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소행성 앞에 기후위기

홍진수 기자 2022. 10. 1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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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에서 1100만㎞ 떨어진 우주로 우주선을 보내 소행성 ‘디모르포스’에 충돌시키는 데 성공했다. 충돌 상황은 NASA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NASA가 ‘이중 소행성 경로 변경실험(DART)’이란 이름을 붙인 이번 계획의 목적은 언젠가 지구로 날아들 소행성을 방어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1998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아마겟돈>처럼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기 전에 소행성의 이동 경로, 즉 궤도를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실제로 소행성의 궤도는 바뀔 것으로 보인다. 빌 넬슨 NASA 국장은 충돌 성공 뒤 “이번 실험은 지구 방어를 위한 전례 없는 성공”이라며 “전 인류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24년 전 개봉한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자 많은 사람이 환호했다. 이제 인류는 소행성의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킬 기술을 갖게 됐다.

나는 이 뉴스에 심드렁했다. 그 직전에 기후위기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소행성을 막으면 뭐하나. 이미 지구는 스스로 종말로 가고 있는데”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소행성을 막기 위해 밤낮 없이 노력해 온 연구진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기후위기를 막지 못한다면 인류는 소행성이 지구를 강타하기 전에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갈 것이다.

지난달 13일 세계기상기구(WMO), 유엔환경계획(UNEP), 영국 기상청 등 국제연합(UN) 산하기관과 협력 기관 9개가 합동으로 기후위기 관련 보고서를 발표했다. 제목은 ‘유나이티드 인 사이언스(United in Science) 2022’. WMO는 보고서 내용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여전히 부족하다.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번 세기 동안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2.5~2.7도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딱딱하게 설명하면 작금의 위기가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그럴 줄 알고 보고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위기를 경고한다. 앞으로 5년 안에 ‘역대 가장 더운 해’가 찾아올 수도 있다. 그리고 2050년대에는 16억명이 1년 중 3개월은 ‘평균 기온이 최소 35도인 환경’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마다가스카르, 말라위, 모잠비크, 짐바브웨 등에 매우 강한 사이클론이 덮쳐, 폭우와 광범위한 홍수를 일으켰다. 파키스탄에서는 인공위성에서도 포착될 규모의 홍수가 일어났다. 유럽에는 평년보다 7~12도 높은 폭염이 찾아왔다. 포르투갈에서는 일 최고기온이 47도에 달하기도 했다. 영국의 폭염 가능성은 최소 10배 더 높아졌다.

한국도 얼마 전 기후위기의 위협을 실감했다. 지난달 초 경북 포항을 비롯해 남부지방에 집중적으로 피해를 안긴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기존에 우리가 알던 태풍이 아니었다. 발생 지점과 강도 등이 앞서 경험했던 태풍과 달랐다. 기후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도 그 ‘행태’가 변했다. 힌남노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태풍’의 시작일 수 있다. 지난달 중순에는 제14호 태풍 난마돌이 ‘초강력’급 규모까지 발달해 한반도를 위협했다. 기후변화와 라니냐 같은 자연 변동성이 겹친다면 태풍이 더 늦게까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앞으로는 ‘10월 태풍’을 넘어 11월 태풍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종말을 기다릴 수는 없다. 다행히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도 ‘행동’을 한다면, 되돌릴 수는 없어도 스스로 무덤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은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행동에 동참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24일 열린 기후정의행진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3만5000여명이 참석했다. 3년 전에 비해 7배로 늘었다. 기후정의행동 조직위는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더 넓고, 깊어졌으며 위기감도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봤다. 지난달 29일에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계획을 정부가 철회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해달라는 국회 청원에 5만명이 동의했다. 마감을 10일 남긴 지난달 20일까지 청원인은 1만명에 불과했지만, 기후정의행진 이후 빠르게 늘어 일주일여 만에 4만명을 더했다. 행동하면 된다.

아직 지구에는 희망이 있다. 소행성 다음은 기후위기를 막을 차례다.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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