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섭의 기업과 경제] 다시 생각하는 경로 우대

2022. 10. 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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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노년층 구매력 제일 높고
생활형편 괜찮은 청년도 많다
연령에 기반한 사회 부조를
경제력 기준으로 바꿀때 됐다
인구 문제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복마전이 되어 있다. 방향은 빤하게 보인다. 한국은 지금 노령화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진행되는 반면 출산율은 가장 낮은 나라다. 그냥 놔두면 세대 간 불평등이 가장 빠르게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책은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국민연금을 보자. 처음에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로 만들었을 때는 노령인구가 굉장히 적다는 전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2030년대 중반이면 노령인구가 전체의 3분의 1이 된다. 지급 부담을 맞출 수 없는 금융구조다. 잠재부채가 하루에 4000억원씩 늘어난다. 민간연금이었다면 금융당국으로부터 이미 승인 취소가 됐을 상품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는 안까지 내놨다가 방기했다. 기초연금은 대폭 올려 사정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 이번 정부에서도 별 대책이 없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연금개혁안을 내년 10월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총선이 2024년 4월에 잡혀 있는 일정을 감안할 때 개혁안이 제대로 만들어질지 불확실하다.

한편 젊은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을 달래는 '대책'도 쏟아진다. 중앙정부, 지방정부들이 경쟁하듯 내놓는 청년사업 및 취업 지원책들이 너무 많아 이를 정리해주는 웹사이트들이 인기를 끈다. 결혼, 신혼집 마련, 출산 및 육아 지원도 굉장히 많이 늘었고 계속 추가되고 있다. 노년과 청년 가릴 것 없이 세금 쓰는 일만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푸나? 사회 부조에 대한 사고를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동안은 노인이 되면 불쌍하고 어려워지니 사회가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노년 대책의 근간을 이루었다. 버스 및 지하철 공짜 이용, 공원 및 박물관 입장료 할인 등의 경로 우대가 대표적 사례이다. 젊은 세대에게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됐다. 청년들이 취업하고 결혼하는 것이 어려우니 이 '불쌍한 세대'에게도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먹고살 만한 노년층이 상당히 많다. 젊은 노년층을 칭하는 '욜드(Yold)족'은 전 세계적으로 구매력이 가장 높은 집단이다. 괜찮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젊은이들도 꽤 많다. '금수저' '은수저'도 있다. 연령층을 기반으로 삼은 사회 부조는 합리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지원 기준을 경제력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먹고살 만한 사람에 대한 지원은 연령 관계없이 없애고 남는 재원은 형편이 안 되는 사람에게 더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따라서 인구 문제 대책의 첫걸음으로 경로 우대를 전면 폐지하자고 제안한다. 돈 있는 노인에게 공짜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는 없다. 노인들이 자리를 많이 차지해 젊은이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는 적도 많다. 돈 없는 노인에게 돈을 줘서 필요할 때 대중교통이나 문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면 젊은 세대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제법 줄어들 것이다.

연금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노년 세대에게 그동안 연금을 오래도록 내면서 쌓은 은퇴 생활 기대 수준을 갑자기 낮추라고 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젊은 세대에게 미래의 은퇴 준비금을 대폭 늘리라고 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연금 재정 상황과 가용 대책들을 투명하게 내놓고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러나 경로 우대 폐지는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다. 정치권은 틈만 나면 청년세대를 도와주겠다고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세대 간 자금 흐름을 냉정히 보면 나이 들고 권력 잡은 사람들이 젊은 세대를 강도질하는 것이 실상이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며 솔직한 대책을 내놓는 용기 있는 정치인들이 많아져야 한다. 자긍심을 지키며 기득권을 조금 내놓는 노년층도 많아져야 한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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