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70년 만에 고향 돌아온 영화 ‘낙동강’

김성현 문화부 차장 2022. 10. 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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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중 개봉했던 ‘낙동강’ 원본 찾아 부산영화제서 상영
현재 한국 영화의 눈부신 飛上도 당시 예술인의 분투 덕에 가능
1952년 영화 '낙동강'이 7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뒤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장과 음악 칼럼니스트 김원철씨가 작품의 의미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영화가 있다. 6·25전쟁 당시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1952년 개봉했던 영화 ‘낙동강’이다. 전쟁 중에도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은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제작한 한국 영화는 20여 편에 이른다. 다큐멘터리 ‘정의의 진격’과 극영화 ‘태양의 거리’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나머지 작품들은 종적이 묘연한 상태다.

‘낙동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 장면이 담긴 흑백사진 10여 장이 남아 있었을 뿐, 원본 영상은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최근 ‘낙동강’의 원본 영상을 확보한 뒤 디지털 복원 작업을 거쳐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특별 상영회를 통해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70년 전에 부산에서 개봉했던 전쟁 영화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다.

영화제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70년 전의 흑백 유성(有聲) 영화를 보는 심정은 살짝 묘했다. 우선 초반 화면에 나오는 자막부터 ‘낙동강’이 아니라 ‘낙독강’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극 영화와 다큐멘터리 형식이 섞여 있어서 요즘 관객들의 시선에서는 다소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물론 ‘기생충’으로 세계 영화의 정상에 오른 현 시점에서 ‘낙동강’의 완성도를 오늘날의 작품들과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 것이다.

영화는 양산 통도사와 을숙도 갈대밭 같은 문화유산과 자연 풍경, 낙동강에 뛰어드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먼저 보여준다. 그 뒤 전쟁의 비극적 참상을 고발하고 남녀 주인공이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전시(戰時) 계몽 영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남녀 주인공은 “놈들은 우리의 생명과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이 단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당시 국방부의 도움을 받아서 낙동강 전투 장면도 삽입했다. 전시의 열악한 상황과 절박한 심경이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 같았다.

영화 낙동강 스틸컷. /영상자료원

이 영화의 고향을 부산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낙동강’은 부산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인 ‘향토문화연구회’가 경남도청 공보과의 후원을 받아서 제작했다. 광복군 제2지대 선전대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한형석(1910~1996) 선생이 영화의 기획·재무에 참여했다. 전시작곡가협회 사무국장이었던 윤이상이 작곡하고 이은상이 작사한 영화 삽입곡 ‘낙동강’도 인기를 모았다. 전후(戰後) KBS 교향악단 초대 상임 지휘자를 지낸 임원식이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았다. 전쟁 당시 한국 문화 예술인들의 역량이 총결집한 결과물이 ‘낙동강’인 셈이다. 이날 영화제에서 ‘낙동강’을 관람한 한형석 선생의 아들 한종수(62)씨는 “말로만 듣던 작품을 실제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선친과 가족들도 함께 보셨다면 무척 기뻐하셨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동안 1950년대는 한국 영화사에서도 ‘잃어버린 고리’이자 공란(空欄)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전시의 악조건과 혼란 속에서도 당시 영화인들이 쏟아부은 노력은 전후 영화계가 빠르게 재건될 수 있었던 든든한 발판이 됐다. 현장 취재를 하다 보면 간혹 가족사와 현대사가 만나는 예외적 순간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낙동강’이 그런 경우였다. 부산·경남 지역 음악사 자료에는 기자의 조부가 ‘낙동강’에서 합창 지휘를 맡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쟁 중에도 ‘낙동강’을 만들었던 6·25 세대의 분투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한국 영화의 눈부신 발전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거대한 역사의 흐름 앞에서 다시 겸허해졌다. 올해 부산에서 역사를 배우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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