에겐 호흡이 긴 영상 콘텐츠에 비해 노래가 직관적으로 다가오다 보니 더욱 쉽게 확산됐다. 1969년 영국 팝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내한 공연을 열었던 일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많은 국내 팬들이 공연장에 모여 환호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해외 가수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기성세대는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현상들이 K팝의 얘기가 될 것이라곤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아시아의 작은 국가에서 나온 음악이 언어적·문화적 장벽을 모조리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란 상상은 하기 힘들었다. 어쩌면 그 균열은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며 시작됐는지 모른다. 고정된 틀을 깬 자유분방한 음악이 나오자 대중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부터 많은 음악적 실험이 이뤄졌고 아이돌 그룹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외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한류의 첫 시작은 1997년으로 본다. 당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 CCTV에서 방영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겨울연가’ 등이 일본과 동남아 지역에서 인기를 얻었고 한류는 꽤 오랜 시간 ‘드라마 중심, 아시아 한정’이란 공식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부터 K팝이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힘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한류는 K팝이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이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막강한 팬덤 자체로 따진다면 K팝에 더욱 무게가 실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해외 현지 팬들은 K팝이 가진 ‘완결성’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특히 다른 나라에선 보기 힘든 아이돌 그룹의 모습에 주목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노래, 한 치의 오차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정확하게 맞춰진 군무, 감각적이고 화려한 뮤직 비디오까지 다양한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다.  

여기엔 시스템의 힘이 컸다. K팝 아이돌의 성장에서 대형 기획사들이 구축한 시스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2010년대 들어 기획사들은 미국과 중국 등 보다 넓은 시장을 타깃으로 아이돌 그룹을 만들기 시작했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다수의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멤버 수를 10명 이상으로 구성했고 해외 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외국인 멤버도 뽑았다. ‘장르 간 결합’을 의미하는 ‘매시업(mash up)’ 작업을 활발히 진행해 각 장르의 장점을 절묘하게 결합한 노래들도 선보였다.

마침 생각지 못한 행운도 찾아왔다. 영상 플랫폼의 발달이 K팝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유튜브는 K팝의 광범위한 확산과 일상화에 큰 도움이 됐다. 개별 기획사와 아티스트의 발이 미처 닿지 못했던 지역과 팬들 개개인의 삶에 구석구석 파고들 수 있도록 했다. 신인들이 인지도를 쌓는 일도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다. 일일이 해당 국가에 진출하고 네트워크를 쌓는 작업을 하기 전에 먼저 유튜브를 통해 인지도를 높일 수 있게 됐다. 

나아가 K팝은 아예 시스템을 파는 단계에 이르렀다. JYP엔터테인먼트는 2020년 일본 음악 시장에서 ‘니쥬’를 결성해 선보였다. 이들은 전원 일본인이고 노래도 일본어로 부른다. 하지만 니쥬는 ‘K팝 걸그룹’으로 불린다. JYP엔터테인먼트가 일본 최대 음반사 소니뮤직과 손잡고 K팝 시스템을 접목해 아이돌 그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인과 한국어를 찾아보기 힘든 K팝을 한류로 볼 수 있는지 논란도 있다. 하지만 국경·인종 등 각종 한계를 벗어던지고 K팝 시스템을 수출한다는 점에서 K팝의 새로운 도약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제2의 비틀스’라고 불리는 BTS

그러나 시스템이 K팝의 전부는 아니다. 시스템만으로 K팝의 폭발적 확산을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K팝이 정상에 올랐던 최고의 순간들은 시스템의 틀에서 살짝 벗어난 것들이었다. 처음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시스템상으로는 도저히 예측 불가했던 돌연변이 같은 일이었다. 영어 노래도, 아이돌 그룹도 아닌데 유튜브를 타고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 톡톡 튀고 재밌는 노래와 안무에 외국인들은 일제히 말춤을 따라하며 즐거워했다. 

BTS가 성장한 과정도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그룹들과 달랐다. 2013년 데뷔한 BTS는 2014년 미국 할리우드로 가 거리에서 직접 전단지를 나눠 주며 자신들의 이름을 알렸다. 대형 기획사 소속도 아니었고 인지도도 낮은 신인의 아시아 아티스트가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몸소 부딪쳐 가며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 아티스트와 팬 사이의 벽도 적극 허물었다. 온라인 등으로 팬들과 소통하며 팬덤을 차근차근 확장해 나갔다. 공든 탑의 위력은 폭발적이었다. 데뷔 초부터 BTS와 함께 시간·생각·철학을 나눠 온 팬들은 이들의 성장을 열렬히 지원하고 응원했다. 

결국 K팝 최고의 성공과 순간들은 시스템만으로는 탄생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시스템이 K팝의 튼튼한 기반을 만들었고 여전히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시스템의 함정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어느 순간 어디선가 본 듯한 비슷한 노래와 안무가 나오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뜨겁게 달아올랐던 국내외 팬들의 마음은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어 버릴 수 있다.

1960년대를 풍미한 비틀스는 세계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영국의 비틀스가 미국의 음악 시장을 평정하자 미국에선 이들을 따라한 밴드가 결성됐다. 급히 오디션을 통해 비틀스와 비슷한 멤버들을 뽑아 구성한 ‘몽키스’였다. 비틀스의 인기가 높았던 만큼 몽키스 역시 수많은 앨범을 팔았다. 한 해 동안 3장의 앨범을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올린 그룹은 역사상 세 팀에 불과한데 비틀스·몽키스·BTS가 그 주인공이다. 

몽키스가 급조된 그룹이기는 하지만 이들을 뒷받침한 시스템은 완벽했다. 몽키스 음악엔 잘나가는 프로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대거 동원됐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대로 노래만 부르면 끝이었다. 자신만의 창작 과정을 거쳐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들어 낼 시간과 여유는 갖지 못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비틀스는 기억하지만 몽키스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다. 

앞으로 K팝은 어디로 가야 할까. BTS가 ‘제2의 비틀스’라고 불리듯이 우리는 K팝 시장에서 또 다른 비틀스가 지속적으로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선 잘 짜여진 ‘틀’도 좋지만 그 안에서도 아티스트들이 상상하고 뛰어놀 수 있는 ‘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김희경 한국경제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