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의 나락 한 알] 교육경쟁에 반대하다

기자 2022. 10. 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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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하순 기획재정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자유시장 경제의 핵심 개념인 ‘자유경쟁’이라는 표현”이 빠졌다며 교육부에 시정 의견서를 전달했다. 학생들이 “경제에 대한 균형적인 시각”을 길러야 한다는 이유라지만,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교육부도 경제부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질책성 발언이 일조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기재부 관료들과 현 정권이 자유경쟁을 얼마나 신봉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육 규제 완화와 성과 중심의 경쟁 체제를 주장해온 인물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도 그렇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자유경쟁’은 자유와 경쟁을 구체화한다. 자유는 경쟁할 자유, 배타적 자기실현의 권리다. 경쟁은 자유로운 경쟁, 제약 없는 싸움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수십 번 반복한 자유가 “승자독식”이 아니라 ‘연대’를 동반한 자유라 해도 여기서 그건 좋은 말일 뿐이다. 자유경쟁은 연대를 밀어낸다.

흔히, 경쟁은 인간의 불가피한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쟁은 당위가 아니라 신화다. 근거로 들기도 하는 동물의 경쟁은 그러나 “예외적인 기간에 한정적으로 일어난다”. “상호부조”가 경쟁을 억제할 때 생존은 더 유리해진다(크로폿킨). 자연의 먹이사슬은 순환 과정이고 공생의 원리다. 이를 경쟁으로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경쟁 중심 문화를 자연에 투사한 결과다. 경쟁은 학습으로 심어진 이데올로기다.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할수록 경쟁적으로 행동한다. 그렇게 ‘세상은 원래 경쟁’이려니, 여기게 되었다.

경쟁은 상호의존의 세상 질서 역행

선의의 경쟁을 말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승부가 나야 끝나는 게 경쟁이다. 효율을 높인다는 것도 근거가 약하지만, 무엇보다 경쟁은 효율보다 승부에 주력하게 한다. 그러나 무엇을 잘하려고 남을 이길 필요는 없다. 경쟁은 성과의 향상보다는 “타인의 목표 달성은 방해하면서 자신의 목표는 이루려고” 한다(알피 콘). 경쟁은 극단적 형태의 폭력적 경쟁으로 효율적이 아니라 파괴적이다.

소우주(microcosm)로 불리는 우리 몸은 지체의 경쟁이 아니라 협동으로 움직인다. 어느 하나가 너무 승하면 조화가 깨어지고 병이 난다. 그런데 왜 몸 밖의 세계는 정반대의 원리가 작동한다고 생각할까? 바깥 세계는 나와 관계없는, 나를 위협하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그러나 나와 타자를 철저히 분리하는 세계 인식은 오늘날 철학이나 자연과학에서는 이미 폐기 처분되었다. 불교의 연기론 같은 종교적 통찰도 모든 것이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를 보여준다.

경쟁은 상호의존의 관계망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질서를 거스른다. 그런 삶은 순조로울 수 없으니 긴장의 연속이다. “경쟁이 수반되면 … 효율을 따지게 돼.” 그러면 “일체가 … 적수가 돼”(장일순). 경쟁은 타자를 함께 지낼 존재가 아니라 이겨서 지배할 적수로 만든다. 경쟁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은 두려움이다. 누가 이기고 지든 마찬가지다. 좋은 삶을 생각한다면,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 맞다.

교육의 목적은 산업 인재 양성이 아니고 학교는 직업연수원이 아니다. ‘교육기본법’은 교육의 목표를 인격 도야, 자주적 생활능력, 민주시민의 자질 양성에 둔다. 인격은 ‘나’에서 너에게로 나가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타자 지향을 가로막는 경쟁은 온전한 인격 형성을 저해한다. “저 사람은 경쟁적이야.” “저 사람은 협력적이야.” 당신은 누구와 함께 지내고 싶은가? 경쟁적인 사람과 지내길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육이 지향할 유형의 사람은 누구인가? 경쟁은 민주시민의 자질 양성에도 좋지 않다. 이기는 데 몰두하면 주위와 현실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경쟁은 무관심과 현실 순응을 조장한다. 패배할까 두려움이 늘고 자유는 준다. 타자와 협동하는 관계에서는 두려움이 줄고 자유는 는다. 현실을 비판적으로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협동적인 사람 길러내는 게 교육

기재부는 학생들의 균형적인 시각을 위해 교육과정에 자유경쟁을 넣자고 한다. 하지만 학교가 아니라도 우리 사회에 경쟁을 가르치는 곳은 차고 넘친다. 지나친 경쟁 중심의 현실을 생각하면 의식적으로 협동을 더 강조해야 한다. 학생들은 경쟁을 ‘자유시장 경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필연적 원리로 학습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기재부가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자유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는 특정한 의도로 “언제나 시장에 개입”한다(장하준).

경쟁을 삶의 원리로 여기고 살아온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이 세상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만한가? 살맛 나는 세상은 서로 따뜻한 말 한마디 주고받는 마음에서 온다. 경쟁은 우리에게서 그 여유를 앗아간다. 교육은 타인을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상대로 여기는 사람을 양성하는 과정이라야 한다. 이런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연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자유를 지닌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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