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벽
고양이가 태어난 게 분명하다
고양이가 울었으니까
소리로만 짐작할 뿐이지만
귀는 벽이 되어 있어
내 귀는 꽈리처럼 쪼그라들어 고양이를 가둬 놓는다
언제나 이맘때면 되돌아오는 그런 날이 있다
녹아 버려서 울음이 될지도 모르는 날들
마른 울음 한번 터트리지 못한 첫아이는
물컹 내 속을 빠져나갔다
매일매일 울음은 저녁 무렵을 통과했다
벽을 사이에 두고
고양이 소리가 더 큰 벽을 만들어 지붕을 씌운다
귀를 기울일수록
벽이 있었으니까
꼬리가 사르르 사라질 때까지
내가 태어나고 있었다
정정화(1973~)
몸이 아파 외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연스레 소리에 민감해진다. 기억을 되살리거나 소리에 집중해도 가로막힌 벽 때문에 밖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창문. 그 좁은 창으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지만, 그 너머의 궁금증까지 해소할 수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귀는 벽 뒤와 소통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다. “소리로만 짐작”되는 세상은 답답하고 갑갑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귀는 점점 벽을 닮아 간다.
세월이 흐를수록 무뎌지지만 어제 일인 양 생생한 기억이 있다. “마른 울음 한번 터트리지 못한 첫아이”에 대한 기억처럼. 매년 이맘때면 몸이 먼저 아프게 반응하고, 마음은 “물컹 내 속”으로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한다. 매일 울음으로 저녁을 맞이한다. “벽을 사이에 두고” 들려오는 고양이 소리는 아기 울음을 닮았다. 벽은 안과 밖, 지붕은 이쪽과 저쪽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꼬리가 사라지는 건 환생의 징조, 다시 태어나는 나는 ‘첫아이’와 다르지 않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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