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용 공짜 마약'에 20대 초범 양산.. 놀이터서 주고받기도

김윤이 기자 2022. 10. 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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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파고든 마약의 유혹]
"서핑해변 술집서 어울려 마약" 일상 파고든 유혹
20대 중독자 "젊은층에 마약 만연".. 초범 비율도 증가.. 80% 처음 넘어
10대 마약사범 4년새 104명→227명.. 전문가 "마약류 전체 경각심 높여야"
“올여름 강원도 서핑 해변 인근 술집에서 자연스럽게 마약을 투약하는 사람을 봤어요. 주변에 권유도 하더라고요.”

마약 중독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20대 중반 여성 A 씨는 9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강원도 유명 해변 풀 파티 같은 곳에선 대놓고 마약을 한다”면서 “관심 없는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젊은 층이 모이는 곳에선 마약 투약과 거래가 이미 공공연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A 씨는 스물한 살 때 남자친구가 권유한 필로폰을 호기심에 접했다가 5년 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최근 정신병원에 입원한 끝에야 간신히 ‘마약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과거 중독자들이 음습한 곳에서 몰래 사고팔거나 투약하는 것으로 치부됐던 마약이 최근 몇 년 동안 급속히 확산되면서 시민들의 일상 공간까지 침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단위로 즐겨 찾는 동해안 관광지와 캠핑장, 어린이 놀이터와 카페, 서울 한복판의 야외 운동경기장…. 모두 최근 마약 거래가 목격되거나 중독자들이 마약을 투약하고 돌아다니다 경찰에 붙잡힌 곳들이다.

2016년 당시 스무 살이었던 김모 씨(26) 역시 클럽에서 처음 만난 남성으로부터 “이걸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제안을 받았다. 단순한 ‘호의’로 받아들이고 남성이 선심 쓰듯 건넨 대마초에 불을 붙인 것이 중독으로 이어졌다. 김 씨는 이후 그 남성과 함께 LSD, 코카인, 필로폰, 펜타닐 등을 투약했다. 약을 끊으면 온몸이 불에 타는 듯한 금단 증상에 다시 약을 찾는 악순환이 6년간 반복됐다. 김 씨 역시 “서울 홍대입구역이나 이태원 등에서 마약이 있을 것 같은 외국인에게 요청하면 10명 중 6명으로부터는 약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일상 공간에서 마약을 접하는 일이 늘면서 처음 마약을 투약했다가 검거되는 초범도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체 마약 사범 가운데 초범 비율은 81.2%였다. 2018년 72.3%였던 초범 비율은 지속적으로 늘어 올해 처음 80%대가 됐다.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확산세가 뚜렷하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연령별 마약 사범 현황에 따르면 2018년 1392명이던 20대 마약 사범은 올해 1∼8월 기준 2664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10대 마약 사범은 104명에서 227명으로 배 이상이 됐다. 마약 사범 중 20대 이하 비중은 같은 기간 18.5%에서 34.1%로 급증했다. 마약중독 재활 전문병원인 인천참사랑병원의 천영훈 원장은 “마약이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하게 들어온 상태”라며 “마약류 전체에 대한 경각심을 사회적으로 높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해변 술집서 어울려 마약”


자취방-클럽-캠핑장-카페서 투약, 다크웹엔 한글로 된 중개사이트도
필로폰 g당 100만원→70만원으로 SNS선 대량 구매 할인까지
“약 끊으면 온몸 타는듯한 금단증상”… 10대, 20대들 다시 약 찾는 악순환


마약의 유혹이 일반인 가까이까지 침투해 있다는 것은 최근 붙잡힌 투약자 사례만 봐도 분명하다.
○ 놀이터에서도 구할 수 있는 마약

올 4월 서울 마포구에선 어린이 놀이터에서 마약을 구해 자취방에서 투약한 20대 2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은 홍대입구역 근처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외국인으로부터 향정신성의약품 ‘LSD’를 받았다. 투약 후 1명이 약에 취해 자해 소동을 벌인 탓에 덜미를 잡혔다.

올 8월 서울 송파구 잠실경기장에서 열린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 페스티벌에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마약을 구한 20대 B 씨와 지인 5명이 함께 LSD, 대마초, 엑스터시 등 마약을 투약했다가 경찰에 무더기로 검거되기도 했다. 한 마약 투약 경험자는 “페스티벌에 가 보면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허공에 손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며 “냄새가 안 나는 마약의 경우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투약하기도 한다”고 했다.

마약 판매책들이 마약을 안 해본 젊은층을 타깃으로 마케팅용 ‘공짜 마약’을 뿌리기도 한다. 한번 투약하면 헤어날 수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마약범죄 전문 법무법인의 박진실 변호사는 “강한 중독성을 악용한 돈벌이 전략”이라며 “마약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고 했다.
○ 인터넷 쇼핑처럼 쉬운 마약 구매

SNS에 올라온 마약 판매 게시물. 마약 판매상들은 SNS에 은어를 섞은 홍보글과 함께 텔레그램 아이디를 게재한 후,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에서 마약 거래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SNS 캡처
마약의 급속한 확산에는 온라인과 SNS를 통해 어렵지 않게 마약을 구할 수 있게 된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텔레그램 등에서 마약을 뜻하는 은어를 검색하니 마약 거래 대화방 6개가 바로 확인됐다. 개중에는 참가자가 1000명가량인 대화방도 있었다.

운영자는 보안을 위해 비밀 대화방에서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는데, 가상화폐로 입금하면 수 분 내에 ‘던지기 수법’(특정 장소에 숨기면 구매자가 찾아 가는 수법)으로 받을 ‘좌표’(장소)를 보내준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에는 지인을 통해 구매하거나 계좌이체 등으로 대금을 지불했지만 요즘엔 비대면으로 거래하고 가상화폐로 지불해 추적이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인터넷주소(IP)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에는 한글로 된 마약 전용 중개 사이트도 등장했다. 9일 취재팀이 확인한 한 마약 중개 사이트에는 판매 광고글이 다수 올라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다크웹 및 가상자산을 사용한 마약사범은 2018년 85명에서 올 8월까지 696명으로 급증했다. 수요가 늘고 일상화되면서 마약 가격은 떨어졌다. 과거엔 g당 100만 원 수준이던 필로폰이 현재 SNS 등에서 70만 원 선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량 구매 또는 재구매 시 할인해주기도 한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병원장은 “입원한 마약 투약자들은 대부분 지능지수(IQ)가 20∼30씩 떨어져 있다”며 “마약에 민감한 사람은 한 번만 투약해도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실장은 “마약은 한 번만 체험하면 100% 중독된다”며“호기심조차 가지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마약 중독으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C 씨는 “마약을 시작하면 그 끝은 정신병원이나 교도소, 아니면 죽음”이라고 경고했다.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이문수 인턴기자 고려대 사학과 4학년
양인성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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