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별 볼 일 있는 사람

국제신문 2022. 10.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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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은 소년이 뒤따라 달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곧 소녀보다 더 많은 꽃을 꺾었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황순원의 ‘소나기’가 새록새록, 들국화의 계절이다. 하지만 들국화라는 꽃은 없다. 야생국화를 종류와 관계없이 들국화라 하는데 소년이 말한 것은 벌개미취나 쑥부쟁이, 구절초일 가능성이 높다. 벌개미취와 쑥부쟁이는 꽃 색깔이 모두 연보라색에다가 생김새도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자세히 보면 벌개미취는 잎이 크고 길며 쑥부쟁이는 잎이 작고 가장자리에 작은 톱니가 있다. 구절초는 대부분 흰색이며 잎이 쑥을 닮아 구별하기가 쉽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안도현 시인의 ‘무식한 놈’이다. 시이불견(視而不見)이라, 보기를 하되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실에서 진실을 발견하는 감동을 모른다. 삶의 재미가 덜하다.

옛날 중국에서는 시인을 견자(見者, 보는 사람)라 했다. 잘 보는 사람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말이 있듯이 잘 본다는 것은 세상을 잘 섬기는 것이다. 늘 거기에 있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감동을 자아낸다. ‘콩들은 밥으로 떡으로 갈 것이고 콩깍지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언저리로 갈 것이다’는 시인 곽재구의 별(別) 볼 일 있는 시선을 보라. 한데 감동이라는 게 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느낄 감(感) 움직일 동(動), 느낌이 있어야 마음이 움직인다. 느끼는 것도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느낌은 오는 것. 받아낼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스쳐 지나간다. 잘, 그리고 깊이 느끼기 위해서는 효율을 포기하고 느끼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어느 시인은 ‘풍경보다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세상을 가득 채우는 눈에 보이는 존재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들을 잘 섬기면 된다는 생각에 마루에 걸터앉아 일상에 대한 예의를 갖춰 보기로 한다. 마음이 보고 느끼는 대로 받아 적는다. ‘햇살이 집 뜰을 적시기 시작할 즈음, 참새가 와서 무화과를 쪼고 있다. 내 눈과 마주쳤다. 고개를 갸웃하더니 휘동그란 눈으로 날아오른다. 은침(銀鍼) 같은 눈빛에 내가 먼저 시선을 피했어야 했는데, 미안하게 돼버렸다. 다시 올 테지! 그리움이 순하게 겹친 내 마음이 안쓰럽다는 듯 햇볕도 오래 머물러 준다’. 자꾸 해보면 풍경보다 아름다운 마음이 될 테지.

시인의 재능은 ‘자두를 보고도 감동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앙드레 지드는 말했다. ‘자두를 손으로 만져보면, 그 감촉은 덜 자란 동물의 살과 같다. 자두는 껍질을 깎을 필요도 없이 통째로 먹는다. 입을 크게 벌려서, 이걸 깨물어 먹으려면 늘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이 안쓰러움이 여름의 즐거움이다’. 자두 한 소쿠리 조곤조곤 먹으면 소설가 김훈을 닮은 안목이 생길 것이다. 감동을 잘하는 사람들이 쓴 책을 탐독(耽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호학심사(好學深思), 즐거이 배우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밑줄 긋고 메모해서 기억하고 자꾸 들여다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색을 한다. 깊이, 그리고 잘 들여다본 순간들의 느낌이 찬란한 감동을 만들어 낸다. 인생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감동받지 못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조갑룡샘, 하동송림 꽃무릇이 만개했어요. 꽃말은 슬프지만 보는 눈은 즐거움이 배가 되는 상사화예요’. 지인에게 ‘무식한 놈’을 보냈다. 상사화는 여름 칠월칠석 전후에 피고 꽃무릇은 초가을인 백로와 추분 사이에 피워낸다. 상사화는 주로 연분홍이나 노랑이고, 꽃무릇은 아주 붉다. 결정적인 차이는 잎이 먼저 나면 상사화, 꽃이 먼저 피면 꽃무릇이다. 한 번이라도 더 봐주기를 원하는 그들의 구애작전일까?


여전히 세상은 자세히 잘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나태주 시인은 일러 준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아, 이것은 비밀’.

조갑룡 교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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