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관광은 인기인데 靑 내준 대통령은 그 인기 못 누리는 까닭 [강경희 칼럼]

강경희 논설위원 2022. 10. 10.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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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도 옮길 듯한 기세
대통령실 이전으로 끝났나
내각 구성, 관저 입주 5개월씩 걸리니
소문에 발목 잡히고 중대 국정 조망 못받아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개회선언 때 박수를 치고 있다./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5개월을 맞는다. 윤 대통령 취임과 함께 개방 5개월을 맞는 청와대 일대는 요즘 서울 시내에서 가장 북적이는 관광 명소가 됐다. 쇠락해가던 삼청동 일대 상권이 청와대 개방으로 하루가 다르게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1년간 경복궁 관람객 수가 108만명이었다는데 청와대 관람객은 5개월 만에 200만명을 돌파했다.

활기 넘치는 삼청동을 걷다 보면 역대 대통령 누구도 실행하지 못한 일을 하고도 윤 대통령은 왜 청와대 개방의 호재를 별로 누리지 못할까 의문이 생긴다. 청와대 이전은 되레 윤 대통령 지지율에 마이너스 요인도 됐다. 사저에서 출근하면서 매일매일 동선이 드러나고 언론과 접촉점이 빈번하면서 온갖 사소한 실수가 노출돼 지지율을 갉아먹었다.

시민에게 개방된 청와대 본관 앞에 사진 촬영을 하려는 시민들이 줄 서 있다. 2022.5.10/뉴스1

청와대 개방과 대통령실 용산 이전은 수십년간 사용하던 진지를 버리고 허허벌판에 새 진지를 구축하겠다는 장수의 돌발 선언 같은 것이었다. 후속 승전보가 이어지면 기개와 용기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질 못하면 성급함과 전략 부족의 부정적 인상만 강해지는 역풍을 맞는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렬한 이미지 덕분에 정치에 소환된 윤 대통령이 태산도 옮길 듯한 기세로 청와대를 개방하고 대통령실을 뚝딱 옮겼던 것처럼, 배우자와 반려 동물 데리고 관저에도 후딱 입주하고, 내각 구성도 시원시원하게 하고, 여당도 내 편 네 편 안 가리고 통 크게 끌어안고, 우물쭈물 않고 추상같은 기개로 법치 구현에 나섰다면 대범하고 추진력 강한 지도자 이미지가 초반에 자리 잡으면서 사소한 실수는 별로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활기 띠는 청와대 일대에서 윤 대통령의 긍정적 이미지가 오버랩돼 반사 이익도 톡톡히 누렸을 것이다.

혹자는 21세기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한다. 기술의 변화는 경제도, 정치 환경도 바꾸어놨다. 소셜미디어가 확산되면서 정제되지 않은 정보와 루머로 선전 선동이 훨씬 용이해졌다. 믿거나 말거나의 소음들로 왁자지껄한 속에 누군가 스피커를 틀어 덜 중요한 일을 심각하게 부각시키고 훨씬 중요한 일은 뒤로 묻히게 만들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회 전체가 좌우 진영 대결로 과잉 정치화됐다. 정치판은 우리 편이기만 하면 마구잡이로 등판시켜 온갖 불량주, 잡주들이 넘쳐나는 주식시장 2부 리그 비슷하게 됐다. 윤 대통령은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넘어서게 되자 “지지율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주식시장 이상으로 변동성이 심해진 정치판의 본질을 직시하고 귀를 열고 전략을 가다듬어 반등의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들이 경영도 챙기지만 증시에서 주가 관리도 신경 쓰는 것처럼, 대통령도 이미지 관리, 평판 관리로 시장을 견인하는 ‘블루칩’이 되어야만 정책 추진에 힘이 실리고 궁극에는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불리한 판세를 뒤집어 목표하는 국정을 향해 나아갈 수가 있다. 거대 야당이 국회를 장악한 구도에서는 더더욱 대통령 지지율이 정책 추진의 단발 엔진일 수 밖에 없다.

경제 전문가들은 주가가 떨어지는 하나의 현상을 놓고도 체계적 위험(systematic risk)과 비체계적 위험(unsystematic risk)으로 나누어서 분석한다. 체계적 위험이란 요즘처럼 경제 상황이 나빠져 주식시장이 다같이 주저앉는 걸 말한다. 개별 기업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위험이다. 그와 달리 개별 종목에 따라다니는 비체계적 위험은 여러 종목으로 분산 투자를 한다면 위험도를 낮출 수가 있다.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면 전임 문재인 대통령은 혼밥에, 불통이라는 정치인으로는 약점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이미지 메이킹에 능한 참모진의 엄호 속에 열혈 팬 층을 두껍게 관리해 비체계적 위험을 낮췄고 지지율 방어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건 온갖 정책 폭주로 그 진영 전체가 우리 사회의 체계적 위험을 높여 놨기 때문이다. 반대로 윤 대통령은 본인과 배우자의 개별 위험이 극도로 부각되는 비체계적 위험이 집중 상승해왔다.

국제 정세와 세계 경제 환경이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밖에서 위기가 닥치면 우리 국민은 뭉쳐서 위기를 극복했다고들 하지만 달라진 정치 환경에서 그런 기적을 다시 기대하기는 힘들다. 외환위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각각 체계적·비체계적 위험을 지렛대 삼아 집권에 성공해본 경험을 가진 야당으로서는 초유의 위기가 닥쳐올수록 절호의 기회로 여길 것이다.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민심은 더 급속히 악화된다. 잔불이 산불되기 전에 대통령이 귀를 열고 본인과 주변의 추가 실점부터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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