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사랑할수록

기자 2022. 10.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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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을 찾아가지 않은/ 저 언덕 너머 거리엔…”으로 시작하여 “시간이 흘러 지날수록/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너에게 난 아픔이었다는 걸/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으로 치닫는 노래 ‘사랑할수록’(1993)은 실연의 상처를 겪은 이들에게는 비수(匕首)와 같은 노래다. 듣다 보면 실연의 아픔은 더 커지고, 부르다 보면 목이 쉬기 일쑤였다.

그 중심에는 요절한 가수 김재기가 있다. 김종서, 이승철, 박완규, 정동하 등 부활을 거쳐간 걸출한 보컬이 많았지만, 김재기는 짧은 시간 동안 강한 인상을 남겼다.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헤비메탈 그룹 뉴작은하늘의 멤버인 김재기를 발견한 건 행운이었다. 친구인 장동명 목사의 소개로 만난 김재기가 그룹 나자레스의 ‘러브 허츠’를 불렀을 때 김태원은 전율했다. 고음과 저음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적절한 감성을 뒤섞는 노래 솜씨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러나 김태원은 대마초로 구치소에 가고, 김재기는 군에 입대하면서 두 사람은 부활의 3집(기억상실)에서야 비로소 만났다. 앨범 제작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1993년 8월, 김재기가 김태원에게 전화했다. 차가 견인되어 과태료가 필요하니 돈을 빌려달라는 거였다. 김태원은 현금이 없으니 기다려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어렵게 돈을 구해 차를 찾은 김재기는 폭우가 쏟아지던 새벽에 운전하다가 사망했다. 중고차의 윈도브러시 고장으로 마주 오던 트럭과 충돌한 것이다.

김재기가 남긴 노래는 무명 시절의 몇 곡과 ‘사랑할수록’ 외에 ‘소나기’와 ‘흑백영화’ 등 단 세 곡뿐이었다.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했지만 아직 그를 따라잡을 만한 보컬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그의 이른 죽음이 안타깝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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