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백경란 청장과 백신 피해자들

남기현 2022. 10. 1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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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조치 대부분 사라졌지만
진정한 일상회복 아직 멀어
백신접종후 가족잃은 사람들
그 아픔 누가 어루만질건가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남겼다.

"모두가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정작 자신을 바꿀 생각은 안 한다."

지금 이 명언을 되새겨야 할 정부 부처가 있다. 다름 아닌 질병관리청이다. 질병청은 정통 관료 중심의 다른 부처와 달리 의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감염·예방의학 등 의사 출신이 즐비하다. 질병청은 코로나 국면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다. 지난 2년여간 그들의 노고가 다짜고짜 폄훼되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엘리트 집단답게,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성향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백신의 감염예방 효과에 대한 인식이다. 백신 접종으로 얻게 되는 IgG 항체는 혈액에서만 생성되는 한계로 인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점막감염을 막지 못한다. 게다가 코로나 백신은 아직 안전성이 최종 입증된 단계도 아니다. 그런데도 질병청은 여전히 백신이 뛰어난 감염예방 도구였다고 믿고 있다. 이런 인식의 종착점은 백신 의무화였다. 질병청은 고위험군 중심의 방역을 주문한 일부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방역패스를 앞세워 국민 자유를 옥죄는 일에 앞장섰다. 그 결과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했다고 신고된 사례는 2000건이 넘는다. 심각한 이상반응 신고 인원은 2만명에 달한다. 40만명 이상이 크고 작은 백신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정은경 전 질병청장은 작년 11월 '백신 접종 후 사망자' 유가족들을 만났다. 당시 환자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상당수 주치의와 역학조사관들이 백신과 사망의 연관성이 의심된다고 의견을 내도 번번이 무시당하자 유족 측이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정 전 청장은 '역학조사관이나 주치의 소견은 일개 의견에 불과하다. 피해보상위에서 판단하는 것이 맞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 정권은 교체됐지만 질병청은 여전히 백신 피해자들에게 인색하다. 마치 그들에게 사과하거나 전폭적인 지원에 나설 경우 방역패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다.

두 달 전 신임 백경란 청장이 유족들을 만났다. 유족 측은 달라진 질병청을 기대했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며 눈물을 머금었다. 유족 측은 "생계유지비 지원 등 11개 요구사항을 제시했지만 아무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질병청장으로서 본인이 책임을 지고자 하는 마음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최근엔 백신 접종 후 뇌 질환 판정을 받은 남성이 질병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하자, 질병청이 즉각 항소했다. 백 청장을 비롯해 질병청 어느 누구도 피해자들의 참담한 마음을 보듬어줄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지난 6일 국회에서 터질 게 터졌다. 백 청장은 최근 논란이 된 백신 부작용 사례를 "언론을 통해 알았다"고 말해 뭇매를 맞았다. 여야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국감장은 유가족들의 눈물로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백신 부작용 인과성을 정부가 책임지고 증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후 피해자들의 눈물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년여의 긴 터널을 지나 어느덧 일상이 회복되고 있다. 한국도 실내서 마스크를 벗을 날이 머지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 현상일 뿐이다. 정신적으로 지친 국민들의 마음이 회복되려면 아직 멀었다.

질병청은 이제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유족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어루만지고 상처 입은 국민들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이 진정한 일상회복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남기현 벤처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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